2012년 9월 24일 월요일

경영학도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e)

(2005년 겨울, 스물두살의 어느 날)


오늘 컨설팅 회사 Accenture의 김희집 부사장님, 그리고 어제 현 국무총리 이해찬씨, 그리고 며칠 전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사장님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끊임없이 고민했던 생각이지만 이런 강의들을 들으며 더욱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 과연 경영대생은 어떤 core competence(핵심역량)를 가지고 있는가?

서울대 경영대학이라......그 이름만으로도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뽀샤시함과 간지. 네임벨류를 자랑하는 곳, 그래서 예전의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곳. 이런 경향은 2000년 이후로 계속 더해만 가는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대학과 전공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에 경쟁도 치열하고 높은 자질이 요구되는 것이라 하겠다.

바로 그 자리에 몸을 담은 지금, 나는 "과연 우리가 다른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들에 비해 더 우수하다고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core competence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관용적으로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 '이건 내 전공이야' 라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내가 무엇을 전공했다는 말은 이 분야를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남들도 나에게 그 분야에서 더 높은 수준의 문제해결능력을 기대하며 요구한다.

하지만 다들 실감하듯 경영학과는 다른 단과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이중전공, 복수전공, 부전공을 희망하는 전공으로 압도적인 1등을 달리고있다. 실제로 이 경영학은 대부분의 타전공과 결합하여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실용학문이다.

공대출신 CEO가 많다 보니 엔지니어적 역량과 경영자적 역량을 함께 기르기 위해 공대생들이 경영학에 관심을 갖는다. 정치학과, 사회학과, 교육학과에서도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경영학을 많이 듣는다. 경제학도들도 학문적 성격의 경제학과 실용적 접근의 재무관리를 결합하고자한다. 심지어 음대생, 미대생, 체대생들도 문화마케팅, 스포츠마케팅의 열풍에 동승하여 경영학 수업을 듣곤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제 1전공을 기반으로 해서 제 2 전공인 경영학을 도구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학문의 순수성과 실용성을 두 극단으로 갖는 스팩트럼상에서 실용성에 크게 치우친 경영학은 이렇듯 도구적으로 이용되기에 적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영학을 제 1전공으로 하고있는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경영학을 제외하면 다른 분야는 그것을 전공하는 사람보다 더 깊이 알지 못한다. 자연과학이든 공학이든 인문학, 사회학, 법 등등......나도 물론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가끔씩 같은 과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과연 이들이 서울대학생에 걸맞는 기초적 교양이나 상식, 학문적 소양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전공 수업을 듣다가도 가끔씩 내가 듣는 수업 내용을 곱씹어보면 새삼스레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경영학이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하면 나는 가장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업은 물건을 생산해서(생산관리) 판매하는(마케팅) 조직이다. 생산과 판매를 이어주는 것은 돈과(재무관리) 인간(인사관리)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성과를 측정, 분석하여(회계, MIS) 더 나은 운영을 추구한다.이 각각의 과정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경영학이다"

이렇듯 다 옳으신 말씀이고 이해하겠는데 도대체 뭘 생산하거나 개발하고 - 물건 뿐만이 아니라 지식, 아이디어, 정보를 포함하여 - 뭘 팔아야 하는거지? 모든 방법론적(how) 연구는 열심히하지만 정작 핵심적인 무엇(what)에 대해서는 아직도 막막하기만 하다. 기본적 뿌리와 베이스를 어디에 두고 출발해야 하는걸까?

혹은 다른 사람이 what를 개발하는 동안 나는 how를 남들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는 경영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즉, 어떤 과업을(task) 던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 맡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나의 제 1전공, core competence로 잡아야 한다. 아니면 나 역시 다른 전공을 제 2전공으로 삼아서 두개를 결합하여 시너지효과를 내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과연 그게 쉬운 일일까??

개뿔도 아는 거 없는 주관적 생각이지만 경영학은 그것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학생들도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접근이 가능한 영역인 것 같다. 진입장벽이 낮다고 할까? 하지만 다른 단과대의 학문들은 - 특히 기계, 전기와 같은 공학이나 물리, 화학, 생물같은 자연과학, 음악 미술 체육과 같은 예체능 분야 등등 - 내가 제 2전공으로 다가간다 해서 결코 쉽게 체득할 수 있는 성격의 학문들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지금부터 무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물리학을 마스터하거나 음악/미술을 멋지게 할 수 있을까??

옛날 영어영문학과의 인기가 한창 좋을 때가 있었다. 당시에 막 세계화가 시작되면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의 수요는 많았지만 그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에 영어를 잘 하는 것이 하나의 core competence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꼭 그것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많다. 오히려 전공자 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많은 정도? 그에 따라서 지금의 영어영문학과는 과거 만큼의 인기학과가 아니다. 이 현상을 보면서 내가 불안해 지는 것은 과연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많은 대선배들이 말하길, 이젠 서울대 경영학과라는 간판 하나로 만사 오케이였던 시절은 지났다고 한다. 오히려 남들보다 못하면, 아니 남들과 비슷하게만 해도 이놈의 간판때문에 비웃음을 사는 일종의 핸디캡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다. 특별히 대우 받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잘해도 본전인 족쇄라고나 할까? 하긴 지금도 맨날 뉴스에서 못잡아먹어 안달이더만......아무튼 이젠 학교라는 간판을 벗겨냈을 때 역시도 나에겐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나만이 가지고 있는 core competence가 있어야만 한다. 지금 나는 남들보다 자신있게 잘 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과연 내가 미래에 core competence로 삼을 만한 것은 무엇일까?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일단 core competence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교양을 갖춰야 한다. 모두들 말하길 컴퓨터 실력, 영어, 그리고 영어 이외의 또 한가지 외국어를 해야한다고 한다. 아직까지 나는 이 세가지 어떤 것도 자신이 없다. 가장 기본적인 이놈의 영어는 도대체 10 년을 넘게 했는데도 왜이리 자신이 없는걸까? 컴퓨터도 이제 이만큼 만졌으면 뭘 좀 알아야되는데 맨날 인터넷 하거나 영화만 봤으니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제 2외국어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가끔씩 문득 이런 생각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할 때가 있다. 몇년간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사회에 나가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분자가 돼버릴까봐. 아마도 이것은 우리 과 학생들만이 갖게 되는 매우 특수한 형태의 고민인 것 같다.

"당신은 무엇을 잘 하십니까?

초등학교 때 부터 '취미와 적성'란을 통해 나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제다. 이 문제를 십수년간 등에 짊어져온 지금, 이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은 얼마나 개발돼왔는가? 내가 남들보다 '이것'만은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 많게도 아니다, 단 한가지 - 아직도 모호하기만 하다. 아니 단적으로 말하서 아직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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