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첫 인상

(2004년 가을, 스물한살 어느 날)



친구를 사귀든 연애를 하든 선후배 사이가 되든 사람은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게 마련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같은 조건에 있으면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가까운 사이가 된다. 같은 반이면 그 반에 속한 모두가, 같은 동호회면 그 동호회 멤버 모두가 형식적으로는 똑같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집단 안에서 모든 사람과 내가 똑같은 정도로 친한 것은 아니다.

친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나와 그 사람이 만나는 빈도수가 높은 것? 공통으로 속한 단체가 - 직장이나 학교 - 많은 사람? 오랜 세월을 함께 같이 보내온 사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위에서 처럼 자주 만나고 공통 단체가 많고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면 서로가 호감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확률이 높아질 뿐 저렇다고 해서 무조건 친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친하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가 호감을 가질 때 비로소 친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 자주 만난다 해도 좀처럼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반면 짧은 시간을 함께 해도 마음이 맞고 호감이 가는 사람도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걸까? 혹자는 첫인상이 그 사람 전체 인상의 30% 이상을 차지한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그래서 첫 인상을 좋게 보이기 위한 많은 방법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처음 만났을 때 상냥하게 보이는 방법,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방법 등등...

하지만 첫인상은 말 그대로 그 사람의 첫번째 인상일 뿐이다. 아무리 첫인상이 좋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후 그 사람의 행동이 첫인상 만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실망은 오히려 첫인상이 평범했던 사람 이상으로 크게 다가온다. 한두번 정도는 '저 사람은 저럴 사람이 아닐거야' 라고 말하며 자신이 가졌던 그 사람에 대한 직관을 끝까지 신뢰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화려한 첫인상 속에 숨겨진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사람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현재 모습은 단순한 수직선상의 점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게 보아야 한다. 그 사람은 비록 현재에 존재하고 있지만 현재 그 사람의 모습은 그 사람이 태어난 이후부터 겪었던 오랜 세월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를 들자면 나의 현재 생각은 내가 태어난 이후 20년간 겪었던 많은 일들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전 어디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상대방과 '친해지는 것'에 대한 큰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20살 짜리 동갑내기 두 사람이 처음 만나 30살 까지 함께 지낸다 가정해보자. 10년이란 세월은 함께 관계를 맺어 생활하기에 매우 긴 기간이다. 하지만 저 10년이란 세월이 두 사람을 친한 사이로 만들어주는 것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에 영향을 끼친 비율을 보자면 두 사람이 함께했던 10년 보다는 두 사람이 각자의 삶을 살던 이전 20년의 세월이 두배나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 동안 각각 서로를 모르고 살았지만 비교적 비슷한 환경과 사고를 하며 살아왔던 사람은 하루를 같이 지낸다 해도 충분히 친해질 수 있다. 여기서 환경은 지역적, 경제적, 성별, 인종, 국가, 교육 정도 등등을 모두 포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록 지역이 다르다 하더라도 비슷한 교육을 받았다면 그 차이를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잠시 나왔던 첫인상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나는 실제로 첫인상이 그 사람 이미지의 30%를 결정짓는다는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을 조금 바꿔서 '그 사람의 첫인상을 보면 그가 나와 얼마나 친할 수 있을 사람인지 30% 이상은 파악할 수 있다' 고 한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번지르르하게 첫인상을 좋게 보이려 애를 쓴다 하더라도 그가 20년 이상 지니고 살아왔던 태도나 말투, 가치관, 사고방식을 덮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인상에 이미 그는 그의 오랜 세월의 과거를 은연중에 우리에게 비추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그에 대한 상당부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내 말이 '첫인상이 나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평생 친구가 될 수 없다' 라고 극단적으로 단정짓는 것은 아니다. 비록 나와 많은 부분이 차이가 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 많은 부분에서 뜻밖의 매력적인 구석을 발견하는 일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방이 그런 매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 가정할 때 우리가 첫인상만 보고 그와 친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좋은 친구가 될 뻔한 소중한 한 사람을 잃는 것이다 - 이 점은 내가 크게 반성하는 부분 중에 하나이다. 나는 그 사람이 일단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더이상 친하려는 노력을 잘 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마다 나는 참 궁금해지곤한다. 과연 사람들이 나를 보면 어떤 첫인상을 가질까? 내 첫인상이 그들에게 호감을 주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점 때문일까? 반대로 만약 내가 그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보였다면 그 이후에도 나는 과연 그들의 기대치를 계속 충족시켜주는 사람일까? 누구도 객관적인 대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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