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스무살 봄날의 추억 속에서

(2007년 겨울, 스물네살 어느 날)



어느 봄날의 추억 속에서

 스무살 때였다. 영어영문학 전공 수업을 같이 듣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다른 여학생들을 볼 때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다지 예쁜 편도 아니었고 발표를 할 때의 영어도 그리 유창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파 중에서도 조금은 뒤쳐지는 수준이었다. 수업은 그룹별 발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그룹은 한 학기 내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수업마다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녀와 내가 같은 조에 속했던 것도 딱 한번의 수업 때 뿐이었다. 당연히 그 이후로 그녀와 새삼 아는 척 하며 지내는 것은 지극히 어색한 일이었다.

 고려대학교에는 본과 뒤를 빙 두르며 서관(문과대학)과 동관(대학원 도서관)을 잇는 좁은 길이 있다. 우리는 그 길을 다람쥐길이라고 불렀다. 이 길에서 어느 날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였고 그녀는 혼자였다. 나는 그녀를 못본 척 친구들과의 대화를 계속했다. 그러다 무심코 그녀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는데 그 순간 우리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조금 당황한 나는 그녀를 따라 얼떨결에 고개를 까딱했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 행동과 밝은 미소로 나에게 먼저 마음의 손을 내밀어준 것이다. 그녀가 그것을 의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날 나는 충분히 기분이 좋았으니까.

 어쩌면 그녀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쉽게 친절을 베푸는, 원래 성격이 상냥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전형적인 '경상도 출신의 맏아들'이라서 수줍음을 잘 타는 나와는 달리 상대방에게 쉽게 다가서고 마음을 여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렇게 나에게만 특별히 베풀어준 친절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행동이었겠지만 그날이 자꾸만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물론 그날 이후로 그녀와 나는 언제나 만나면 인사를 하고 지내게 되었다.

 가끔씩 마주설 땐 그녀의 키가 작고, 얼굴에 젖살은 아직 덜 빠진 듯 했으며 평범한 작은 눈을 가졌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거나, 했다 하더라도 진한 화장은 피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머리는 수능을 마치고 처음 염색을 한 듯, 조금은 물이 빠진 희미한 갈색이었다. 마치 그녀는 사복을 입은 여고생과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자주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수업 시간에 앉아있는 뒷모습이었다. 수줍은 남자가 여자를 바라볼 땐 대게 뒤에서 훔쳐보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녀의 머리에서 시작되어 어께와 가슴, 엉덩이를 거쳐 종아리에 이르는 곡선은 우리가 떠올리는 이상적 여인의 몸매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그녀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너무 짧지 않은 치마를 좋아했다. 두 다리를 따라 내려와서 만나게 되는 그녀의 신발은 대게 평범한 스니커즈였다. 그리고 아마도 귀걸이나 목걸이같은 악세사리에 그녀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남쪽 지방 사투리가 아직 남아있는 듯한 그녀 말투가 독특했다. 영어영문학 시간에는 강의와 발표를 비롯한 모든 대화가 영어로 이루어졌다. 선생님의 지적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발표를 할 때면 거의 단어의 연결에 불과한 콩글리시를 하며 얼굴을 붉히는 그녀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엽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반짝이는 전자사전을 두드렸지만 그녀는 두꺼운 책 사전을 들고 다녔다. 한마디로 그녀는 세련된 미인美人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난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셰익스피어를 배울 땐 줄리엣의 모습으로 그녀를 상상했다. 존 업다이크의 <A&P>에서는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서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리석게도 과감히 직장을 그만둬버렸다.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를 배울 땐 내가 어린 소년이, 그녀가 내 친구인 멩건의 누나가 되었다. 애이미 탠의 <조이 럭 클럽>을 읽을 때 내 머리 속에서 그녀는 신동 소녀라 불리우며 어린 나이에 전국 체스 대회를 휩쓰는 웨이벌린이었다. 돌이켜보면 유치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곤 했었다.

 세월이 추억을 미화美化시킨 탓일까? 스무살 당시에 그녀를 좋아할 때 내 머리 속에는 어떤 불손한 상상도, 계산도 없었다. 나름 그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감정은 매우 단순했다.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이렇게 귀여운 그녀와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향해 품는 감정은 "왜?"라는 질문은로는 설명할 수 없나보다. 남중남고를 졸업한 직후 여자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던 내가 이렇게 헛점 투성이인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날의 나는 어떨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원하는 이상적 여성상은 분명 그 때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워진 것 같다. 차라리 '예쁘고 잘 빠진 쭉쭉빵빵'과 같은 생각은 남자라는 동물로 태어난 이상 사춘기 소년도, 팔십세 노인도 어찌할 수 없는 순진한 바람이라고 쳐두자. 하지만 지금의 내 머릿속에는 '문학을 좋아하는 교양있는 여자', '예술을 사랑하는 감성적인 여자', '나보다 술을 잘 마시는 여자', '많은 책을 읽어서 지혜로운 여자'와 같은 전에 없던 희망사항들이 추가돼있다. 이것이 바로 어른이 돼간다는 증거일까? 나도 언젠가 '돈 많은 여자', '능력 있는 여자'를 바라는 속물을 손가락질할 자격 없는, 똑같은 속물이 되고 마는 것인가?

 나는 온라인에서 그녀에 대해 이런 저런 정보를 뒤져보았다. 그녀가 속한 학과의 클럽을 찾아냈고 그녀가 입학 직후 남겨놓은 자기소개글을 읽었다. 거기엔 그녀의 e-mail 주소와 메신저 주소, 핸드폰 번호까지도 씌어져있었다. 확실히 이렇게 개인 정보가 온라인에 쉽게 노출된 것은 문제이다. 하지만 나는 소위 작업을 계속해나갔고 사람에 따라서는 스토킹이라 비난해도 변명할 수 없는 짓을 해버렸다.

 나는 메신저에서 그녀를 대화상대로 추가하기로 했다. 그녀를 추가하는 순간에 그녀가 접속해있는 상태라면 그녀는 실시간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접속해있지 않은 상태라면 나중에 접속할 때 알게 된다. 어떤 경우든 그녀는 자신을 추가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한 번 추가를 한다면 결코 취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녀의 주소를 복사하여 신규 등록 창에 붙여넣었다. 이제 클릭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한 번의 클릭이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아마도 한 시간 정도는 고민했을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클릭 한 번 하기가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대학교 합격자 조회 때 말고는 한 번도 없었다. 이 담에 그녀가 "누구세요?"라고 물어오면 어떡할지, 더 난감한 것은 그녀가 자기의 메신저 주소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오는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적당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 끝에 나는 결국 "에라 모르겠다!"하며 '확인'을 꾹 눌러버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가 지금 접속해있을까 두려워서 곧바로 메신저를 꺼버리고 말았다. 나는 얼마나 바보였던가.

 며칠 후 메신저에 접속했다. 마침 그녀도 접속해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물었고 나의 대답에 "어멋! 안녕하세요!"라며 반가워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 반응도 나에겐 큰 위안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편하게 마음을 먹고 그녀와 대화를 해나갈 수 있었다. 어떻게 자신의 주소를 알았냐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해왔다. 조금은 간肝이 커진 나는 솔직하게 그녀의 주소를 찾아낸 과정을 털어놓았다. 그 때 나는 이미 '작업'이라는 것이 100퍼센트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나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진행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눈치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렴풋하게나마 나의 의도는 짐작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처음으로 그녀와 오랜 시간 대화를 했다. 그녀가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고 지내자며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주었다. 역시 그녀는 붙임성 좋은 명랑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나도 약간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호감을 주기까지는 못할 망정, 적어도 달갑잖거나 귀찮은 존재는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나는 가끔씩 심심할 때 별 것 아닌 일로 그녀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만약 그녀가 생각날 때 마다 메시지를 보내라면 '가끔씩'으로는 부족했으리라. 어쨌든 참 착한 그녀였다. 꼬박꼬박 성의있게 채워서 보내주는 답장이 고마웠고, 비록 내가 먼저 보내는 횟수 보다는 적었지만 때때로 먼저 날아오는 그녀의 메시지가 더욱 고마웠다.

 이제 수업 시간에도 그녀의 옆에 앉고 싶었다. 마침 그녀는 혼자 수업을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를 차마 나의 작업 진행을 핑계로 배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험 기간에는 방과 후 몇 차례 도서관에서 그녀와 함께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 수업을 혼자 듣는 만큼 깜빡 졸거나 딴 생각할 때 놓쳐버린 노트 필기를 빌릴 곳이 마땅찮았다. 당연히 내가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원래 이 과목을 좋아했기에 나는 대부분의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두었다. 노트 필기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과 도서관을 오가며 나는 나름 이 과목에 많은 공을 들였다. 어쩌면 이렇게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필기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일부러 내가 필기를 못한 척, 그녀에게 연락하여 노트를 베낀 적도 있었다. 그 전까지는 몰랐는데 그녀의 영어 글씨는 그리 예쁘지 않았다. 한 번은 핸드아웃을 잃어버린 척 하며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그녀를 불러내어 인쇄소에도 갔다. 함께 공부할 때는 아는 단어도 물어보았다. 그것도 전자사전을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둔 채로. 이 모든 연극은 단순히 그녀를 한 번 더 보고, 그녀와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나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의 이런 깊은 배려까지 그녀는 과연 눈치채고 있었을까? 이렇게 설렘과 긴장이 더해가던 '03년 1학기가 막을 내렸다. 그녀와 나는 둘 다 소설 문학을 좋아했기에 다음 학기엔 또 다른 문학 관련 수업을 같이 듣기로 했다. 우리는 방학을 맞아도, 다음 학기가 와도 계속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 첫 학기 내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재수再修 문제는 끝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와의 어정쩡한 관계를 뒤로 한 채 휴학계를 제출했다. 함께 수업을 듣던 3개월 동안에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그녀와 어느 수준 이상의 관계를 확정지어 놓았다면 어땠을까? 시간의 먼지는 분명 나의 후회를 하얗게 덮어줄 것이라 믿었다. 인간이 시험 기간이면 언제나 원망하곤 하는 '기억의 망각忘却'은 실상 신神이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과거의 모든 기억을 마치 디스켓이나 씨디처럼 정확하게 저장한다면 결코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좋았던 기억, 아팠던 기억이 모두 선명하게 남겠지만 아픈 기억의 고통은 좋은 기억의 기쁨보다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기억의 총량이 증가할수록 고통과 기쁨의 격차는 점점 커질 뿐이다. 다음 수능 날짜가 조금씩 다가오면서 그녀에 대한 생각도 차츰 희미해져갔다. 때론 이렇게 쉽게 그녀를 잊는 내 자신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그녀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그녀와 함께 길을 걷고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며 무심코 지나쳤을 수많은 기회들. 눈치와 용기의 부재로 그 많은 기회를 날려버린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 아쉬움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햇수로 따지면 5 년 전 이야기니까 휴학을 안 하고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이제 그녀는 직장인, 혹은 대학원생이 돼있을 것이다. 만약 내게 우연히 그녀와 다시 마주칠 기회가 온다면, 그리고 내가 다시 한 번 예전처럼 '눈에 빤히 보이는 어설픈 수작'을 부린다면 그 때도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줄까? 강산이 반쯤은 바뀔 만한 시간이 지났으니 나도 그만큼 더 멋있게 변해있어야 하지만 늘 제자리 걸음만 한 것 같아 부끄럽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에서 잭 니콜슨의 대사 중에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들어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라는 말이 나온다. 사랑을 하면 여자는 예뻐진다고 했던가? 왜 여자만인가? 남자인 나도 비록 지금 이렇게 보잘것 없지만 만약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분명 더 멋진 사람이 되고자 안간힘을 쓸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상대방이 나의 요구에 맞춰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상대방에게 걸맞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두 애송이었던 5년 전, 봄날의 추억 속에서 그녀는 나에게 이 작은 깨달음을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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