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재수생 시절, 수능을 마치고 대학교 지원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모교의 어느 국어 선생님을 찾아가 약간의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절대로 취미를 쓰는 칸에다가 '독서'는 쓰지 말라고 하셨다. 워낙 그것을 쓰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중요한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준령아, 독서는 '취미'가 아닌 '생활'이어야 한다."
실제로 종종 다른 사람의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어께 너머로 보게 될 때가 있다. 역시 독서는 가장 자주 써먹는 취미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 주위에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동지가 마땅히 없는 것일까?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였다는 이 학교 학생들도 정작 읽는 책들은 서점가에 비치된 베스트셀러 목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일본 소설 + 자기계발서 + 재테크 관련 도서가 70% 이상은 차지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문제는 저렇게 취미란을 부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독서'라는 글자들 때문에 진짜 독서를 취미로 하는 나의 설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나에겐 독서를 제외한다면 딱히 취미가 없다. 독서광狂이라기엔 내공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즐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독서이다. 학교 다닐 땐 비록 공부를 빼어나게 잘하진 못했다 할지라도 언제나 책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앞으로도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책이 내 손에서 영영 멀어지는 날은 없으리라 믿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책이라는 물리적 실체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모든 책을 구입하는 즉시 책꺼풀로 곱게 싼다. 그리고 내 이름 석자가 깔끔하게 새겨진 도장을 윗면과 아랫면에 꾹꾹 찍어 이름을 남긴다.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이 자칫 통풍이 안 되어 좀이 먹을까 염려되어 가끔씩 책을 꺼내 첫장 부터 마지막장까지 휘리릭 바람도 쐬어준다.
같은 여인이라도 명품 옷가게에서 예쁜 옷을 고를 때 보다는 허름한 중앙도서관에서 책 읽을 때가 더 아름다워보인다. 두꺼운 전공서적을 펼치고 사전이나 계산기와 씨름하는 것도 보기 좋지만 소설책을 읽는 쪽이 더 사랑스럽다. 지하철에서도 MP3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다리를 꼬고 앉아 굽 높은 샌들을 까딱거리는 여인보다는 편한 스웨터와 면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책 읽는 여인이 더 멋있다.
그림을 볼 때도 책과 관련된 그림에 더 정이 간다. 아르침볼도의 <사서>가 보여주는 익살적인 모습에 나는 웃음짓는다. 모리스 켕탱 드 라투르(더 유명한 조르즈 드 라투르가 아님)의 <페랑양의 초상>에서는 깍쟁이같긴 하지만 지적으로 보이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저 유명한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 마네의 <생 라자르 역>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프라고나르의 <책읽는 여인>은 마치 벽난로 앞에 선 듯한 따뜻함이 묻어나온다. 한편 쇠라의 점묘법을 대표하는 <일요일 라 그랑 자트 섬의 오후>를 볼 땐 그 많은 사람 중에 책 읽는 사람이 어찌 한 명도 없을까 생각하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을 대한민국 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만든 주요 원동력이라 평가하는 그의 베스트셀러에 나오는 말이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무한정 많은 책을 읽을 순 없었지만 독서를 사랑하다보니 나는 많은 책을 '알게'되었다. 특히 소설 문학을 좋아하여 웬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전은 대표작과 작가를 대부분 매치시킬 수 있다. 남은 평생을 바쳐도 그들의 모든 책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조각조각 만나게 되는 그들의 생애와 작품만으로도 나의 지성과 감성은 풍족하게 살찌리라 믿는다.
취미로서의 독서는 언뜻 금전적인 부담이 적은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결코 그렇지 않다. 만원짜리 한 장 달랑 들고 가면 웬만큼 좋은 책 한 권도 못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우리 집 책장에 꽂힌 책들이 1,300 권에 달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돈을 그곳에 쏟아부었을까? 그리고 게임, 운동, 오락을 비롯한 잡기에 전혀 소질이 없는 내가 아무 기술이나 근력도, 뛰어난 머리도 필요없는 독서를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쯤 되면 내가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는 것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봐줄 순 없을까?
마지막으로 독서를 취미삼는 국민이 많은 것은 언제든지 두 손 들고 환영하고픈 일이다. 하지만 '진짜 독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만이 자기소개서 취미란에 '독서' 두 글자를 당당하게 써주었으면 한다. 아무 취미도 없는 나에게 독서까지 빼앗가는 잔인함은 그만둘 수 없을까? 그리고 기왕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얄팍한 자기개발서, 아무 철학 없이 돈 자체에 눈이 먼 쓰레기 재테크서적에서 눈을 돌려 진정 아름다운 글을 함께 즐길 줄 아는 동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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