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수업시간이 들은 인상적인 말들 몇 가지


(2004년 가을, 스물한살의 어느 날)



지금까지 인상깊게 들은 말들 몇가지 그냥 까먹지 않기 위해 두서없이 여기에 막 적어둔다. 일종의 어록이라고나 할까... 그 때의 기억을 어렴풋이 회상하여 적는 글이라 약간의 비약이 있을 수도 있고 세부적인 내용에서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감안해주길.


1. 김연경 교수님 
(러시아 문학 수업시간에)
백수들일수록 거시적인 고민을 많이 하게 마련이다.


심히 공감. 지난 여름방학때 할일 없을때 절실히 느꼈음.
지나치게 거시적인 고민을 많이 해버려서 그 때 이후 군대문제고
고시문제고 내 앞 진로와 연애문제에 대해 잔뜩 고민이 생겼다-_-;;


2. 이창우 교수님 
(회계학 수업시간 중에 윤석철 교수님의 책 일부분 내용을 인용)

사람에겐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조건 3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태생적인 조건으로서 그가 태어난 시대, 그가 태어난 공간, 그리고 그의 핏줄이다. 일제시대와 같은 암흑시대에 태어나거나 아프리카에 빈민국에 태어나거나 부모님을 잘못만나 불안정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의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조건이다.

두번째는 자신의 능력이다. 어떤 사람에겐 다른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하늘이 내린 재능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이렇게 내려진 재능이 많은 사람도 있고 그리 많지 않은, 심지어는 없어보이는 사람도 있다. 즉 인간은 이런 측면에 있어서 평등하지 않다. 인간이 평등하다고 외치는 것은 정치적, 법적으로 이러한 불평등을 무마하기 위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

세번째는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1초 앞 미래도 내다볼 수 없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예는 기억이 잘...-_-)

이렇듯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나 의도를 제외하고도 많은 불가항적 조건 속에서 살고있다. 이런 사실을 간과한 채 지금 현재 자신의 위치가 (높은 위치건 낮은 위치건)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오만방자한 생각이다.


크게 내세울 것이 많은 나는 아니지만 보잘 것 없는 몇몇 나의 조건이 남보다 조금 좋다는 이유로 아주 가끔씩 마음 속에 나태함, 우월함을 품었던 것에 대해 따끔한 충고가 되어주셨다.


3. 이창우 교수님
(역시 회계학 수업시간에...)

토인비는 인간의 역사 발전이 '창조적 소수'에 의해서 주도되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현대에도 이러한 가설은 똑같이 적용되어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자연을 돌아보자. 식물, 동물, 석탄 등등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e)는 태양에너지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그 태양에너지는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쩌고저쩌고...중간에 갑자기 전문적인 물리학,화학,생물학 내용이 등장하여 당황함...어쩌고 하다가) 이 때 어떤 한 원소 0.6%의 질량이 자신을 소실시키며 그 차이의 합들만큼이 지구 생명체의 기원인 태양에너지가 되어주는 것이다. 즉 태양에너지의 근원은 바로 '자기 희생' 에서 온 것이다.

이렇듯 미래사회에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희생을 필요로 한다. 이 때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그 소수는 바로 지성적 소수라고 불리울 수 있다. 이젠 아놀드 토인비가 지적한 '창조적 소수'를 넘어 자신을 희생하여 공동체를 위해 바칠 수 있는 '지성적 소수'가 필요하지 않을까?

난 어디까지나 이 사회는 자신을 위한 이기심이 유인동기로 작용하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된다고 보고있다. 결국은 이것이 사실이기에 저런 희생적인 개체가 '다수' 가 아닌 '소수'가 되는 것이지...내가 자주 언급하는 관용적 표현을 다시 들자면 '필요한 것이긴 한데 내가 하긴 싫다'. 누구나 다 같은 심정 아닐까??


4.송병락 교수님
(경제학 수업시간에 부가가치 개념을 설명하시면서)

보아는 자신의 히트곡으로 인해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최고의 인기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아무리 일본열도로 건너가 그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보아만큼 (아니 보아가 부르는 이상으로) 노래를 불러준다 하여도 보아만큼의 돈을 벌 수는 없다. 보아는 그녀가 하는 일이 부가가치를 창조한다기 보다는 보아 그 자체가 부가가치이기 때문이다.

보아 자체가 부가가치이다...옳소! 내가 노래 백날 해봐라. 누가 백원이라도 주나;;; 아마 100대 맞고 쫓겨날 듯ㅎㅎㅎ


5. 이승훈 교수님
(경제학 수업시간에)

국가간의 외교에서 이 세상 어느 나라도 상대 나라에 대해서 '저 나라를 망하도록 하자' 라는 의도를 지닌 곳은 없다. 다만 그들에 있어서 관심사는 '저 나라를 통해 우리 나라가 이득을 보느냐 손해를 보느냐' 이다. 저 나라가 잘 됨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잘 된다면 굳이 상대 나라가 잘못되길 바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즉 외교에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나쁜 나라'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늘 다른 사람에게 지적하는 '맹목적인 특정 국가에 대한 반감'을 교수님도 잘 지적하셨다. 국가대표팀간의 스포츠 경기에서 라이벌 국가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역사상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현재의 국가 자체를 무조건 싫어하는 것도 옳지 못한 태도이다.

역사적으로 그 국가가 우리에게 한 행동은 우리 나라를 싫어해서, 혹은 우리에게 해를 입힐 의도로 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였을 뿐. 물론 그들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품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하다. 하지만 감정과 지혜로운 선택은 구별돼야한다. 이런 감정이 외교적인 정책으로 반영된다면 곤란하다. 이승훈 교수님이 다른 날 말씀하셨듯 '당당하되 지혜롭게 당당하자'.

실제 한국도 늘 당하기만 하던 입장이었지만 만약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를 못살게 굴어 이득을 얻을 기회가 있었다 치자. 과연 우리는 동방예의지국답게 점잖이 우리의 이익을 포기하며 그 나라를 배려해주었을까? 좀 막말이긴 하지만 '억울하면 힘 기르자'. 이 말은 외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리가 삶을 사는 데 있어서도 이 말이 곧 진리라고 본다.


6. 이승훈 교수님
(경제학 수업시간에)

자본주의에서 소위 말하는 1원 1표주의(돈에 의해서 그들이 끼치는 영향력 정도가 달라지는 것)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때때로 우리나라에서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과거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시장원리에 의한 배분이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든다. 다시 말하자면 시작점 자체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1원1표주의와 과거 한국 경제사의 어두운 점은 필연적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별개의 문제다. 이는 마치 1인1표주의를 채택하여 운영되고있는 우리나라 정치가 현재 어지럽다고 하여 1인1표주의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문제점은 문제점이고 작동원리는 작동원리다.

내가 마음 속으로 늘 갖고 있던 생각을 거의 그대로 말씀해주셨다. 문제점이 있으면 그 문제점을 찾아내어 고칠 것이지 왜 전체 시스템을 부정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어떤 필연적이거나 연역적인 합리적 도출과정을 거친 추론은 아니지만...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등등 처럼 위대하신 분들께서;;...백여년 정도 지구 곳곳에서 상당수의 국가가 구상하고 시도해봤지만 100% 다 실패했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말 아닐까?;; (조심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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