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자취 생활의 추억

(2004년 여름, 스물한살 어느 날)




서울이란 도시도 나에겐 2년째 보금자리가 되고 있는 삶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만큼 대구를 제외하면 나에겐 가장 큰 의미가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으며 어떻게 보면 현재의 의미로서는 대구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미래의 내 삶의 전체적인 시간을 통틀어 보자면 태어나서 약 19~20년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곳이 될 듯 하다.

하지만 같은 서울 생활이라 해도 작년의 내 생활과 올해의 생활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물론 학교가 옮겨졌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과 사귀고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는 등등도 큰 차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지금 나의 생활 방식을 결정짓는 큰 요인은 바로 내가 어떤 형식으로 서울에 거주하느냐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지방학생으로서 서울에서 살 수 있는 방법으로는 집이 서울로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하숙/자취/친척집 거주/기숙사 등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사느냐 여부는 그 학생의 생활 방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작년에 고려대 다닐 시절에는 나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했었다. 내가 입학하기 전에 생각하기엔 나 말고도 당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우리 과 친구들 중에는 자취를 하는 사람이 꽤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지방 출신 친구들은 많았지만 대부분이 기숙사/하숙/친척집 거주 유형이었으며 완전 자취 유형은 나 혼자 뿐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주위 사람들 중에 자취하는 사람이 많든지 적든지 그것이 내 생활에 별로 영향을 미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난생 처음 부모님 품을 벗어나자마자 빨래와 식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적지않은 부담이었다. 게다가 자취하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니 주위에 마땅히 조언을 얻거나 이런 어려운 점에 대해서 이야기 할 사람도 없었다. 특히 자취 초반에는 집에서 밥솥을 들고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은 원래 잘 안 먹는다 쳐도 저녁만은 매일매일 오늘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고민을 해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비교적 조용히 챙길건 다 챙기는 스타일이라서 매일매일 어디서든지 웬만하면 매일 밥은 꼭 먹었다. 나는 술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과 행사에 많이 참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오후에 시간이 빌 때가 많았다. 그래서 혼자 밥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하다못해 나가기 귀찮은 날이면 삼각김밥이나 그냥 김밥이라도 꼭 먹었다. 덕분에 나는 보통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처럼 라면과 벗하는 자취폐인이 되지는 않았다. 주말에 중국집에 배달을 부탁할 때에도 면 종류 보다는 볶음밥을 많이 시켰다.

오히려 나의 고민은 반대로 '너무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다. 실제로 혼자서 자취를 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밤 늦게 불 켜고 과자 봉지나 라면 봉지를 부스럭거린다 해도 아무것도 신경쓸 것이 없었다. 그냥 내가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고 TV 보고 싶으면 TV를 켜면 된다.

그래서 자취 생활을 하던 2003년 1학기 동안 나의 몸무게는 놀랄만큼 불어만 갔다. 재수를 결심하고 반년만에 대구로 내려갔을 무렵에 나는 잠시 학교를 찾아간 적이있다. 당시 나를 본 옛 친구와 선생님은 내 볼살을 보고 한마디 안 하던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한 번 인사했을 때 못알아보다가 다시 돌아서서 갑자기 생각난 듯 "너 준령이가?!!" 라고 놀라셨던 선생님까지 있었다. 3년간 가르쳤던 선생님인데;;

앞서 말했듯 자취할 시절엔 TV가 있었다. 원래 TV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당시 학회 활동 등등을 할 때 스스로 사회 문제에 대한 시각이 부족함을 느꼈던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뉴스는 꼭 보기 위해 노력했다(실제 마음 속으로는 스포츠 뉴스를 기다리는 약 40분간 인내의 시간이라고 느꼈긴 하지만...).

TV는 비단 나의 뉴스용으로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당시 완전 자취를 하는 사람은 우리 과에 나 밖에 없었으므로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친구들은 내 방에 각각 한 손엔 치킨이나 과자를 들고 모였다(치킨이나 과자는 말하자면 입장료 정도라고 할까...내가 말로는 사오라 안 했지만 은근히 압박 넣었음). 하지만 다행이 그 당시 학교 근처에 살던 친구들 중에 술을 많이 즐기는 사람은 없었고 따라서 술판 벌어지고 내 방에서 자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나는 학기 초부터 이런 일을 염려해서 웬만해서는 내 친구들을 방에 들이지 않았는데 이런 나의 다소 매정한 태도도 내 방이 늘 깨끗하게 유지되던 이유였던 것 같다.

자취 생활은 내가 혼자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원래부터 남들과 함께 있기 보다는 혼자서 책보며 공부하거나 TV를 보거나 인터넷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참 좋았던 기억이다.

대학교 1학년 1학기는 많이 놀고 술자리도 많이 갖는 시기라지만 나는 그냥 수업 마치고 혼자 방에 돌아와 책을 폈다. 실제 전공이 정해지지 않았던 상황에선 설령 하기 싫더라도 내가 어쩔 수 없이 교과서를 펴도록 만드는 동기가 어느정도 부여가 되었다. 총 9과목 중에서 - 참 많이도 들었다 - 6과목을 어학 과목(영어영문학의탐색 / 영미단편소설강독 / 교양영어 / 실용영어 / 교양국어 / 독일어1)으로 듣고 있던 나는 자연히 어학 공부를 많이 하였다. 덕분에 지금도 그나마 내가 영어를 비롯한 글자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접하는 데 있어서는 웬만큼 다른 사람 이상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튼 이처럼 홀로 지낸 자취 생활은 내가 치열한 전공 배정의 경쟁 분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높은 학점을 받게 된 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물론 지금은 자퇴한 학교의 쓸모없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이렇듯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내 서울에서의 첫 해의 생활은 한편으로 내적인 성숙함과 지식의 축적(?)에는 기여했을 수 있지만 교우관계에서는 그만큼 위축된 듯 하다. 지금 생각하면 - 물론 다음 학기에 자퇴할 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 어차피 버려질 학점을 위한 공부 보다는 조금 더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친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후회도 남는다.

물론 당시 같은 과 친그들 가운데 지금도 연락을 하고 가끔 만나 술자리를 가지는 좋은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어차피 짧은 인연이었다면 그 반년을 더 원만하고 두리뭉실하게 좀 더 사람들 사귀는 데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단 지금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있지만 내년에 내가 다시 기숙사에 남게될지 어떨지는 아직 잘 모른다. 만약 기숙사를 나간다면 나는 다시 자취의 길로 들어설 것이 거의 확실하다. 지금 당시를 회상할 때 대체로 긍정적인 추억만이 간직된 자취생활...만약 한학기 후에 기숙사를 나와 자취를 하게 된다면 나는 다시 그 때로 돌아간 듯한 설렘에 빠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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