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봄, 스물두살 어느 날)
일제 강점기에 현진건이 쓴 작품 가운데 <술 권하는 사회>라는 유명한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 속에서 제목이 뜻하는 바와는 별도로 ‘술 권하는 사회’라는 말은 일상의 스트레스나 애환을 술로써 잊고자 하는 의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남에게 권하고자 하는 정(情)의 개념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따라서 이 말은 한국인의 공감을 얻어 일종의 관용적 표현처럼 쓰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 속에서는 어떤 대상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 보다는 술을 한 잔 걸치고 대하듯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더욱 익숙한 듯 하다. 동시에 한국인은 정이 넘쳐서 자신이 느끼는 신명을 주위 사람까지 함께 느끼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한국인에게 있어서 ‘시장경제’가 지니는 의미를 엿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이긴 하지만 자본주의나 시장경제, 이 두가지 개념은 모두가 저 대륙과 바다를 너머 먼 곳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경제 체제를 적용한 사회들 사이에서도 기존의 문화나 정서와의 정합성은 필연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특히 한국 문화 내에서 시장경제와 부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미래 한국 내에서 시장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결론부터 내려보자면 한국 사회는 시장경제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적 정서나 문화는 시장경제적 감각을 익히는 데 장애요인이 되곤 한다. 이런 사레는 우리가 흔히 겪는 일상 생활에서 수도 없이 많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설날이 되면 세뱃돈을 받을 기대로 가득 차있었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돈을 모아서 원하는 물건을 살 생각에 한껏 마음이 부풀어오르곤 했다. 하지만 많은 돈을 아이들의 손에 맡기는 것을 걱정스럽게 여기는 부모님은 그 돈을 관리해주겠다는 명목하에 세뱃돈을 거두어가곤 한다. 결국 그 돈은 다시 우리 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한편 한국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가정 내의 경제 문제에 대해서 가능하면 무관심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설혹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할지라도 웬만큼 심각한 수준이 아니면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잘 말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 집에 빚이 얼마나 있는지 여부, 동산-부동산의 규모, 부모님의 연간 소득 등등 현재 집안의 재무상태에 대해 신경쓰는 것을 주제넘은 것으로 간주하고 심한 경우에는 거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자체를 나무랄 때도 있다.
이런 부모님들의 경향은 자식들이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권한을 얻은 후에도 계속된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많은 경우 집안이 그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아르바이트와 같은 직접적 노동을 해서 돈을 벌기 보다는 그 시간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으라는 말을 듣곤 한다. 다시 말하자면 대학생들이 소득창출활동(아르바이트)에 쏟는 시간은 사회 활동을 경험하는 시간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버려지는 시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생활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있다. 시장경제의 기본 메커니즘은 ‘정부나 국가의 통제 보다는 시장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 이란 점을 생각해 볼 때 한국의 문화나 정서 속에서 시장경제 감각을 익히는 것은 끊임없이 방해받곤 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례들이 나타나는 배경에는 시장경제와 충돌하는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이러한 갈등들은 위와 같은 한국의 문화적 정서 속에서 성장한 사회 구성원들이 한국 경제의 주역이 되었을 때 어떤 문제점을 야기할 것인가?
경제학의 출발이 “인간의 무한한 욕구를 한정된 자원을 통해 어떻게 최대한으로 충족시킬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됨을 감안할 때 자신에게 주어진 재화(돈)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은 시장경제를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요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관습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서는 한 집안 내의 정치적, 경제적 권한이 가장(家長)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가장을 제외한 다른 구성원은 설혹 자신의 수중에 쥐여진 돈이라 하더라도 가장의 허락없이 그 돈을 쓰는 것은 자기 권한을 벗어나는 행동이라 여겼다. 따라서 아직도 많은 경우 집안의 아이들이 받아온 세뱃돈은 부모님이 관리하고 아이들은 자기가 가진 돈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기회를 잃고있다.
또한 각 경제 주체들이 자신이 가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재무 상태에 대해 깊은 주위를 기울여야 한다. 자산 가치가 70억 이상이 되는 기업이 외부의 감사를 받아서 매년, 혹은 매분기에 대차대조표를 비롯한 재무제표를 공시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경제 주체가 재무적 현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나라의 자녀들이 부모들로부터 집안의 재무상태에 대해 무관심하도록 만들어지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생활을 위한 정보의 접근을 봉쇄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신의 경제적 현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카드를 긁어대는 젊은이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여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시장경제는 경제활동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이나 생산수단이 국가가 아닌 각 개인에게 있다. 그만큼 경제활동을 할 때 시장 내의 경제주체들은 수동적으로 지시받거나 보호해주기를 바라기 보다는 역동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경쟁해야만 한다. 하지만 자식들이 직접 사회에 나가 경쟁하며 돈을 벌어오기 보다는 좀더 자신들의 보호 속에서 공부에 매진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는 한국 사회 부모들은 자율과 경쟁이라는 요소의 싹을 자르는 결과를 낳고있다.
돈에 대해서 가지는 한국 사회의 시선도 많은 문제점을 갖고있다. 돈이란 재화의 거래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치를 축적하거나 측정함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서 열심히 일하여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예로부터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돈을 버는 상업 행위를 천하게 여기던 인식은 자유롭고 떳떳하게 경제활동을 할 의욕을 저하시킨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머리 속에는 기본적으로 유교적 성선설(性善說)에 기초한 인간관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로 인해서 가치중립적 단어인 ‘욕구’나 ‘경쟁’이란 말은 다소 부정적인 뜻으로 간주되곤 한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각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라든가 ‘공급자는 수요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유롭게 경쟁한다’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시장경제는 정서적으로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렇듯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 속에서는 시장경제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들이 많이 존재한다. 물론 시장경제체제 또한 인간이 만든 것인 만큼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유로운 경쟁, 합리적 판단, 자율적인 경제활동과 같이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들이 문화적 요인에 의해 방해받는 것은 옳지 않다.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한 사회라면 그 체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장점을 저해하는 요인을 고쳐나가는 것 또한 전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규 교육과정인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교과목들을 살펴보면 ‘경제’과목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과정은 고등학교뿐이다. 그나마 이 교과목마저도 몇 년 전 부터는 사회과목 내의 선택교과로 지정되어 모든 학생이 배우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많은 학생들은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를 대해야 하는 경제보다는 다소 적은 노력으로 점수를 딸 수 있는 다른 사회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가 사회-문화적으로 시장경제적 감각을 익히기 어렵다고 하지만 제도 교육마저도 시장경제를 배울 기회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시장경제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 모르기 권하는’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사회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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