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른 봄, 스무살의 어느 날)
대한민국에서 대학생활을 논하는 데 있어서 술을 빼놓을 수는 없다. 오죽하면 연세대 앞 신촌거리가 단위 면적당 술집 숫자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명예로운 통계 자료가 있을까? 대학 다니는 것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서 나라를 위해 일해줄 큰 일꾼이 되어간다는 것만으로도 대학생이 되는 것은 나라를 위한 투자이다. 하지만 그 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주세(主稅)를 통해 직접적으로 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도 확실히 대학에 가는 것은 나 뿐 만이 아니라 이 사회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지난 12일 갔었던 우리 과 엠티에서 나를 포함한 50여명이 소주 100병 + 맥주 피쳐 몇 병을 간단히 처리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술은 악마가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라 했던가? 실제 술은 선물과 같이 달콤하고 즐겁고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악마와같이 어둡고 사악하기도 하다. (우리 말의 특징이 같은 병렬구조의 나열형 문장이라 하더라도 마치 포인트가 뒤에 더 실린 듯한 묘한 늬앙스를 풍긴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문장에 대해서는 그런 선입견을 버렸으면 한다. 실제 내 의도는 50 : 50 대등한 중립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술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술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서는 이미 대학국어 시간에도 언급했을 뿐 아니라 평소에도 사람들 사이에 자주 논의되는 부분이기에 별로 논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그 대신에 나는 주도(酒道)와 술자리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술을 마시는 데에는 주도라는 말이 심심찬게 언급된다. 물이나 비버리지를 마시고 따를 때에는 수도(水道)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유독 술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道를 많이 따지게 된다. 사실 道라는 개념은 노장사상에서 찾을 수 있는 매우 심오한 진리이다. (실제 여러 사상들 중에서도 학자들 사이에 가장 해석상 논쟁이 잦은 개념 또한 이 道라고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스스로가 행하는 방법에 대해 道라는 말을 붙이기를 조심스러워 하는 이 마당에 인간도,동식물도 아닌 그저 무생물의 하나인 술에다가 이렇게 거창한 명찰을 붙여주는것이 어쩌면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돌려서 생각해 보자. 대표이사, CEO 등등 그가 달고 있는 명찰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그가 지니고 있는 권한이나 책임 또한 막중하다.(실제 현실은 조금 다른 듯 하긴 하지만...) 다시 또 역으로 생각해 보면 만약 그런 명찰을 달고 있는 주체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면 이후에 초래되는 일들 또한 어마어마한 것이 된다.
이젠 술에다가 道라는 심오한 명찰을 붙여주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술을 마시게 되면 인간은 사소한 말 하나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웃음꽃이 피기도 한다. 특히 술을 먹은 상태에서 말싸움이든 몸싸움이든 싸움이 일어나면 스스로 주체하기가 매우 힘들다. 어쩌면 우리 지혜로우신 조상님들은 이렇게 위험한 술을 다루기 위해서는 조심스런 예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酒道를 정착시킨 것이 아닐까? 윗사람에게 술을 따르거나 받을 때에는 반드시 두 손으로 공손히 하라, 후래자삼배(後來者三杯) 등등 주도가 복잡해진 것은 술로 인해 다소 판단력이 약해진 사람들이 사소한 빗나감에도 발끈하는 일이 없도록 공통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예를 만들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잠깐 잡소리)
이번 글은 이상하게 서론이 무지무지하게 길어졌다. 그렇다 해서 본론이 그에 비례해서 긴 것은 아니다. 글 하나하나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나로서는 지금 이 가분수 작품이 하나 태어나게 된 데 대해서 이 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새내기 생활과 관련된 나의 술 이야기를 해보자. 가만히 돌이켜보면 입학 이후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거의 한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인 것 같다. 특히 새내기인 이상 처음 만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술자리에서 통성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히 대부분의 경우 서로 첫 이름을 듣는 때는 술이 취한 상태일 때가 많았고 다음 날 아침 늘어난 핸드폰 번호 저장함에있는 낯선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처럼 술은 정신이 멀쩡하다면 처음 만나서 서로 멀뚱멀뚱 서먹할 사이를 단번에 친하게 만들어주는 멋진 마력이 있다. 비록 다음 날 멀쩡한 상태에서 다시 만났을 때 살짝 어색한 기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술로 인해 열린 마음에서 대화를 했으므로 가슴속 깊이는 서로 반가워하고 있었고...상대방도 그랬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좋은 면이 있는 반면에 술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 어두운 면도 짚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 나는 술 자체의 어두운 면 보다는 술자리에서의 술 문화를 지적하고 싶다.
흔히들 우리 나라를 술 권하는 사회라고 한다. 술 한 병 값에 상응하는 현금을 빌려달라(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하면 바로 의심부터 하며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누군가가 술 한 병을 원샷하면 그 사람의 소화 기능과 전혀 관계 없는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곤 한다. 상대방에게 먹임으로써 기쁨을 느끼는 엄마같은 푸근함이 전달되는 매개체로서 술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만약 상대방에 그 술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먹이는 행위는 강요가 된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술 문화에서 술을 강요하는 행위는 매우 일반화 된 것 같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런 문화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물리적 힘을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것...하지만 사실 폭력은 나 아닌 타인에게 그가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하게 하는 것, 혹은 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모든 말, 행동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도덕적인 명분이 없는 이상 개인은 동등한 인격체이고 A는 B에게 B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어떤 제약도 가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나이가 많다, 혹은 선배이다 라는 사실은 앞서 말한 '강요를 합리화할 수 있는 명분'에 절.대.로. 포함되지 않는다.
다시 술의 이야기로 돌아가서...술을 강요한다는 것. 이미 강요라는 말에는 주도권 방향이 포함돼 있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술을 강요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상상하기 어렵듯이 강요의 화살표는 강자→약자를 향한다. 그리고 그 화살은 폭력의 방향이라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내 눈에는 술 강요가 이뤄지는 테이블 위가 폭력의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곳엔 강자와 약자가 있고 화살이 있기 때문이다. 화살에 맞은 약자는 고통스러워하고 화살로 원하는 것을 맞춘 강자는 즐거워한다.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그가 나와 같이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야만적인 행동인가? 사람의 신체,환경,신념 등등은 너무도 다양하다. 오죽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수천 수만명의 사람이 있다는 말도 있을까? 공자도 50세가 되어서야 지천명이라 했다. 자신을 아는 것도 이렇게 힘들 일이거늘 남의 속을 어떻게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남도 모두 나와 같다고, 내가 술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해서 남도 좋아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큰 착각이다.
나는 대학에 첫 발을 내딛은 새내기이다. 위에서 말한 이분법적 구분을 굳이 적용하자면 대학 사회에서는 가장 약자로 분류될 것이다. 내 입장이 약자의 입장이기에 술 강요 문화를 증오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판단이 단순한 감정적 피해의식에서 나왔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나름대로 객관적 입장에서의 고민 끝내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학 사회에서 술에 대해 느낀 나의 생각은 이 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소재가 술이었던 만큼 우리 모두가 할 말이 많은 주제이고 그만큼 프레임이 한정된 이 게시판에서 표현하기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는바~ 언젠가 술 한잔 기울이며 진지하게 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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