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른 봄, 스물네살의 어느 날)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밈Meme으로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의교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확장된 표현형'이란 개념을 내놓은 바 있다. 아직 <확장된 표현형 Extended Phenotype>을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조금이나마 언급된 설명을 읽어보았다. 원래 표현형이란 유전자가 신체에 끼치는 효과에 대해 말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파란 눈을 갖게 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실제로 파란 눈을 갖는 것, 검은 피부를 갖게 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흑인으로 태어나는 것 등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렇게 전통적으로는 유전자의 표현형이 미치는 범위를 생물체의 몸까지로 한정해왔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표현형의 효과를 생물 개체의 체벽 바깥까지로 확장시켰다. 비버beaver가 나뭇가지를 모아 댐을 만드는 것, 새가 집을 만드는 것 까지도 모두 유전자의 표현형으로 생각한 것이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 역시도 확장된 표현형이다. 다만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특수성을 꼽자면 그것이 단순한 물리적 편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식과 사고를 돕는 형태로 발전해왔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문자를 발명함으로 인해서 가능해졌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인쇄술을 발전시킴으로써 급격히 촉진될 수 있었다.
이렇게 책은 인간의 뇌가 수용할 수 있는 지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보조기억매체로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PC의 기억 용량을 보안하기 위해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 콤팩트 디스크CD:Compact Disk, USB 등등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인간은 책으로 인해 대를 거듭하여 더 많은 정보를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후대 인간은 자신의 조상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피해가며 새로운 지식을 더욱 신속하게 쌓을 수 있었다.
이틀 전 나는 우리 집 책장에 꽂힌 책들을 모두 세어보았다. 약 1천 200권이 조금 넘었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되는 셈이다. 주로 나보다는 어머니가 많이 읽으셨으니 아직 나로서는 더욱 무궁무진한 활자의 블루 오션blue ocean을 가진 것과 같다. 아무튼 이 숫자는 회계원리나 조직행동, 치위생학과 관련된 나와 내 동생의 전공 서적들은 제외한 수치이다. 이런 책들은 일반 책들 보다 훨씬 비쌀테니 실제 모든 책들의 가격을 합한다면 금액은 대폭 상승할 것이다.
사람들은 책을 구입하면 무조건 다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구입하여 대략적인 내용과 목차를 인지한 상태에서 내 책장에 꽂힌 책은 언제든지 내가 참고할 일이 생길 때 꺼내서 찾아볼 수 있다. 설사 한 번 읽고 세부적인 내용은 잊어버렸다 할지라도 나중에 다시 그것을 떠올리기 위해서 그 책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보조기억매체로써 책을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약 2천년 전,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는 전 세계의 책을 한 곳에 모아두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 아래 대형 도서관이 건립된 적이 있었다. 당시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왕은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드나드는 모든 배들을 샅샅이 뒤지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밀수품을 검사하려는 것이기도 했지만 더 큰 목적은 책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책이 발견되면 무조건 압수하여 도서관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손으로 베껴 사본을 만들고 난 후 원본을 돌려주는 식이었다. 때로는 탐나는 책이 있을 땐 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가져가는 야비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 도서관은 이후 로마의 침략으로 불타버림으로써 인류의 수많은 기억들이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미 수천년 전에도 책은 인간의 귀중한 확장된 표현형으로써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유네스코는 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복원하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물론 이 계획의 목적은 2천년 전과 같은 '지식의 집적'이 아닌 '문화재 복원' 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바이스David A. Vise가 쓴 <구글 성공 신화의 비밀 The Google Story>은 최근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 구글Google이 미국 여러 대학들의 장서들을 스캔하여 구글 페이지에서 검색이 가능하도록 추진하는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 모든 도서관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기술적인 문제, 저작권의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일단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비록 현재로선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은 인간의 확장된 표현형이 지난 스무 세기 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실감케 한다.
인간이 최초로 갖게 된 확장된 표현형은 아마도 지금의 원숭이가 그러듯이 1~2미터 정도의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먹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활이나 창을 이용해서 사냥을 함으로써 표현형이 미치는 범위도 수십미터 단위로 늘어났다. 이렇게 빠르게 확장된 인간의 표현형은 결국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오늘날 전 세계를 뒤덮으려 하는 것이다.
문득 구글이라는 회사명이 실감된다. 미국의 수학자 캐스너Edward Kasner는 9살의 어린 조카에게 장난삼아 세상에서 가장 큰 수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조카는 1다음에 0을 신나게, 말 그대로 수도 없이 붙인 후 그 숫자를 구골Googol이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처음 회사명을 만들 때 이 구골의 철자를 잘못 써넣어 지금의 구글Google이 된 것이다. 이렇게 구글은 말 그대로 인류에게 구골스러운 혁명을 가져오려 하는 것 같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인간의 확장된 표현형이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는 동안에 전통적인 의미의 인간은 과연 얼마나 진화했냐는 사실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거의 진화하지 않았다. 이렇게 멀어져만 가는 두 진화의 좌표축 사이에 끼인 인간은 과연 어느 쪽에 자신의 주된 정체성을 두어야 하는 것일까?
책이라는 확장된 표현형으로 전 세계에 양적, 질적으로 급격하게 퍼진 지식은 이제 단순히 소프트웨어software가 아닌, 실제 물리적인 힘을 가진 수많은 하드웨어hardware의 발달도 촉진시켰다. 인간의 과학적 지식은 자동차와 선박을 넘어 이제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로 전 세계를 하루라는 시간 속에 덮고 있다. 급기야 이런 물리적 확장된 표현형은 지구를 벗어나 달까지, 우주에게 까지도 조금씩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워쇼스키 형제Andy & Larry Wachowski가 감독을 맡아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매트릭스 Matrix>. 나는 이 영화 속에서 미래에 확장된 표현형이 극대화된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인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은 기계에 의해 황폐화된 지구. 그러나 그들은 프로그래밍 된 멋지고 화려한 가상 현실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싸우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현실이라고 착각한다.
사실 현실이란 단어 자체도 정의내리기 힘들다. 영화 속 모피어스Morpheus의 말대로 무엇이 현실인가? 보고, 느끼고, 만지고, 맛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미 그것은 눈을 감고서 머리에 연결된 프로그램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들이다. 장자將子의 말 처럼 내가 꿈을 꿔서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을 꾼 것이 지금의 나인가. 확장된 표현형이 지금으로선 인터넷 게임, TV 등등과 같은 꿈의 영역이라면 언젠가 이것이 확장되어 과연 어느 쪽이 꿈인지 헷갈리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결국 이렇게 비대해진 확장된 표현형 아래 인간은 기본적인 영양 공급, 배설, 생식을 제외하면 모든 신체적 활동을 확장된 표현형에게 넘기게 될 것이다. 이제 고전적 의미의 인간이라 불리는 동물은 많은 기관이 퇴화될지도 모른다.
스티븐 스필버그Stephen Spielberg 감독의 공상 과학 영화 <ET>의 제작 과정에서는 외계인 ET의 모습을 만들 때 이런 점들을 고려했다고 한다. 버튼을 많이 눌러야 하니 길게 진화된 손가락, 화면을 봐야 하니 커진 눈, 걸어서 이동할 필요가 없으니 짧아진 다리 등등. 미美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하지만 그리 유쾌한 상상은 아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ber의 <나무>에 수록된 단편 <완전한 은둔자>. 주인공 귀스타프는 인간이 육체를 가짐으로 인해 먹어야 하고 자야만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는 영원히 사고思考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수술을 통해 자신의 뇌만을 남겨둔 채 다른 모든 기관을 제거하기로 한다. 그는 수술 전 그의 아내에게 자신의 뇌를 - 자신을 - 영양액 속에 넣은 채 대를 이어 보관해달라고 부탁한다.
만약 여기서 그의 뇌에다가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케이블만 꽂는다면 그것이 바로 인류의 미래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단편의 결말은 그의 집에 놀러온 손자의 친구들이 뇌를 함부로 만지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고 결국 그것을 개가 먹는 것으로 끝난다. 이 허무한 결말이 단순히 귀스타프만의 종말은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얼마 전 신문에서 온라인 게임에 푹 빠진 아들을 걱정하는 한 아버지의 상담글을 보았다. 그의 아들은 인터넷 게임에서 아이템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슬픔에 잠겨있다고 했다. 소위 '현실'의 무게를 아직은 '전통적 인간'속에 두고 있는 우리 세대로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미 현실의 많은 부분을 '확장된 표현형'인 온라인 세계로 이양시킨 차세대 아이들에겐 그것이 충분히 슬퍼할 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온라인 상에서 '군주'와 '신하'가 분리되어 신하는 목숨을 바쳐 전쟁에서 군주를 보호한다. 군주는 화면을 보며 혼자서 방안에서 눈물을 흘린다. 온라인을 통해 서로의 아바타avatar에게 선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채팅을 통해 사랑도, 싸움도 할 수 있다.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케이블을 통해 뇌파와 연결하여 성적인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기술까지도 개발되었다는 지금, 애인을 사귀고 결혼을 하는 것 까지 온라인으로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멋 훗날 인류학자에게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지금처럼 '2미터가 조금 안 되는 크기의 생물체이며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하나, 팔과 다리가 각각 두 개씩 달렸다. 두 손으로는 물건을 잡거나 조작하고 두 다리로는 걷거나 달린다. 그리고 머리로는 생각한다.' 아마도 많은 부분이 수정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젠 손으로 물건을 만질 필요도, 다리로 걸을 필요도, 심지어는 머리로 생각할 필요도 없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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