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스물여덟살의 어느 날)
원하는 방향과 그것에 맞지 않는 현실 사이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내 스스로가 현실에 맞추어 변하는 것, 다른 하나는 현실이 어떻든 그것을 원하는대로 해석하여 둘 사이의 갭을 좁혀서 일치시키는 것.
인지부조화 상태로 평생을 살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주위에서 아무리 이 방향이 옳은 것 같다고 해도 스스로가 변할 수 없다면, 혹은 그럴 의지조차 없다면 후자의 방법을 택해야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가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못마땅한 것도 있게 마련. 하지만 후자를 택한 사람은 마음에 드는 것만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의식적으로 외면하려 한다. 그리고 그 훈련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실제로 보기 싫은 것, 듣기 싫은 것은 알아서 걸러내어 마음 속에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의식적인 자아도, 무의식적인 자아도 스스로를 속이는 데 익숙하다 보니 판단력을 잃고 만다. 자기가 만든 시뮬레이션과 바깥 현실을 혼동하는 셈이다. 자기만의 매트릭스에 갇힌 채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는구나." (과연...)
"거봐 내 말이 맞지?" (당신 생각과 일치하는 극히 일부분만....)
애초에 세상과 어긋날 수 밖에 없이 태어난 사람이 정상적으로 자기 수명만큼 살아가려면 생존을 위한 필사의 방법을 써야한다. 내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후자를 택한 사람은 어찌 보면 참 불쌍한 사람이다. 60억 명 중 한명인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나머지 5,999,999,999 명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하니까. 부적응자들의 필연적인 자기방어기제라고나 할까?
타조는 사냥꾼에 쫓길 때 자기의 머리를 구덩이에 파묻는다고 한다. 자기가 사냥꾼을 보지 않으면 사냥꾼도 자기를 못 본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세상이 자기 눈 하나 감음으로서 바뀐다고 생각한다. 기억력이 짧은 사람을 붕어, 뻘짓하는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하듯이, 세상을 왜곡하여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은 타조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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