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선물, 신비한 영혼의 마법

(2008년 이른 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지난 몇 년간 내가 받은 선물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소포로 책을 보내준 10명 넘는 친구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 책들은 모두 책꺼풀에 곱게 싸인 채 내 책장에 소중하게 꽂혀있다. 어느 형은 내 생일 때 책 한권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모은 CD 한 장을 주었다. 한 여자 동기는 내가 처음 귀를 뚫었을 때 양 쪽 귀에 하나씩 예쁜 귀걸이를 선물해주었다. 그녀는 마음도 춥던 이등병 겨울 때 로션도 주었으며 서울에서 혼자 자취생활 할 때 양말이 부족하단 내 말에 양말 몇 켤레를 사주기도 했다. 2년 정도 함께 지냈던 누나는 책 한 권, 그리고 크리스마스엔 다음 해年 다이어리를 선물해주었다. 한편 나같은 애연가愛煙家에게 담배는 싼 값에 얼마든지 환영받는 선물이다. 지금껏 선물 받은 담배는 몇 갑인지 셀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준 선물은 얼마나 될까? 몇 안 되다 보니 부끄러워서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분명 받은 것 보단 훨씬 적다. 곰같이 둔한 성격, 치밀하게 계산할 줄 모르는 머리 때문에 늘 손해보며 산다고 불평하지만 막상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 이렇게 눈에 띄게 받은 정성만 해도 보답하기 벅찬데 보이지 않게 받아온 마음들은 평생을 두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선물이란 밥 한끼 사주거나 영화 한 편 보여주는 것 보단 이렇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물건이 더 좋다. 선물받은 물건을 보면 어김없이 그것을 준 사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선물이란 매개체를 통해 선물을 준 사람과 잠시나마 함께 있는 것과 같다. 이 말은 한낱 메타포로 넘기기엔 아까울 만큼 의미가 크다. 선물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두 사람을 이어준다.

 "너와 함께 있다."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가리킬까? 영어에서 너you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2인칭 대명사지만 너의 몸your body, 너의 정신your soul은 이미 흔하디 흔한 3인칭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해서 '너', '나', '우리'라는 것은 육체, 생각, 정신을 비롯하여 더 많은 것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지닌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여인과 살을 맞대고 포옹을 해도 나는 결코 그녀와 함께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몸her body와 함께일 뿐.

 하지만 인간은 이렇게 상대방의 육체나 정신, 그 일부라도 곁에 두고 싶어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의 모두를 소유하려 한다. 비록 사랑하지만 만날 수는 없는 가족의 사진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아버지. 클럽에서 만난 여인과의 애정 없는 동침 후 밝은 아침 태양 아래서 허망함을 느끼는 철없는 청년. 이 두 사람은 상대방의 전부를 곁에 둘 수 없기에 슬퍼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누군가의 영혼은 나에게 있지만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을 때, 그리고 한 침대 위에 있지만 마음은 제각각의 세계를 떠돌 때 그들은 결코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선물을 받고픈 욕구도 이런 소유욕과 다르지 않다. 선물을 받는 것이 기쁜 이유는 준 사람의 마음과 함께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물건까지도 곁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머리 속에 살아있는 그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나는 그와 함께이다. 그를 만나지 않았을 땐 갖지 않았던 버릇들이 - 예컨데 걸음걸이, 말투, 사소한 습관 - 나에게 남아있다면 역시나 그는 아직 나를 떠나지 않은 셈이다. 선물은 그 자체로 주는 이의 분신分身인 동시에 내 머리와 가슴 속으로 그의 영혼을 소환召喚하는 강력한 마법이다.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선물은 애정에의 욕구을 충족시킨다. 끝없이 번식하려는 유전자처럼,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타인의 기억 속으로 침투하여 확장되기를 갈망한다. 내가 죽었을 때, 세상 누구의 가슴 속에도 공허함과 빈자리가 남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것은 나의 육체가 죽기 보다 훨씬 전부터 나의 영혼이 죽어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묻지만 아무런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존재함으로써 세상이 아주 조금이나마 달라진다고 믿기에 오늘도 힘겨운 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가 나의 선물을 보며 잠시 나를 떠올린다면 그 순간 나는 더 큰 존재가 된다.

 이렇게 선물은 주는 쪽, 받는 쪽 모두의 애정욕을 채우는 마법이다. 이무런 생각 없이 받기만 했던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왔을까? 선물의 손익계산서는 회계학에서와는 다른, 무한 이득으로 발산하는 신비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새해부터는 좀 더 많은 사람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주어야 겠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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