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었어, 장난이었어

(2005년 여름, 스물두살 어느 날)


요즘 우리 세대들의 문화 코드는 욕이라고 하던가? 단어 하나하나를 두고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장 혹은 대화 단위로 우리 대화를 가만히 뜯어보면 언어 코드는 농담, 장난이 아닐까 싶다. 되돌아 보면 우리가 친구들과 나누는 말의 반 정도는 농담 따먹기로 채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친구들과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서는 전혀 남는 것이 없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 진지한 말이 8할 이상이면 범상치 않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이 세상. 그만큼 세상이 긍정적이고 명랑하게 흘러간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왠지 깊이있는 교감을 하기 힘들단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좀 더 편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농담을 던지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서로의 진실한 모습이 가려지고 있지는 않을까?

한편으로 농담은 격식을 갖춘 말과 대척점에 서는 말이다. 그만큼 정중한 말 보다는 다소 무례하게 들릴 가능성도 큰 말이다. 그렇다 보니 농담이 만연한 이 현실 아래에선 자잘하게 상처받을 일도 많다. 물론 농담을 하는 사람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처의 아픔은 그 말을 던진 사람의 의도를 고려해서 듣는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 아니다. 말한 사람의 의도가 어떻든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프다면 예외없이 그 말은 독설이 되는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싸움들의 원인을 잘 살펴보면 많은 경우에 "난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 혹은 "에이 농담으로(혹은 장난으로) 한 말 가지고 뭘 그래"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농담이란 상처를 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로 인해 상처를 받으면 농담조차 받아들일 줄 모르는 센스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상처를 줄 의도가 아니라면 듣는 사람의 센스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입부터 고칠 줄 알아야 한다. 농담을 꺼내는 사람은 말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 말이 농담이 될지 독설이 될지를 판단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은 자신의 의도가 아닌 척 남에게 상처를 입히기 좋은 구조인 것 같다. 상대방에게 말 한마디로 상처를 주고 나서 자신은 농담이었다는 합리화 속에 숨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이 그 말을 가지고 비난한다면 듣는 사람을 '속 좁은 사람', '센스 없는 사람'으로 몰아가면 된다.

농담이 만연한 사회에서 농담은 사회생활을 해나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돼버렸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서 적절히 농담을 사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지 여부를 신중히 생각하지 않은 채 농담을 남발한다면 그는 혀 속에 무수한 바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바늘은 상대방의 마음도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입에도 상처를 입힌다.

농담은 듣는 사람이 진심으로 함께 웃고 즐거워할 때에만 농담이다. 농담은 그 자체로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그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책임은 농담을 내뱉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결코 듣는 사람이 소심하다고, 센스가 없다고 비웃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