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서평) 기업을 위한 변명 - 송병락

(2004년 여름, 스물한살의 어느 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 속에는 어떤 것들이 떠오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버는 단체’, ‘끊임없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 좀 더 단편적인 영상을 떠올린다면 거대 재벌의 고층빌딩이나 배부른 사장님이 회전 의자에 앉아 책상에 다리를 얹은 채 하급 사원의 서류에 결제해주는 모습 정도를 떠올리는 듯 하다.

뉴스에서는 경제 지표를 다룰 때 주로 국가 전체적인 차원의 시각에서 보도를 한다. 우리는 뉴스에서 GDP / GNP와 같은 수치나 경상 수지, 무역 수지가 적자니 흑자니 하는 말은 자주 듣지만 한 기업이 흑자나 적자를 냈다는 소식은 자주 들을 수가 없다. 물론 중립을 생명으로 하는 뉴스, 신문과 같은 언론이 엄연히 사적 단체라 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해 자세한 보도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업에 대해 가지는 인식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제적 기능 보다는 (이러한 기능은 국가 경제와 같은 거시적 기사에 묻혀버린다) 부정적인 면이나 기업의 비리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게 마련이다.

송병락 교수의 『기업을 위한 변명』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듯 지금까지 언론과 일반 국민의 부정적 여론에 묻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억울했던 ‘기업’ 이란 존재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좀 더 나아가서 한국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책이다. 한편 작금의 시사적 상황과 관련지어 이 책을 평가하자면 이 책은 현 정부가 친 노동자 정책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저자가 기업가의 자리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호소하는 다소 용기있는 발언을 담은 책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4부 14강으로 나누어져있다. 그리고 전체적인 분량도 240페이지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아 누구든지 부담없이 펼칠 수 있는 책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기업을 변호하는 입장으로서 지금껏 못다한 할 말이 많기에 이 책의 분량이 자칫 방대하게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진정 기업을 위한 변명이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많은 자료를 나열하며 독자들에게 밀어붙이기 보다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쉽게 공감하며 읽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듯 하다. 이런 저자의 의도를 반영하듯 이 책은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만 있다면 누구든지 개략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수준의 용어와 이론으로 일관한다.

이 책을 펴면서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특징은 저자가 현재 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듯이 책의 구성도 머리말, 꼬리말(혹은 프롤로그, 에필로그) 대신에 ‘개강’, ‘종강’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세부 항목을 지칭하는 1장, 2장도 ‘1강의’, ‘2강의’ 라는 용어로 대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한 학기의 강의가 14~16주차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실제로 우리는 이 14강의로 구성된 책을 통해 저자의 강의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된다. 실제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을 때 마치 저자가 자기 앞에 서서 강의를 한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선생님들은 강의를 할 때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사실에 대해 특정한 답변을 기대하면서 전체 학생에게 의문형의 문장을 자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기업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한국 기업이 지나치게 높은 세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중국이나 동남아로 공장을 옮긴다면 국내 산업은 어떤 피해를 입을까?” 와 같은 물음이 그런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치 독자들에게 강의를 하듯 위와 같은 의문을 자주 던진다. 따라서 우리는 책을 일방적으로 읽는 객체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며 책에 몰입할 수 있는 주체가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의 오랜 강의와 연구의 연륜을 반영하듯 풍부한 기업의 예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을 위한 변명』의 궁극적인 목적이 한국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연구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한국 기업이 본받아야 할 모델에 대한 풍부한 예시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주로 미국과 일본의 기업의 예를 가장 비중있게 다루었지만 (특히 미국의 GM과 일본의 TOYOTA) 유럽의 기업도 비교적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한국 기업의 미래상에 대해 많은 모델을 제시한 점은 높이 살 만 하다.

이 책의 세 번째 특징은 확신에 찬 저자의 문체에 있다. 물론 어떤 저자든지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마치 스스로의 이론이 어떤 반박의 여지도 없다는 듯 확신에 찬 듯한 태도를 보인다. ‘차례’ 부분에서 보이는 소제목들은 “~하라”, “~한다” 라는, 건조하지만 설득력있는 강경체의 종결어미가 많다. 그리고 실제 책의 내용 부분에서도 문장들이 비교적 짧고 당위적 표현이 다른 책에 비해 유난히 자주 눈에 뜨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저자의 태도에 의해 지금까지 부정적 여론에 묻혀있던 기업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얻게 된다. 기업은 사람들의 편리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고 긍정적 기능을 많이 한다는 말이 왜 신선하게 들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기업이 좋다는 것을 좋다고 말하기 힘들었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결코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꼽고 싶은 측면은 저자가 강경한 기업 옹호론을 펼치는 데 반해 기업의 부정적 측면은 의식적으로 외면하고자 하는 듯한 태도이다. 물론 그는 많은 사람들이(독자들이) 이미 기업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언론과 사회적 여론에 의해 자주 접했다는 것을 전제로 이 책을 썼다. 따라서 그의 주장이 기업의 부정적 측면 보다는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진 주장이든 그 주장에 반하는 목소리에 대한 반박이 없다면 그 주장은 저자 혼자만의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점을 간과한 듯 하다. 단적인 예로 총 45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지닌 1부에서는 무려 4개의 강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부정적 측면을 언급하는 것은 겨우 마지막 4강의에서 7줄에 그친다. 그것도 기업의 부정적 측면을 개선하는 방향을 언급하기 보다는 “대기업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장점이 많기 때문에 대기업은 많이 살아남아야 한다.” 라는 식의 다소 설득력 없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편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듯 하다. 따지고 보면 기업이란 것은 자본주의를 전제로 한 이익 단체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는 바로 기업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모든 논의의 초점을 자본주의에 두는 것은 당연한 설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 7강의에서 말하듯 애초부터 대한민국의 인구는 4천500만(북한 인구는 제외한 수치)이라고 못 박는 것은 도가 지나쳤다고 본다. 다소 민감한 사안일 수도 있는 남북문제에 대한 저자의 이와 같은 일방적인 서술은 자칫 다양한 부류의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태도로 비춰질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에는 그의 기업학 강의를 듣기 위해 동조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다소 진보적인 입장에서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독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독자들은 애초에 이 책을 접할 때 저자의 주장으로부터 반박할 점을 찾아내어 또다시 그것을 반박하기 위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약 그런 독자들이 대한민국 인구가 4청500만이라는 식의 말을 듣는다면 어떤 태도를 취할까? 또한 “정부가 얼마나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마땅한가?”, “대기업의 강제적인 해체는 바람직한가?” 와 같은 경제 정책은 아직도 많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은 사안이다. 이러한 와중에도 저자는 “정부의 시장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제 7강의)”, “대기업은 계속 유지 되어야 한다(제 3강의)” 는 식의 주장을 비판의 여지없이 계속하고 있다. 이렇듯 좀 더 다양한 독자들을 의식하지 못한 저자의 태도는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앞서 밝혔듯 저자는 한국 기업이 본받아야 할 다양한 모델들로 성공적인 기업의 예를 많이 제시해주었다. 조금 과장이 섞인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기업들만 모두 안다고 해도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이름과 그 특성은 대략 분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이런 풍부한 사례들은 양면의 동전과 같아 정작 중요한 논의의 본질에 대해서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론과 사례는 바늘과 실에 비유될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있어서 이론만을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지루한 주장에 불과하며 사례만을 늘어놓는다면 알맹이 없는 껍데기 나열에 불과하다. 이 책은 이러한 스팩트럼 위에 얹어서 평가하자면 후자쪽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각 기업들의 모범적인 사례들을 열거함으로써 우리 피부에 와 닿기는 하였지만 진정 우리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로는 독창적 이론의 체계가 다소 부족한 면이 보인다.

이와 같은 여러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노골적인 태도로 기업과 기업가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기업에 대한 편견을 벗기에 적절한 책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어떤 사회적 메커니즘도 완벽한 것은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많은 순기능을 하는 기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른 것은 모두 차치하더라도 『기업을 위한 변명』은 매우 기본적이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기업의 고마움과 중요성에 대해 한 번 쯤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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