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여름, 스물 한 살의 어느 날)
아마 일반적으로 대학의 많은 학과 가운데서도 그것의 학문적 정당성에 대해서 가장 많이 비판받는 과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경영학과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아마도 일반 사람들이 경영학 이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장사꾼" 이자 이윤에만 눈이 어두운 악덕 기업 소유주 정도를 연상하는 듯 하다. 특히 그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경영학과에 입학한지 겨우 20일 남짓한 내가 벌써 그것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자체가 참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에 대해서 떠드는 모습이 건방져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무조건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한 분야에 대해 자신있게 스스로의 의견을 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많은 공부를 하며 살지만 그가 얻게되는 지식은 이 세상 모든 지식의 총합에 비한다면 새 발톱에 피 속에 떠다니는 백/적혈구 크기에도 못미칠것이다. 빈깡통이 요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런 소리도, 존재의 의미도 없는 것 보다는 한 번이라도 쨍그랑거려 보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약 한달 전쯤 새터 때 학장님과 교수님들이 오셔서 우리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던 때가 생각난다. 새터에 단대 학장이 직접 오는 것도 조금 놀랐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유머감각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축사 도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많았지만 특히 경영대는 타 단대로부터 질투심과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는 말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독자적 재정 문제나 교수 임용 문제 등등 행정적 사항에 대해서는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경영학이 비판받는 여러 이유중 하나인 '학문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학을 과연 학문으로 볼 수 있을까...?? 아직 확실한 내 의견은 아니지만 적어도 잠정적으로 지금은 나는 경영학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다니던 고려대학교에 몇달 전 정문을 들어선 오른쪽 끝엔 궁전같은 화려한 건물이 지어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LG-POSCO 경영관... 우리 나라 전체 대학교 중에 1개의 과가 3개의 건물을 독점한 경우는 고려대 경영학과가 최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총 250억원에 평당 800만원을 넘는 엄청난 공사비. 그 어마어마한 숫자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LG-POSCO 경영관은 내가 본 어느 건물보다 웅장하고 세련된 면모를 보여주었다. 대리석 바닥에 원목재질의 기둥, 깔끔한 강의실과 모던한 화장실 넉넉한 대기공간 등등...이 모든것은 고려대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모든 대학생들이 부러워할만한 시설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공사에 투입된 모든 돈은 학교에서가 아니라 고려대 경영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의 기부금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건물이 증축된 직후 고려대 자유게시판은 이내 시끄러워졌다. 아무리 기부금이라 하더라도 그 많은 돈을 (1개의 과만을 가진 단과대로서 이미 건물을 두개나 보유한) 경영대를 위해 꼭 필요하지도 않은 건물을 짓는데 썼어야 하느냐는 것과 거기서 발전하여 천민 자본주의의 향연이라는 등등...그 게시판에서만 보아도 나는 우리나라 대학생이 가진 경영학에 대한 통념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 대학생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생각도 더 심하면 심했지 그리 다르지는 않으리라 본다.
이와 같이 대학에 멀쩡히 몸담고 있으면서도, 게다가 소위 인기학과로 불리우면서도 끊임없이 타단대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경영학과.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몇가지 이유를 대보겠다. 그리고 이 이유들은 동시에 내가 경영학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근거이기도 하다.
'학문'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한 번 찾아보자. 일단 이것이 학문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구체적인 정의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학문이란 일정한 이론적 체계에 따라서 정리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경영학이 이론적 체계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내부의 세부항목을 잘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경영학의 세부학문을 말한다면 [재무관리][생산관리][회계학][마케팅][MIS][국제경영][인사관리] 등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사이에서 유기적인 관계가 매우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주식,금융 등에 대해서 주로 다루는 [재무]와 심리학을 많이 이용하는[마케팅] 사이에는 '기업의 활동'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공통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회계학]을 배울 때 춤추는 숫자들 사이에서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갑자기 리더쉽을 강조하는 [인사관리]는 연계되어 묶인 한 과목으로 보기엔 어째 어색하기만 하다. 비록 체계화된 지식이긴 하지만 그 지식을 정리하여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기에는 경영학은 아직은 미숙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내가 경영학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이다. (어쩌면 아직은 신생학문이기에 지녀야하는 필연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두번째로는 경영학이 고유 학문으로서 지닌 독자적 위치가 취약한 데 있다. 사실 기업이 존재한 것은 매우 오래전 일이지만 ㅡ 이집트 피라미드 벽돌에도 그 벽돌은 만든 제조업자가 표기돼 있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엔 그 피라미드가 만약 부실하게 지어졌다면 그 책임을 묻기 위해 제조업자를 명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쩌면 그 중에서 벽돌 잘 만드는 업자가 명성을 얻으며 부자가 되기도 하고 하는 과정에서 현대의 기업 형태를 가진 업자도 나타났을 것이다. ㅡ 경영학은 기업 경영에 필요한 많은 지식을 이미 존재하던 다른 학문에서 빌려올 수 밖에 없었다. 이에 필요한 학문으로는 경제학, 심리학, 공학,군사학,수학 등등이 있었고 이렇게 도입된 학문들이 필요한 분야에 적절히 믹스됨으로써 지금의 경영학이 생겨난 것이라 본다.
따라서 사실 다른 학문과는 달리 경영학은 그 이름에서 어떤 학문적인 이미지 보다는 기업, 금융 등등에 연계돼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법학도라 하면 뿔테안경에 두꺼운 법전에 파묻힌 학생을, 공학도라 하면 싸인코사인에 파묻혀 계산기를 옆에 두고 연필로 그래프를 그리는 학생을 떠올릴 수 있지만 경영학도는 그 학생 자체로는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대신 그 학생이 졸업 후에 기업에 입사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의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일 학문으로의 독자적 정체성...경영학이 인정받기 위한 필수적 과제의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경영학의 맹점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그 학문의 일차적인 직접적 목표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즉, 간접적 결과로는 기업이라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학문이라는 것은 그것이 이용되는 방향 보다는 그 자체의 이론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를 해야한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학문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법학은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있다. 의학/한의학/수의학/약학/간호학은 인간(혹은 동물)의 생명 수호 및 복지증진을 위해 존재한다 볼 수 있다. 영문학,철학,역사학과 같은 인문학은 인간 존재의 탐구를 위한 학문이며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보탬이 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목표이다. 공학과 자연과학은 자연 법칙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이 더욱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정치학, 경제학과 같은 사회과학은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 일반에 대한 탐구를 통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궁리한다. 음악,미술,미학은 인간에게 미적 쾌감과 감동을 주는 숭고한 학문이다. 즉 위에서 계속 언급한 '인간'은 특정 몇몇 인간이 아닌 보편적 의미의 인간을 뜻한다.
이에 비해 경영학은? 그 자체의 목표가 인간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경영학은 '기업의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한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에 맞는 상품을 생산, 판매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연히 기업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WIN-WIN 게임이 된 것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의의는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과 효용성에 의해서 매겨진다. 하지만 인간이나 학문 등등은 예외라고 본다. 비록 어떤 학문이 현실에서 발휘될 만한 영역이 그리 크지 않다 해도 그 자체로서 진리 추구에 도움이 된다면 그 학문은 훌륭한 존재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반대로 실용성은 있지만 그 자체로서 학문적 의의가 없다면 그것은 학문이라기 보다는 기술에 가깝다. 사람들이 인문학, 이공계의 위기를 걱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학문의 본질적 의의 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쓰이느냐를 먼저 따지는 세태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경영학을 무조건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경영학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공하고 싶어하던 과목이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영학의 가장 기본적인 유닛이라 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경영학 원론 시간에 서진영 교수가 말씀하셨듯 현재 삼성전자가 1년에 우리나라에 납부하는 세금은 자그마치 5조원이나 된다. 우리 나라 1년 예산이 100조 정도의 규모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삼성전자는 우리 나라 전체 세금의 5%를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우리 나라에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가 20개만 존재한다면 현재 예산의 전액을 복지/교육 등등으로 돌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기업이 없다면? 우리 나라 경제는 그 기반 자체부터 흔들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재화는 기업에 의해서만 최적의 상태로 우리 앞에 제공될 수 있다. 한 번만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자. 컴퓨터 시계 자동차 등등...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기업이 없었다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단적인 예로 지난 폭설 때 전국의 고속도로가 마비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인천의 한 고속도로는 극심한 정체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지점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고속도로가 다른 고속도로와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고속도로는 민영 업체에서 관리되고 있었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폭설이 내리자 빠른 조치를 내려서 운행자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한 것이다. 물론 공기업/사기업 모두가 기업이긴 하지만 논의의 초점을 생각한다면 그리 논점에서 크게 이탈한 이야기는 아닐 것임을 잘 알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공기업의 민영화 정책에 대해선 찬성의 입장이다)
또한 기업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원을 최적의 상태로 분배해주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는 싼 값에 많은 것을 원하게 마련이다. 반면 공급자는 같은 값이면 적게 주고자 하게 마련이다. 이 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당연히 가장 적절한 값에 가장 적절한 수량만큼을 유통시키는 거래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거래 대상은 기본적으로 한정된 자원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답은 분명해졌다. 기업이 있으므로 인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원은 최적의 분배상태로 가는 것이다. 애초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기업이 존재함은 우리 인간 생활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혜택을 주는 것은 의심의 여지도 없다. 그리고 그런 기업을 연구하는 경영학도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경영학의 올바른 방향은 어떤 것일까? 앞에서 말한 고려대학교 LG-POSCO관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자. 당시 기부금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한 선배들로 부터 나온 것이다. 그 사람들은 학부과정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간다고 해도 대부분은 경영대학원을 진학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기부금도 경영대로 갈 것이고 (확률적으로 돈을 벌었을 확률이 높은 경영학 전공자 선배들을 둔 까닭에) 경영대는 더욱 부유한 단대가 되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 경영대학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
미국과 같은 경우에는 학부 과정에는 경영학 전공이 없고 주로 대학원 과정에 설치된 곳이 많다. 즉 그들은 학부과정에서는 철학,역사학,공학,사회학등을 배워서 제반 지식을 쌓은 후에 기업체에서 2~3년간의 실무 교육을 쌓고 나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여 MBA를 따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그들이 모교에 기부금을 낸다고 해도 인문/사회/이공학 등등에 고른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는것이다. 그에 따라서 각 기초 학문들이 골고루 발전될 수 있고 학문적 기반이 튼튼이 마련되는 것이다.
경영학은 어디까지나 실용학문이다. 따라서 기초적인 학문적 교양이 없이 그 자체만을 강조하게 된다면 이는 학문(study)이 아닌 기술(skill)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경영학을 대학원 과정으로 올리는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최근 서울대학교 내에서도 의과대,법과대와 더불어 경영학과에 그러한 움직임이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나 자신은 비록 내가 학문으로서 자격을 부여하진 않았지만 이 길을 걷는 데 대해서 무한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금껏 쌓아온 경영학적 지식의 총체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거인의 어깨 위에 선 작은 난장이가 되어 더 멀리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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