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추억 속의 동창생들

(2005년 여름, 스물두살의 어느 날)




오늘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초등학교 동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름이 조금 특이한 친구들은 싸이월드에서 이름으로 검색하면 웬만하면 현재의 모습이나 소식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 다른 친구와도 비슷한 말을 했었는데 그는 몇명을 찾다 보니 재미있어서 그 참에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펴두고 하나씩 찾아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아이 러브 스쿨이나 다모임과 같이 동창 서비스 사이트들이 한창 유행한 적이 있었다. 처음 그 사이트들이 소개됐을 때는 옛날 친구와 다시 연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도나도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했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보만 넣으면 같은 학교를 나온 옛 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온라인상의 열풍과 함께 오프라인에서도 동창회, 동문회가 붐처럼 열리기 시작했다. 삭막한 줄만 알았던 온라인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이끌어냈다는 좋은 평가와 함께 동창 서비스 사이트들은 인기를 더해만 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동창회에서 몇년 혹은 몇십년만에 만나 서로의 변한 모습에 잠시 깜짝 놀라다가도 옛날 학창시절 이야기를 함으로써 즐거워하곤 했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야 웬만큼 친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대학 와서도 자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친구들은 거의 만날 기회가 없다. 정작 중요한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을 뚝 끊어서 전학을 간 적이 있기 때문이라면 핑계일까? 어쨌든 이런 이유로 나는 옛날 학교에서는 졸업생 신분도 아니고 졸업앨범도 없는데 반해 새 학교에서는 6학년 같은 반 애들밖에 모를 뿐 아니라 함께 지낸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아서 그리 많은 추억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던 고등학생 시절 어느 날, 새로 옮긴 초등학교의 6학년때 같은 반이던 애들이 동창회를 연다고 연락이 왔다. 조금 뻘쭘할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정든 친구들 얼굴이 떠올라서 참석하기로 했다. 그 때 5년만에 만난 친구들과 만났던 동창회는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로 부터 또 2년이 지난 대학교(고려대학교) 1학년 때, 나는 또 다시 같은 동창회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동창회에서는 그 전에 참석했던 동창회와는 달리 큰 실망을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의 동창회와 대학시절의 동창회에 나온 친구들은 거의 비슷한 멤버들이었지만 내가 그들에 대해 느꼈던 감정은 너무나도 달랐다.

첫번째 동창회에서 친구들의 모습은 사실 우리가 함께 공부를 하던 초등학생 시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 같이 비슷한 동네에서 비슷한 환경의 학교를 다니며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적어도 하나의 테마를 공유하는 동질감을 느낄 수는 있었다. 비록 미성년이라 술을 마실 수 없어서 음료수만 먹고 노래방 갈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면 두번째 동창회는 달랐다. 7년 전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몇개만 쏟아낸 후엔 어딘가 모를 뻘쭘함. 함께 공유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옛날 친구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 줄은 몰랐었다. 당시만 해도 담배를 피지 않던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 - 그 친구는 여학생이었다 - 담배피는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재수생 친구에겐 내가 어느 대학을 갔다고 말을 하는 자체가 미안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친구가 물어보기에 어쩔 수 없이 대답했던 것이긴 하지만. 이런 느낌, 나만의 것이었을까?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아무리 멋지게 혹은 예쁘게 자라서 나타난 친구라 해도 내가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할 때의 기억 속 그들의 모습보다는 아름답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좋은 기억은 미화시키고 나쁜 기억은 더 악화시켜서 과거를 극단화시키는 심리가 있다. 만약 현실에서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추억이란 도화지 위에 그려진 예쁜 개구쟁이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는 내 추억 속에서 내 마음대로 미화시키고 회상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그 추억 속의 친구가 현실에서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 땐 반가움 보다는 추억 속 예쁜 개구쟁이 하나가 평범한 인간으로 대치돼버린 느낌에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동창회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아이 러브 스쿨이나 다모임이 잠시 인기를 끌었다가 지금은 거의 죽은 사이트가 된 이유도 이런 미묘한 느낌과 관련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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