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늦은 밤에 글을 쓰면

(2005년 이른 봄, 스물두살 어느 날)



보름달만 떠오르면 몸이 변하는 늑대인간. 이 전설에서는 극단적으로 표현되었다 할지라도 전구가 발명되기 이전까지 수만년을 같은 생활 패턴으로 살아온 인간에게 있어서 낮과 밤에 갖게 되는 인간의 이중성은 보편적 습성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밤은 인간에게 시대를 불문하고 낮과는 또 다른 미묘한 정서를 선사하곤 한다. 밤은 우리를 센티멘털하게, 과거의 추억에 젖고 슬픔과 기쁨이 양극단으로 치닫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사랑하는 애인에게 편지를 쓸 때는 절대로 밤에 써서는 안 된다고 한다.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이 지닌 온갖 낭만적인 표현을 남발함으로써 낮에 편지를 읽게 되는 상대방이 거부감을 느끼게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직 누군가와 연애를 해 본적이 없는 나는 이럴 기회가 없었지만 밤만 되면 예민한 정서를 주체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글을 쓴 경험이 많았기에 이 말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한다.

하지만 이유 없이 오밤중에 잠을 깨어버린 오늘 밤은 그 정도가 다른 날에 비해 더 심하단 생각이 든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을 못드는 이 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베란다에서 부모님 몰래 담배를 입에 물고 하늘을 보았다. 유난히 바람 한 점 없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어둠을 밝히는 달을 본 순간, 나는 밤에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이 불문율을 지킬 의지 조차도 벅찬 감정에 휩쓸려 떠내려가도록 만들어 버린 것 같다.

마땅히 이 글을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 특별히 하고싶은 말이 떠오른 것도 아니다. 감수성 예민한 소녀가 가끔 그러하듯이 어설프게 시인을 흉내내는 유치한 마음으로 돌아갔다고나 할까? 무언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마음 속의 복잡한 그림과 소리를 모니터 위로 퍼붓고 싶은 막연한 마음 뿐... 내일 아침이나 낮에 이 글을 보면 분명히 부끄러움을 이겨낼 수 없겠지? 상관없다. 그 때 지우면 되지 뭐.

오늘따라 담배연기가 달을 가릴 수 없을 것 같다. 잠시 짙게 달을 가리는가 하면 어느새 달빛에 눈이 부신 듯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다.
오늘따라 담배연기가 소리내며 땅에 떨어질 것 같다. 추운 날씨에 연기가 꽁꽁 얼어 눈송이로 내리지 않을까?
오늘따라 담배연기가 멀리 날아가지 못할 것 같다. 유난히 복잡하고 미묘한 심경을 가득 담고 내 목구멍을 떠난 녀석이기에 평소보다 훨씬 살이 찐 연기란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담배연기가 축축한 것 같다. 마음이 센치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는다 ; 그 대신 그 눈물을 연기가 담뿍 안아간 것이 아닐까?

왜 슬픈걸까? 미래를 보아도 과거를 보아도 내 머리 속은 행복했던 기억들로만 점철돼 있는데...많은 철학자들이 말했듯 어떤 기쁜 일이 벌어지든 간에 인생은 고(苦), 슬픔이기 때문일까? 왜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하는걸까? 내가 좋아하는 고향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담배를 물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 이사오 사사키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있는데...

위대한 시인은 아니라도 좋다. 자기가 느끼는 바를 언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짧고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감정의 본질을 가슴시리도록 예쁘게 표현할 줄 아는 무명의 배고픈 시인이 부럽다. 난 글을 짧게 쓰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표현하려면 자꾸만 글이 길어지고 군더더기가 생긴다. 말하자면 숫자 9라는 개념을 알고있는 위대한 시인은 "1+9는 10" 이라고 간결하게 말하면 되겠지만 나는 무식해서 9라는 개념을 모르기에 "1+1+1+1+1+1+1+1+1+1은 10" 이라고 너저분하게 쓸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비유하면 적절한 표현일까?

영화 <러브레터>에서 말하듯, 지금 나의 머리통을 통째로 한 시인에게 넘겨준다면 그의 펜을 통해 창조되는 글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왠지 이상의 시 처럼 난잡하고 두서없는 시가 아닐까 싶다. 이 생각 저 생각 주절주절 얽히고 섥히고 주제도 없고 개념도 없고...아니 어떤 시인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좋단 생각이 갑자기 든다. 내 감정 자체가 난잡하니 이렇게 조잡하게 정리되지 않은 글 자체가 가장 적절한 시가 아닐까? 일반적으로 시는 수필보다 짧지만 법적으로 시는 몇자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으니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야 하는 의무와 그것을 발설하고 싶어하는 이발사의 욕구는 인간의 근본적 배설욕을 단적으로 그려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단순히 이야기 뿐이겠는가? 사람이 화장실에서 오물을 배출하는 것, 성적인 배출...인간은 배설을 함으로써 욕구를 해소한다.

이글은 나의 심적, 정신적 배설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도화지이다. 다 뱉어내고싶다. 이유 모를 슬픔, 답답함, 그리움, 불안감, 외로움, 부끄러움 등등...다 쏟아내버리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미친듯 앞뒤없이 키보드를 휘갈기고있다. 미친'듯'이라니...어쩌면 잠시 이 순간 나는 실제로 미쳐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몰론 내일 해가 뜨면 나는 이 마음의 오물로 가득한 글이 다시 부끄러워지겠지? 숨기고 싶겠지? 그리고 지금껏 수십번 그랬던 것 처럼 '앞으로 다시는 늦은 밤에 글을 쓰지 말자'라고 다짐하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조금은 속이 시원해짐을 느낀다. 확실히 장담은 못하겠다. 이 글이 내일까지 살아남을지 어떨지는......죽이지 말자. 어차피 언젠가 미래에 찾아올 오늘과 같은 늦은 밤에, 이와 비슷한 글을 또 쓰게 될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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