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다시 의자에 앉으며

(2008년 여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내무실을 뒹굴며 그렇게도 손꼽아 기다리던 4월 9일 제대일. 그러나 제대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얼떨결에 영어학원 선생님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렇게 여러 명의 학생을 앞에 둔 채 칠판에 글씨를 써가며 수업을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물론 예전에 개인 과외를 몇 차례 해본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과외 시장에서 영어는 과목의 특성상 해외파나 여女선생에 대한 수요가 워낙 크기 때문에 나같은 학생이 가르치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그래서 내가 가르쳐본 과목도 수학과 국어가 전부이다. 사실상 영어학원에서는 완전 초보나 다름없는 나였기에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만이 뿐이던 지난 4월. 그러나 별 사고 없이 무사히 학생들을 가르쳤고 다음 화요일을 끝으로 나의 교사 생활도 막을 내리게 된다.

흔히들 자기가 잘 배우는 능력과 남을 잘 가르치는 능력은 별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서울대, 고대, 연대를 나왔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그 강사 역시 잘 못가르치는 무능한 선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안다는 것이 무언가를 잘 가르치기 위한 충분조건은 될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무언가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언변言辯이 좋고 퍼포먼스performance가 화려하다 해도 무능을 감출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는 좋은 선생이 될 수 없다.

이탈리아 출생의 프랑스 수학자 조셉 루이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는 이렇게 말했다. "길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을 쉽게 이해시킬 수 없다면, 자신도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비록 4개월의 짧은 교사 생활이었지만 나는 그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종종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모르는 내용이 나왔을 때,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모면했는지 돌이켜보면 학생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나 한사람이 조금만 더 수업을 꼼꼼히 준비했다면 교실에 있던 예닐곱의 학생들은 금쪽같은 시간을 훨씬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텐데.' 나름 다른 선생님들 보다 더 열심히 가르쳤다고 자부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편으론 나 역시도 이제 더이상 젊은 형,오빠가 아니라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나의 학창시절은 눈에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그래서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학생들의 마음을 100% 이해하고 그들과 교감할 줄 아는 멋진 선생님이 되리라 자신했다. 그들의 사고방식, 그들의 은어, 그들의 선호가 나와 큰 차이가 없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학생시절 이해할 수 없었던 고리타분한 선생님과 점점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돌이켜보면 내가 예전에 듣기 싫어했던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는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결국 지나고 보면 공부가 가장 쉬운 것이니라.", "고등학교 영어에 비하면 이것은 새발의 피 수준이니 위기감을 갖고 정신차려야 한다." 나 역시도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렸던 말들을 그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리라는 허황된 기대를 가지고 열을 올렸다.

한편으론 시간이 없어서도,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공부를 전혀 안 해와서 시험을 망치는 학생을 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었다. 왜 그것을 이해 못했나? 이렇게 지금 가슴을 쾅쾅 치는 나는 과연 사춘기 시절에 주어진 시간과 능력을 오직 공부에만 투자했었나?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다. 군입대 전, 대학교 1학년 때 나의 처참한 학점은  어떻게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사람은 이렇게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 따라 다른 것을 보게 마련인가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것을 경험하라고 한다. 여기까지야 상투적인 교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리가 바뀜으로써 예전에 보았던 것을 다시 볼 수 없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교실에 앉은 학생은 강단의 선생님이 보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학생이 강단에 올라가 새로운 것을 보게 될 땐 학생만이 볼 수 있던 것을 머지 않아 잊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해서 그 양서류를 향해 함부로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우리 포유류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강사는 교실에서의 선생이고 교사는 학교에서의 선생이지만, 스승은 인생의 선생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짧게나마 맡았던 자리는 맨 첫번째에 나온 강사다. 그 뒤에 것들을 맡기엔 아직 경험도, 실력도, 마인드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조금씩 선생과 교사를 흉내내고 싶어졌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처음 강사를 맡은 직후 나는 초보 티 안 내기 위해, 말 뻔지르르하게 하기 위해, 많이 아는 척, 유능한 척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를 했다. 이렇게 시작은 불손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픈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영어를 벗어나 '공부'라는 것을 잘 하게 만들고 싶었다. 마침내 나는 공부를 벗어나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마치 내가 키워온 아이들인 것처럼...... 비록 자격도, 능력도 부족하지만 나의 마음만은 어느 '교사'나 '스승'못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처음 강단에 서면서 나는 학생 때의 마음을 잊어버린 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많은 후회와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강단을 내려온다. 이제 조만간 다시 그립던 의자에 앉는 지금 나는 굳게 다짐한다. 비록 딱 한 번 선생이 되어서는 학생의 마음을 잊었지만 다시 학생이 되어서는 선생님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겠다고. 모두가 편히 앉은 교실에서 혼자 일어서 있는, 모두가 침묵하는 교실에서 혼자 목청이 터져라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교수님)이 얼마나 고생스럽고 힘든 자리인지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실로 3년만에 학생이 되어 의자에 앉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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