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소중한 약속

(2008년 여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영어 강사를 그만두기 며칠 전, 학원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지난 7월 말경에 다음 학기 대학 등록을 하여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혔다. 그래서 학원에서는 내가 그만두기 며칠 전 나를 대신할 새 강사를 뽑았다. 약 3, 4일에 걸쳐서 수업 참관 및 인수인계를 마치고 이제 나는 몸만 떠나면 될 판이었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고 나서 그 강사는 우리 몰래 지원해두었던 다른 곳에 뽑혔고 그 쪽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며칠간 내가 바쁜 시간 쪼개서 신규 강사 안내를 해준 건 그야말로 헛수고가 된 것이다.

물론 입사 지원서나 이력서를 여러 곳에 동시에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가 이곳에서 일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힌 이상은 자기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는 단순히 일하고 싶다고 일 하고, 하기 싫다고 그만두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고용인은 계약을 맺은 후 그에 따라 적절하게 인력 관리를 하게 마련이다. 만약 피고용자가 계약을 어기고 갑작스레 다른 곳으로 빠져버린다면 당장 생기는 공백은 쉽게 메울 수 없다.

나의 대체 강사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사건이 터졌다. 학원에는 케나다 출신의 외국인 강사가 한 명 있다. 이 학원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강사 수가 많지 않았고 더구나 임금 부담이 큰 외국인은 단 한 명 밖에 채용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당연히 모든 학급에서 외국인 회화 수업은 그 강사가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 외국인은 월말에 일괄적으로 급여를 받는 우리와는 달리, 처음 이 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날에 매달 월급을 받는다. 지지난 금요일은 바로 그 강사의 월급날이었다.

그 날, 우리는 그녀가 퇴근한 후 책상 위에 있던 모든 개인 물품들을 말끔히 정리해서 가져간 것을 발견했다. 최근 유난히 학원에 불만이 많았던 그녀. 우리는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일단 전화 통화를 수십차례 시도했지만 끝끝내 그녀는 받지 않았다. 결국 원장님과 나는 주소 하나 달랑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 주소는 큰 아파트도 아닌, 작은 빌라여서 주소만 보고 찾기란 쉽지 않았다. 차를 타고 약 한 시간 반 정도를 헤맨 끝에 우리는 그녀의 집을 찾아냈다.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문으로 다가가기 전부터 그 방에서는 외국인들이 즐겁게 떠들어대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스레 벨을 눌렀고 카메라를 통해 나를 확인한 그녀는 문을 열고 나를 맞이했다. 무슨 일로 찾아왔냐는 듯,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뜬 그녀는 웬일로 찾아왔는지 물었다.

나는 그녀가 왜 책상 위에 짐들을 모두 정리했는지, 혹시 갑작스레 도망친 것은 아닌지 다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냐며 웃어댔다. "Don't worry Fred, nothing's wrong." 나는 그녀에게 확실히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는지 재차 물었지만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내가 돌아서서 원장님 차에 탈 땐 "See you Monday" 라며 손을 흔들었다.

월요일에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당장 30분 뒤 부터 연달아 그녀의 수업이 있었지만 우리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원장님은 내가 다시 그녀의 집을 찾아가 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택시를 잡아 탔다. 비록 그녀의 집을 한 번 찾아가본 적은 있지만 당시는 해가 진 야밤에 가장 빠른 길이 아닌, 헤매고 헤맨 끝에 찾았기 때문에 낮에 본 길은 또 낯설 뿐.  눈에 익은 도로가 나올 때 마다 나는 기사에게 이쪽 저쪽 방향을 지시해서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다시금 눈에 익은 빌라를 발견했다. 가까운 길을 꽤나 돌아간 덕에 택시비는 반절 정도 더 비싸게 물었다. 나는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라가서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관리실에 찾아갔지만 역시 잠겨있었다. 다행이 관리자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그 곳에 전화를 걸었다. 관리자의 대답에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그녀는 주말 동안 해외로 출국해버렸던 것이다.

그녀의 계약은 오는 10월까지. 만약 그녀가 출국하기 전에 계약을 어겼다면 우리는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연락해서 그녀에게 출국 금지조치를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는 떠났고 우리는 그 책임을 물을 사람을 보내고 말았다. 그 동안 학생들은 의아했을 것이며 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학부모들의 항의도 적지않았을 것이다.

피고용인 내지는 종업원들은 자기가 일하기 싫다면 얼마든지 팽개치고 돌아설 수 있다. 일을 그만둔다 하더라도 벌 돈을 못 벌 뿐,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인 역시도 줄 돈을 안 주기 때문에 본전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갑작스레 떠난 종업원의 자리를 채워줄 적임자를 물색하는 데 드는 비용, 그를 교육시키는 데 드는 시간적 비용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고용인은 그 자리에서 사업을 그만둘 수도 없다. 사업 중단에서 오는 막대한 손해는 고용인을 본전이라는 바닥에 그치지 않고 끝없이 추락시킬 수도 있는 법이다.

이상적인 경우라면 고용인이 제시한 임금 내지 근무조건과 피고용인이 요구하는 그것이 수요 공급 원리에 따라 균형을 이루게 된다. 즉, 고용인에게 칼자루가 쥐여져 있다면 급여는 내려갈 것이고 피고용인이 주도권을 가진다면 급여는 올라간다. 그러나 현실에서 문제는 도무지 구직 희망자들의 눈높이가 균형가격에 맞게 내려가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학원의 경우만 보더라도 '일할 능력'으로 따진다면 그 정도의 스팩을 갖춘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다만 그 사람들이 학원이 제시하는 수준에 맞춰지지 않으니 문제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라고 떠들어대니 너도나도 웬만한 조건에도 "날 써줍슈" 외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기 분수와 주제를 모르고 전부 눈은 머리 꼭대기에 달렸으니 실업자 통계는 드디어 한 자리 수를 더 넘어서버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서로가 다른 시각을 가지다 보니 양자가 모두 힘들어지는 것이다.

계약서란 흔히들 피고용인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앞의 두 경우와 같이 계약을 어기고서 제멋대로 회사를 떠날 때 오히려 막대한 손해를 입는 쪽은 피고용인이 아닌 고용인이다. 계약서는 고용인으로 하여금 안정적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인력, 급여, 채용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보호막과 같다. 계약은 법과 제도를 넘어서, 도의적으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소중한 약속이다.

힘들게 학원 생활을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고 그렇게도 기다려왔던 복학이 눈앞에 다가왔다.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오늘. 하지만 영 떠나는 마음이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지금도 학원은 잘 돌아가고 있으려나? 오래 전 부터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미리 이맘때쯤 그만두리란 사실을 통보하긴 했지만 왠지 미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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