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먹고는 살아야지

(2005년 여름, 스물두살의 어느 날)


"먹고는 살아야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학생으로서 - 어쩌면 경영학과 학생이기에 - 주위 친구들로부터 꽤나 자주 듣는 말. 난 왜 예전부터 저 말이 그토록 싫은지 모르겠다. 순수한 열정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지닌다는 내 머리 속 '대학생'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어감 때문일까?

인간은 살려고 먹지, 먹으려고 사나?

물론, 여기서 발끈하며 내 말에 태클 걸기 위해서 도서관까지 달려가 매슬로우 책이나 논문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기란 불가능하단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 말에 대한 혐오는 진지한 성찰에서 우러나온 결론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내 근거없는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그냥 호오(好惡)의 문제일 뿐. 잘 사는 집 귀공자도 아닌 - 오히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야 할 - 내가 왜 저런 생각을 가져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먹을 걱정'과 '먹을 준비'만 하며 살다가 죽긴 싫다. 그냥 먹는건 대한민국 살면서 별로 걱정 안 해도 될 일 처럼 생각된다. - 노숙자나 극빈자와 같이 극단적인 경우야 물론 예외로 해야겠지만 - 정작 걱정할건 어떻게 한 인생 '멋지게 사느냐'인 것 같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람들이 흔히 입으로는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들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워 연명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잘 사는 것"을 그냥 "먹고사는 것"으로 표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주위의 친구들이 말하는 "먹고산다"는 사전적 의미보다 훨씬 높은 정도의 경제적 수준을 뜻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대학친구들은 "먹고살기 위한 고민"의 결과 CPA, CEO, 정부고위관료, 대학교수, 정치인을 말한다. 지금까지 연락하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경우에도 먹고살기 위해서 의사-의대 다니는 애들이 많으니-를 비롯, 법조인, 공무원, 엔지니어를 꿈꾸며 노력하고 있다.

만약 "먹고산다"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버린다면 쥬라기공원의 공룡을 다 고기로 쓴다고 해도 이들을 먹여살릴 순 없을 것 같다. 그들이 말하는 "먹고산다"는 "잘 먹고 산다"를 뜻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 역시 나의 생각을 바꾸진 못한다. 이들의 '먹고산다'를 실제적 믜미에 충실하게 표현한다 해도 '더 많이, 혹은 더 잘 먹고 산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의 개념에 양적인 의미를 확장했을 뿐 본질적으론 문자 그대로의 "먹고 산다" 와 크게 다를바 없는 것 같다.

'더 많이' 보다는 '다르게' 살고싶다.

나의 이런 선호/혐오는 꽤나 어릴 적 부터 형성된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성향은 눈앞에 빤히 보이는 일을 제껴두고라도 혼자서 막연한 공상과 사색에 빠지는 지금의 내 버릇을 길러온 것일지도 모른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동경하는 이런 나의 대책없는 동경...

결론적으로 내 생각엔 '먹고 사는 일'과 '멋지게 사는 일' 중에서 그래도 '먹고 사는 일'은 우리가 고민을 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어느정도 보장될 확률이 높은 쪽인 것 같다. 여기서 좀 더 고민하거나 혹은 운이 좋다면 '더 잘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멋지게 사는 일'은 진정한 고민 없이는 끝내 성취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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