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가을, 스물한살 어느 날)
오늘 윤도현이 학교에 와서 특별 강연을 했다. 원래 이번에 윤도현은 서울대학교 전체 차원에서 초청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언론정보학과의 전공 과목인 방송원론(확실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남) 수업의 일환으로 그를 초청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강연 시작 불과 몇 분 전에 얼떨결에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역시 윤도현이란 유명세답게 그가 강연 온다는 사실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 언론정보학과 학생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생들이 문화관 자리를 꽉 채우게 만들었다. 게다가 여러 익숙한 방송사들의 마크가 붙은 카메라도 꽤나 많이 보였다.
사실 언론정보학과 수업을 해 달라고 초청한 것이긴 했지만 그의 수업은 별로 그것과는 상관이 없었다 (참고로 윤도현 자신도 현재 성공회대에서 언론정보학과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신문방송학과 1학년 재학중이다). 하지만 TV, 라디오 사회자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입담은 누구든 그의 말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던것 같다. 따라서 어차피 언론정보학 강연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더 큰 수확을 얻었다.
강연 제목은 '자유롭게 열심히'였다. 실제 그의 강연은 이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였지만 -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였음 - 가장 큰 주제답게 이번 강연에서 가장 머리에 남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말한다. 자유로운 것도 좋지만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그는 이런 주장을 자신의 공연 경험에 비춰서 말해주었다. 언젠가 그가 유럽 투어를 나섰을 때 실제 필요 이상으로 공연 전 유럽 체류 기간이 길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그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공연 연습을 지겹도록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당시 유럽 투어 공연 때 자신은 애드립 하나, 동작 하나에도 여유를 갖고 관객과 즐길 수 있었으며 탄탄한 연습의 바탕 위에 자유로운 공연을 만끽하였다고 회고했다.
반면 그 이전 한 때는 연습은 건성으로 하고 무대에 오른 적이 있었다. 가사가 기억이 잘 안나고 기타 코드 하나하나도 익숙치 못했던 그 상황에서 그는 자기 공연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음악에 이끌려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자유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외에도 우리는 윤도현의 무명시절 설움과 무대, TV에서 비춰지는 이면의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월세 단칸방에 멤버 4명이서 배고프게 지냈던 이야기, '윤도현 밴드'에는 '윤도현'만 있을 뿐 '윤도현을 제외한 멤버'는 무시하는 야속한 팬들의 인식, 우리나라의 록 음악에 대한 안 좋은 편견, 월드컵때 얻은 유명세 뒤에 숨겨진 오해와, 2002 대선 당시 특정 후보에 대한 정치적 선전 활동으로 인한 억울함 등등....워낙 횡설수설해서 여기 담을 순 없지만 꽤 유익한 말들이 많았다.
한편 이번 강연에 게스트로 그 유명한(?) 김제동씨가 와주셨다. 강연 시간 약 2시간 조금 안 되는 동안 김제동씨는 20분 정도 마이크를 쥐었다. 역시 그 답게 강의실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완전 윤도현의 러브레터 보는 분위기였다. 이전에도 TV를 통해 자주 접해왔던 그이지만 그의 이런 재치와 순발력 그리고 때때로 던지는 생각해봄직한 말들을 내 눈앞에서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오늘 처음 알게된 사실인데 김제동이 처음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도 윤도현 덕택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얼떨결에 듣게 된 강연이었고 횡설수설 우왕좌왕 정신없었지만 나름대로 웃음 뒤에 무언가 가슴에 남는 듯한 유익한 강연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윤도현씨는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한 가지 더 소중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강연이 끝난 후 그는 우리 앞에서 - 서비스 차원에서? - 노래 두 곡을(너를 보내고. 타잔) 불러주었다. 통기타 하나에 그의 목소리...그 두개 만으로도 그는 강의실에 모인 수백명을 휘어잡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의하는 모습도, 연예 프로그램 사회보는 모습도 멋지지만 역시 가수인 그가 가장 멋져보일 때는 바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누구든 사람은 자신의 일이 있다. 주어진 일을 성심 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가장 멋진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윤도현씨는 우리 앞에서 그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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