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나라 잘 지키고 돌아오겠습니다

(2006년 이른 봄, 스물세살의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한창 새해가 밝았다는 사실에 들떠있습니다. 이런 1월의 한가운데 서서, 저는 또 다른 전환점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학에 입학하고 1학년 말부터 염두에 두고있던 국방의 의무를 우여곡절 끝에 3학년을 눈앞에 둔 지금에야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잠시 후 친구들과 함께 진주 공군 훈련소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게 됩니다.

생각보다 마음이 그리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학교 다니며 시험이다 레포트다 신경쓸 때 보다 훨 차분하기까지 합니다. 사실 공군 발표일 부터 입대일까지 꽤나 의미있는 생각을 많이 하며 보낼 줄 알았지만 의외로 그게 잘 안 되더군요. 그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곧 이행하게 될 때의 묘한 기분, 그것 하나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생각의 실타래들이 한꺼번에 얽혀버려서 오히려 하나의 둥글둥글한 실뭉치처럼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죠.

억지로라도 머릿속 실뭉치를 조금 풀어헤쳐 보았습니다. 지금껏 매일 눈을 뜨면 오늘도 역시 당연하게 만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앞으로 2년여간은 이 사람들 대신에 또 다른 공간, 또 다른 사회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겠죠. 아마도 제 대부분의 생각은 여기에서 오는 아쉬움과 기대감, 그리고 긴장감이라는 말로써 표현이 가능했습니다.

더 이상 풀어헤치고 싶진 않았습니다. 저는 차라리 알렉산더가 되어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래저래 떠오르는 생각들은 대부분이 소모적 공상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무리 많이 생각해도 미래의 일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쓸데없는 생각들 말입니다. 루비콘 강이 이미 제 등 뒤에 있는 상황에서는 뒤나 옆을 돌아보기 보단 앞일을 생각하는 것이 옳겠죠.

처음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땐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발표일부터 입대일까지 약 1개월 내지 2개월 정도의 여유는 있으리라고 예상했지만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으니까요. 12월 30일 발표에 1월 16일 입대라. 이런 갑작스런 소식은 이전까지 입대 전에 해보리라 마음먹었던 많은 계획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었으며 더 많은 책들도 보고싶었는데...... 과 친구들도 한 명 한 명 제대로 만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입대일 발표날 제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제 눈 앞의 커튼을 힘껏 열어젖혔는데 문이나 창문 대신에 회색의 시멘트 벽이 있는 그 상황. 아마도 이 때의 기분이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발표일 이후 하루 내지 이틀을 지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설령 입대일자가 1-2개월 늦게 났다고 해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군입대를 앞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일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아르바이트도, 공부도, 10권이 넘는 대하소설을 읽는 일도......

아마 입대일이 늦어진다면 그만큼 지금과 같은 의미없는 세월이 한두달 길어질 뿐이었다고 봅니다. 차라리 입대 전 아깝게 시간을 죽이기 보다는 전역 후 복학을 준비하는 등 사회 적응 기간을 많이 갖는 쪽이 현명한 선택이라 봅니다.

최근 보름동안 저는 대부분의 날을 부모님 가게에 있거나 주위 사람들을 만나며 지냈습니다. 가능하면 많은 친구들을 보고싶었지만 의외로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이 군대에서 복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백하건데 지금껏 저는 이렇게 수많은 친구들을 훈련소로 환송해주었지만 솔직히 그 사실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입대할 즈음에 저를 환송해줄 사람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느끼는 지금, 그리고 제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지금, 저는 비로소 그들의 심정을 감히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한편 틈틈이 저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했습니다. 특히 오래달리기에 중점을 뒀죠. 지금껏 먹기만 잘 먹어 포동포동한 얼굴에 남들 다 하는 헬스장 문턱에도 한 번 안 갔던 저였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친구들은 운동이라는 단어와 제 모습을 함께 떠올리기가 힘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지난 보름여동안 저는 체육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달밤의 운동을 했습니다. 결코 남들 다 통과하는 훈련 내가 통과 못할까봐 걱정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기왕 하는 것 잘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아무튼 이렇게 저는 입대 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조용히 보냈습니다. 제가 만약 친구들에 비해 일찍 입대했다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보다 훨씬 야단법석을 떨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주위에 워낙 많은 친구들의 입대모습을 지켜보았고 그 중 실제로 모두가 입대 후에도 건강하게 군생활을 잘 하는 것 또한 지켜보았습니다. 그곳 역시 '사람 사는 곳', 더구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아닌 '대한민국 남자면 누구나 살다 오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엔 두려울 것도 없더군요.

기본 군사훈련과 특기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겠죠. 어디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는 대구로 자대 신청을 할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될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6주마다 2박3일의 외박이 있으니 고향집에 가는 빈도수는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아마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들도 오히려 군에 가서 더 자주 볼 수 있겠죠. 특히 제가 얼마간 군복무를 하다 보면 대부분의 고향 친구들은 전역해서 사회로 돌아와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히려 기쁘기까지 합니다.

반면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서울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더욱 보기 힘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사실 서울, 수도권에서 복무하는 공군 친구들은 잦은 외박과 휴가를 이용해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대구에 있을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6주에 한 번, 비교적 잦은 외출이긴 하지만 2박3일, 혹은 4박 5일 일정을 쪼개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입대를 앞둔 지금 조금이나마 슬픈 까닭은 훈련의 고됨이나 고참의 눈치밥이 두렵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누구나 다 가는 군대 저라고 뭐가 두렵겠습니까. 다만 현실적 제가 복학하게 될 2008년 9월까지(2년 8개월 동안) 많은 정든 친구들을 볼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이 가장 저를 마음 아프게 합니다. 덧붙여 오랜 시간 헤어져있다가 다시 그들을 봤을 때 지금처럼 좋은 관계가 변함이 없을지......결코 의심하진 않지만 일말의 불안감을 송두리째 부인하지는 못하겠네요.

제가 없이도 학교를 비롯하여 제가 속한 곳은 아무 일 없는 듯 잘 돌아갈 것입니다. 매우 이기적인 시선에서 보자면 야속할 만큼 도도하게 말이죠. 우리 과에서 친분을 나눈 선후배, 고등학교 친구들, 기타 친구들 등을 합치면 몇명(n) 쯤 될까요? 그들이 n분의 1정도의 공허감을 느끼는 동안 저는 그 역수 만큼의 엄청난 공허감을 느끼게 되겠죠.

저 역시 이전까진 항상 n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남은 한 명의 입장에 선 지금은 2년 3개월이란 세월이 너무나 무정할까봐 겁이 납니다. 망각이란 인간이 괴로운 기억으로 인해 평생 고통받지 않도록 신이 내린 선물이기도 하지만 때론 행복했던 기억과 사람들 까지도 뭉뚱그려 잊혀지게 만들곤 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주위 친구들을 믿기에 이 모든 것이 기우라고 믿겠습니다. 이렇게 2년여간 숨을 돌리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 또한 오랜 우정에서 한 번쯤 가질 수 있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동안 서로의 부재가 얼마나 허전한지를 깨달음으로써 오히려 훗날의 더 성숙한 만남을 기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쉬운 감정이 워낙 크다 보니 누구나 다 가는 군대에 가면서 괜시리 호들갑 떤 것 같기도 하네요. 더 말이 길어지기 보다는, 그저 몸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더 멋진 모습으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