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다시 정신 차리고 살자

(2004년 여름, 스물한살 어느 날)



개학을 앞둔 나의 마음은 - 누구나 그렇지 않겠냐마는 - 많이 셀레고 있다. 지난 학기에 특별히 아쉬움이나 후회가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닌 듯 하다. 아마 지금까지 겪은 여느 방학 보다 많은 변화를 수반한 방학이기에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야기한 원인들은 대체로 지난학기 보다는 방학중에 특히 그것도 방학 종료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 있었던 것 같다.

조금 이야기를 급선회 하자면 나에게 있어서 서태지와 아이들, 마이클 조던, 소설 상도(商道)의 임상옥 그리고 GE의 전 CEO인 잭 웰치가 공통적으로 던진 화두가 있다. 물론 각자가 그 화두를 던지는 상황과 문맥적 의미가 100% 같은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사항은 바로 '스스로가 가장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을 돌아본다"라는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마이클 조던은 여기서 가장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스스로가 가장 정상에 섰을 때가 바로 그들이 물러날 때라 판단하여 해체했다. 반면 마이클 조던은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얼마 후에 은퇴설을 번복하고 워싱턴 위저즈에서 선수로 뛰었으나 부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은 영원한 정상 가수였지만 마이클 조던은 과욕에 의해 평생 최정상 선수로 남겨질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만 것이다.

상도라는 소설 속 임상옥도 마찬가지다. 그는 조선 최대 거상이자 거부가 되었다. 지금껏 그의 인생에서 손해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이 내린 거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날 송골매 한 마리가 자기가 기르는 병아리를 하늘로 낚아채가는 것을 보고 깨닫는다. 거칠 것 없이 자신에게 부를 선사하던 상운이 다했다는 것을...그 이후 그는 자신에게 빚을 진 모든 사람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등 영원히 '건전한 부자'로 남게 된다. 잭 웰치도 '자신이 가장 잘 나갈 때 무언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라고 자서전에 적고있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지만 최근 나는 스스로에 대해 많은 실망과 회의를 할 계기를 맞은 적이 몇 번 있다. 어느 때 보다 굳게 마음을 먹고 세웠던 방학 계획이 내 의지력의 한계를 확인할 기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책도, 경제학 공부도, 열성적으로 책임을 다하기로 한 과외도 내 애초 계획과는 상관없이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 밖에 특히 나에게 일 중에 큰 금전적 손해를 수반하는 것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기숙사 퇴출(?)과 새롭게 시작한 자취생활...어림잡으면 기숙사에서 한 학기 생활 가능한 돈을 나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앞으로는 1달치 방값으로 쓰게 생겼다. 내가 기숙사 퇴사 사실을 깨닫게 된건 며칠 전이지만 실제 등록일은 7월 말쯤이었으므로 내 과외가 중단되어 수입이 끊긴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개학을 얼마 앞두지 않았으니 부랴부랴 방 잡고 2학기 학교 등록금 내고...또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내것 뿐만 동생 대학 등록금까지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하다못해 오늘만 해도 그렇다. 이틀전에 나는 마침 큰 서점 근처에 갈 기회가 생겨서 2학기 때 수업 교재로 쓰일 수학책을 하나 구입했다. 워낙 책값이 비싼지라 혹시나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제 밤에 내 이름까지 적었는데 오늘 알고보니 내가 산 교재는 선배들이 지금까지 수업때 쓰던 2판이고 2004년 2학기 부터는 개정된 3판으로 수업을 한다고 한다. 이틀 전에 내가 그 책을 사지만 않았더라면...아니 하다못해 어제 밤에 이름만 안 적었더라면 환불이라도 가능했을텐데...책값 1,2만원도 아니고 4만5천원을 그대로 날린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순전히 내 잘못이라고 하긴 힘들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 내가 겪은 어려움도 많으니까...하지만 많은 경우는 내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썼더라면 상당부분 손해를 막을 수 있었다. 요즘 문득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내가 너무 헤이하고 안이한 마음가짐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비교적 태어나서 남들에 비해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자란 나이긴 하지만 특히 최근 5~6년 사이 나의 인생 경로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게임도, 운동도, 노래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내가 어느날 그나마 공부라는 녀석은 잡았던 것이 아마 이 때쯤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행이 학생이란 신분에서 성적이 남들보다 그나마 우수하다는 것은 많은 어드벤티지가 있었다.

그 정점에 선 지금 나는 나를 처음 보는 이에게 소속만을 밝힘으로써도 그로부터 부러움 내지 경탄을 끌어낼 수 있는 존재라고 은연중에 자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난 뭘 하든지 큰 어려움 없이, 이 세상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것만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인생에서 주기가 있다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면 지금쯤 내리막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설사 내 앞에 내리막길이 있다 해도 내 지난 승승장구를 생각한다면 이 내리막길을 원망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최근 내가 저지른 잘못이나 해이함의 결과로 입은 손실들...어쩌면 이것은 지금껏 내가 얻은 것들에 대한 댓가를 요구하는 서곡일 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서태지나 마이클 조던의 교훈을 받들어 이젠 이 세상을 떠나거나 인세(俗世)를 벗어나겠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기엔 그들의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잘 나가고 있을 때 나를 살피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때는 바로 지금이다.

이제 내 앞에 펼쳐질 인생은 지난 나의 과거처럼 무조건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100을 얻기 위해 90만 노력해도 되었던 과거처럼이 아니라 110을, 아니 그 이상을 노력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 것이다. 늘 나태하지 않고 내 행동을 반성하며 또 언제나 깨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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