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왜 모두가 영어를 잘 해야 할까

(2008년 여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초-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알바를 시작한지도 이제 한 달이 다 돼간다. 이 귀여운 학생들은 수업시간때 나름대로 열심히 문장을 따라하고, 서툴게나마 나의 질문에 영어로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분명 이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어 있을 미래에는, 영어 실력에서 만큼은 나를 훌쩍 뛰어넘으리라 확신할 수 있다. 물론 청출어람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초등학교 시절 영어를 전혀 접하지 못하였고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처음 ABC를 배우던 세대다. 반면에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적어도 출발점에 있어서는 내가 가르치는 이 어린이들이 훨씬 앞서있는 복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역시 영어를 처음 배운 것은 사교육의 힘을 빈 탓이다. 나는 정규 교육 과정보다 1년 남짓 먼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알파벳을 배웠다. 하지만 실상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선행학습을 했음을 감안할 때 나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평균 출발점에서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문장도 하나 만들지 못하던 중학생 시절, 이미 우리들은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어버렸다. "너희들은 영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도 '모국어 수준'과 현재 '내 영어 수준' 사이의 간극을 떠올린다면 아직도 이 말은 아찔하게 들린다. 그런데도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왜 이리 한가한 걸까? 일단 나의 나태함과 무신경함에 채찍을 가하는 것이 먼저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다. 조금은 근거 있는 변명을...... 정말 우리는 모두가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할 필요가 있을까?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한국의 영어 교육'을 어느 때 보다도 많이 생각하는 요즈음, 오히려 대답은 '아닌 것 같은데?' 쪽으로 자꾸만 나아간다.

  얼마 전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영어 교육에 관련하여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여기저기서 많은 비판을 받은 그 정책은 대폭 수정되어 조금은 용두사미가 된 듯도 하지만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영어 교육이 강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모든 국민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영어 교육에 투입되는 사교육비가 천문학적 액수라는 통계자료는 영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국가가 '공급'을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충분히 일리있게 들린다. 과연 그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것일까?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영어에 대한 초과수요는 '절대적인 필요'  보다는 '상대적인 우위'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보자. 첫 번째는 마치 지금처럼  모든 국민의 영어 수준이 바닥을 기고 있으며 몇몇 사람들만 중간 내지 상위권에 서 있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마치 대통령이 꿈꾸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위 수준에 도달해있으며 아주 뛰어난 몇 사람은 거의 원어민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우수한 경우이다. 새로운 정책이 겨냥하는 목표로 접근한다면 대한민국 영어 유토피아는 두 번째 경우여야 한다. 하지만 아니올시다. 학부모들의 솔직한 욕구는 첫 번째의 모습 같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아들, 딸만이 - 비록 상위권은 아닌, 중간 정도의 실력일지라도 - 다른 아이들 보다 우수한 학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 시장이 커진 이유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겪어야 했던 울분이나 답답함 때문이 아니다. 우리 나라 오천만 국민 가운데 일 년에 외국인과 영어로 한 마디라도 대화를 해야 하는 사람은 몇 퍼센트나 될까? 영어로 된 문서를 반드시 읽을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높은 영어 점수를 요구하는 직장에서 마저도 실제 영어를 잘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리고 몇 달에 한 번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모든' 사원들이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다. 그저 통역 한 사람만 있으면 족하다.

 그런데 이렇게 일년에 몇 번 안 되는 상황에서 직장 상사가 "영어 잘 할 줄 아는 사람 손 들어봐!" 라고 할 때 손을 들 수 있는 사람은 확실히 남들보다 돋보이게 마련이다. 물론 승진에도 유리하다. 바로 이 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영어 사교육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국에서 영어를 잘 하려는 이유는 게임에서 좋은 아이템을 획득하려는 이유와 같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쉬운 영어를 이해하는 수준으로도 평생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 다만 소수의 좁은 문에 들기 위해서 불필요한 초과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영어는 '의사 소통' 이라는 수단적 의미가 아닌, 그 자체가 아이템이며 자격증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 까지 받아야 하는 소위 '의무 교육' 가운데 평생 쓰여지지 않고 버려지는 것이 어디 영어 뿐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교육의 본질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교양 교육은 한 국가가 국민들에게 기본적으로 갖추기를 요구하는 최소한의 앎이다. 한국어는 모국어이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수학, 과학, 미술, 음악, 체육 등등은 그 자체로 인간이 알아야 할 지식을 담은 것이다. 미분, 적분을 어디다 써먹냐고 하지만 이런 학문들은 결코 어딘가에 쓰여지기 위해서 배워야 할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진리이며 지혜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앎과 학문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인다면 세상 모든 학교는 상고, 공고, 농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소위 '중요 과목'으로 분류되는 영어만은 '진리'를 향한 것이 아닌,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나마 옛날처럼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 영어는 단어의 암기량, 논리적 문법 구사 능력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출발선 자체가 다른 해외파 학생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제 한 사람의 영어 실력은 그가 남들 보다 하나의 언어를 더 할 줄 아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해온 것은 아닐까. 기업도, 대학도 이제 무턱대고 영어 점수 자격 기준을 높이기 보다는 왜 영어 잘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진정 우수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다른 능력은 없는가?

 오늘도 나는 학생들이 비뚤비뚤한 글씨로 써낸 시험지들을 채점한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내준 숙제를 검사한다.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하를 받았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들은 집에 보내지 않고 다른 교실에서 나머지 공부를 시키고 보낸다.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만 집에 갈 수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학부모들로부터 무책임한 교사라고 항의가 들어올테니까. 하지만 퇴근길에서는 괜시리 내가 이렇게 이쁘고 귀여운 아이들을 생고생 시키는 것 같아 안쓰러워지고, 심지어 그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하다.

 조금 곁가지 얘기를 하자면, 초등부 학원 수업은 대개 8시가 조금 안 돼서 끝난다. 아마 집에 돌아가면 저녁식사를 할 테고 내가 내준 숙제를 할 것이다.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그들의 숙제는 때론 업데이트 시간이 11시를 넘기기도 한다. 꼭 영어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직 초등학생이라면 늘 밝고 즐겁기만 해도 될 나이가 아닐까? 어차피 반 세기 넘는 생을 살면서 8 할은 괴롭고 짜증나는 일들 뿐일텐데 말이다. 적어도 아이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마다 "오늘은 무슨 즐거운 일이 생길까?" 라는 기대로 부풀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끝없이 되묻는다. "왜 모두가 영어를 잘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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