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봄, 스물두살의 어느 날)
인간을 규정짓는 여러 말 중에 호모 로퀜스(Homo Loquens, 언어사용인)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대화로서 의사를 소통하고 친교나 정서를 표현하는 동물이다. 인간의 말이란 것이 참 알면 알수록 오묘한 것이다. 기계와는 달리 인간의 말은 학습되지 않은 말까지 순간순간에 입에서 나오게 된다. 기계의 말은 인간의 입력 범위를 벗어날 수 없지만 인간이 직접 내뱉는 말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새로운 말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기계에 입력된 언어와 같이 어떤 상황이나 때가 왔을 때 말하도록 미리 계획된 말들이다.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준비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이런 유형의 말들이 사용된다. 또한 일상적인 대화라 하더라도 자신이 평소에 그 상황이 닥칠 때 꺼내기로 준비해둔 말이라면 여기에 속한다.
두번째는 임의적으로 스스로에게 닥친 상황에 맞춰 꺼내는 말이다. 길가다가 갑작스레 선생님이나 친구와 맞닥뜨릴 때 나누는 대화, 수업시간에 예기치 못한 지적을 받고 일어나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세번째는 미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런 사고과정 없이 무의식중에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비명을 지르거나 탄식을 하거나, 뭔가 불만에 가득 찼을 때 거의 혼자만 들을 수 있도록 중얼거리는 말들이 이 범위에 속하는 말들의 적절한 예가 될 수 있겠다.
직관적으로도 우리는 첫번째 유형의 말이 다른 나머지 두개 유형의 말 보다 훨씬 세련되고 논리적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다듬거나 멋지게 수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 말을 하게 될 상황도 미리 예측된 상황이기에 덜 당황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반비례해서 가장 세련되기 어렵고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든 경우는 바로 두번째 유형의 말일 것이다. 사실 세번째 유형의 말은 웬만해서는 그런 형식의 말로 대화를 이어나가지는 않는다. 그저 한두번의 단편적 표현으로 끝날 뿐이다. 하지만 두번째 유형의 경우에는 대화를 전개해나가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어색하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기에 매우 곤혹스러운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냐마는 나같은 경우에는 두번째 유형의 대화를 매우 어려워한다. 하지만 때때로 주위 친구들에게 나의 이런 말주변 없는 고민을 이야기할때면 그들은 나를 비웃을 때가 있다. "너처럼 말 잘하는 녀석이 왜 그런 고민을 하느냐"는 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지금껏 그들에게 보여준 수업 발표 능력, 모임이나 학회, 동아리 소개 및 설명 연설. 술자리에서 흘리는 나의 인생 철학 및 세계관은 충분히 그들의 귀를 매료시킬만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나의 멋진 말들이 실상 대부분은 첫번째 유형의 말을 담은 내 머리속 상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현재의 대학생활까지, 나를 아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매우 논리적이며 조리있게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능력이 좋은 사람으로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저런 논리적인 대화 뿐만 아니라 친교나 정서적 표현을 수반한 말에 있어서도 나는 다른 누구보다 상대방을 편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으로 비치곤 한다. 어색해야 할 첫 만남에서도 나는 무리없이 상대방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뱉어내는 것 처럼 잘 위장된 그 말들도 많은 부분 나의 머리속에서 레퍼토리처럼 준비된 말일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두번째 세번째 같은 사람과의 만남이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말상자가 바닥을 보이는 날이 오고만다. 결국 그 사람과 내가 해야 할 말들은 첫번째 대화 유형 보다는 두번째 대화유형에 속할 비율이 높아지게 마련이며 때때로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 상황에 맞는 말을 찾기 위해서 대화 자체를 제쳐둔 채 머리 속을 빠르게 회전시키고 있는 경우도 발생한다.
원래 알고 있던 사람과도 예기치 못하게 마주칠 때 나는 더욱 당황하는 것 같다. 반갑게 웃으며 나누는 첫 인사가 끝나면 나의 머리는 복잡해진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만 할까?" 그러다 보니 나의 말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인사 이상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얼마되지 않아 작별인사가 오가게 만드는 상황을 초래하곤 한다.
반면 나는 글을 쓰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소재를 던져준다 해도 주절주절 내 생각을 이어나가는 데 남들 이상의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위에서 든 두번째 말의 카테고리를 소화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해도 잘 준비된 첫번째 유형의 말은 멋지게 해내는 이유는 바로 첫번째 유형의 말이 글쓰기와 비슷해서가 아닐까?
말과 글은 비슷한 체계인 것 같지만 실상 매우 다르다. 특히 나와 같이 이 둘 사이의 능력에 심각한 괴리가 있는 경우엔 이 사실을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글쓰기는 나의 글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이전에 잠시동안 수정 및 보완, 검토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는 말과 글 사이쯤에 위치한 채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글은 일반적인 경우 작가와 독자가 동일한 시공을 공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작가는 청자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말이란 것은 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TV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달변이 더더욱 부러울 수 밖에 없다. 꼭 그런 유명인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든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갈 줄 아는 주위의 많은 사람. 그들이 참 부럽다.
혹시 앞으로 갑작스레 나를 만났을 때, 혹은 오랜만에 같은 자리에 앉았을 때 내가 무뚝뚝하게 먼산만 바라보고있다 할지라도 결코 당신에게 무관심하단 뜻은 아니란 사실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마음은 당신과 자연스럽고 편안한 대화를 원하고 있지만 다만 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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