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사랑하되 자유롭게

(2007년 여름, 스물네살의 어느 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인과 함께 담배 끊기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둘 중에 먼저 담배를 입에 댄 사람이 다른 한 쪽에게 만원의 벌금을 물기로 한 것이었다. 금액이 지나치게 높으면 약속을 지킨다는 현실성이 떨어지고, 너무 낮으면 다짐이 흔들릴 것 같기에 적당하게 타협한 금액이었다. 사실 이런 비슷한 금연 시도는 그 전에도 몇 차례 해본 적이 있었지만 - 물론 이번 것과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 가끔씩 이렇게라도 담배를 멀리하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하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젊어서 그런지 내가 금연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는 건강 때문은 아니다. 수많은 의학적 근거들이 담배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담배 뿐 아니라 우리가 매일 먹는 것들 중에 해롭지 아니한 것이 어디있는가? TV나 신문에서는 걸핏하면 어떤 음식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성분이 검출됐다고 호들갑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것을 모른 채 매일 먹었으나 오래오래 장수한 많은 사람들은 뭔가? 오히려 이런 잦은 과학자들의 경고 때문에 대중들이 더욱 무신경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진짜 내가 담배를 끊고픈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째는 경제적 이유이다. 3일에 두 갑 정도는 꼬박꼬박 피우다 보면 한 달에 5만원 정도는 고스란히 담배값으로 지출해버린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는 정철진의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 근거가 참 재미있다. 하루에 담배 한 갑이면 2천 5백원. 시중엔 1만원 미만인 주식도 많다. 하루에 쓰는 담배값으로 코스닥 주식을 매일 모은다고 가정해보자. 수익이 100프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담배값으로 날리는 것 보다는 비교도 못할 만큼의 재테크 가치가 있다. 특히 몇 달 전 처럼 주식이 크게 폭등한 경우라면 두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렇게 짤랑짤랑 돈 소리 나는 근거도 솔깃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담배 3~4일 참으면 괜찮은 책 한 권 정도 생긴다고 생각하고 싶다. 전공 공부, 레포트, 시험 등등에 바쁘던 대학생활에서 벗어나 한 달에 10권 내지 많게는 15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늘 비싼 책값이 부담이다. 만약  한 달 동안 담배를 안 필 수 있다면 - 물론 실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것은 인정한다 - 지금 보다 넉넉 잡아 5~6권 정도는 더 장만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자주 들르는 헌책방에서 책을 산다면 10권 내지 20권 까지도 가능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Worwegian Woods>에서 주인공은 왜 담배를 끊었냐는 미도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귀찮아서, 밤중에 담배가 떨어졌을 때의 괴로움......무엇이든 그런 식으로 속박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는 내가 담배를 끊고픈 두 번째 이유를 그대로 잘 말해주었다. 담배 뿐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대상이 없을 때 내가 흔들리고 안절부절하지 못한다면 내가 어떻게든 그 대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쥐어잡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되 기대지 않는 것, 사랑하되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참으로 힘든 일이다.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수필가 피천득씨는 이러한 중용中庸을 잘 실천하신 분인 것 같다. 만약 그가 담배를 전혀 필 줄 몰랐다면 그는 조금이나마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덜 느끼고 떠난 것이다. 반대로 담배 없이 못사는 골초였다면 그는 쾌락에 중독되어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수필집 <인연>에서 그는 누군가가 권하면 기꺼이 함게 담배를 맛있게 즐겼지만 그렇지 않을 땐 전혀 피지 않았다고 한다. 주초酒草에 돈이 나가지 않으니 적은 돈으로 시내를 걸어도 행복했으며 또 가끔씩 얻어피는 담배에 즐거웠으니 또 행복했다고 한다. 참 멋진 분 아닌가?

세상엔 수많은 기쁨과 쾌락이 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것이 선사하는 기쁨은 우리가 이 세상을 더욱 살 가치가 있게 만들어준다. 나는 이 원칙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저급한 쾌락'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이런 특정한 쾌락을 금기시하고 나아가 법적으로 규제하기도 한다. 나는 그 이유가 쾌락 자체가 나빠서라기 보다는 그것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 채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스스로가 파멸에 이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사랑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게 하옵소서. 흡연자, 알콜-마약 중독자에게서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지독한 금욕주의자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조부祖父인 제임스 스티븐James Stephen은 우연히 한 번 담배를 피웠다가 '너무 좋아서' 다시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한다. 과연 저렇게 수도승같은 삶이 행복한 삶일까? 나름 고매한 경지에 다다른 사람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속인俗人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부재不在가 가져올지도 모를 공허함이 두렵다는 이유로 사랑조차 안하는 쪽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사랑할 때 뜨겁게 사랑하되 뒤돌아서야 할 땐 슬픔도 미련도 없이, 꺼진 재 위에 모질게 찬 물을 부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필연적으로 나는 담배를 앞에 두고서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함과 헤어나지 못함으로 인해 느껴야 할 고뇌를 저울질하곤 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사랑 때문에 느껴야 할 고뇌가 두려워 사랑조차 안 하는 것은 싫다. 하지만 평생을 두고 볼 때 경제적, 심리적 고뇌가 훨씬 크다면 어쩔 수 없이 사랑 자체를 끊는 쪽을 택하고 싶게 마련이다. 지금의 내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에쉬튼 커쳐Ashton Kutcher가 주연한 영화 <나비 효과 The Butterfly Effect>에서 주인공은 자신에게 일기장을 통해 그 속에 쓰여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지금의 애인과 사랑하게 됨으로써 모든 것이 망가진 현재 상황에 괴로워한다. 결국 결말 부분에서 그는 애초 자신이 지금의 애인을 몰랐던 때로 돌아간다. 그리고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그 애인을 만난 날, 그녀에게 심한 욕을 해버린다. 이렇게 둘은 평생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가끔씩 담배를 끊으려다 의지 부족으로 실패하곤 할 때 나는 이 영화가 자꾸만 생각난다. 지금도 때때로 담배를 왜 피느냐는 비흡연자의 질문을 듣곤 한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담배에 대한 욕구는 피지 않는 사람에겐 전혀 느끼지 조차 못하는 욕구이니까. 이는 마치 로보트가 성욕, 수면욕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내가 이 담배에 대한 욕구 조차 느끼지 못하던 5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허황된 상상도 하는 것이다.

물론 피천득씨 처럼 필 줄 알지만 절제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에 차라리 담배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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