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말 속의 독, 욕설

(2005년 봄, 스물두살의 어느 날)


오늘, 그리고 며칠 전 나는 서로 다른 언론매체로부터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주제는 바로 '청소년의 욕 문화'였다. 실제로 요즘에는 욕이란 것이 누군가를 비난할 때 쓰는 특수한 어휘가 아닌 일상적인 언어인 것 같다. 친구를 부를 때나 그곳에 있지 않은 제3자를 지칭할 때도, '매우'나 '엄청'과 같은 강조어를 대신할 때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욕을 들을 수 있다.

언어적 관점에서는 어떤 단어가 아주 친숙해지거나 자주 쓰이게 되면 언중은 해당 단어의 어원이나 본래적 의미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약간 초점은 다르지만 비슷한 경우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쓰고 우리나라에 유입된지 오래된 외래어는 그 단어가 외래어인지 여부 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욕도 마찬가지다. 실제 사람들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욕이 본래 어떤 의미를 갖고있는지 인지하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뱉어내곤 한다. 심지어는 그 욕이 어떤 뜻을 갖고있는지 조차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주위에서 들어서 배운 단어로서 욕을 사용할 때도 많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쓰는 그 욕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있다면 그렇게 쉽게 욕을 뱉어낼 수 있을까? 그 말의 뜻을 한두번만 되새겨본다면 우리는 결코 쉽게 욕을 뱉어낼 수 없을 것이다. 내 입에서 욕을 꺼내기 전에 한번만 그 욕을 뜻하는 사전적 어휘로 그 욕을 치환시켜보자. 예를 들자면 내가 책상을 말하기 전에 머리 속에 [책상 : 앉아서 책을 읽을 때에 앞에 놓고 쓰는 상] 을 떠올린 후 책상이란 말 대신에 뒷부분의 책상을 설명하는 문장을 사용해보는 것이다. 이런 훈련을 계속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욕을 내뱉는 버릇을 많이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절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듣고 상대방이 듣고 하늘이 듣는다. 나는 3명으로 부터 입에서 욕을 뱉어내는 화자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 가운데 말이 포함되는 만큼 나의 말은 타인이 나를 평가함에 있어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나는 나쁜 말에는 독이 있다고 믿는다. 하물며 식물도 매일 자신을 닦아주는 주인이 예쁘고 고운 말을 하는 것만 들을 경우 더욱 잘 자란다는 말도 있는데 사람의 경우엔 오죽할까? 아이를 임신한 임산부들도 태교의 일환으로 좋은 말만 하고 좋은 말만 듣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그만큼 나쁜 말은 듣는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몇년 전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라는 제목의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비록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여기서도 비슷한 관점이 적용되는 듯 하다. 누군가로 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태어난 이후 매일매일 수백명의 사람들로부터 "죽어라!! 죽어라!!" 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는 진짜로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왠지 직감적으로 적어도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 같다.

최근엔 10대들 사이에선 - 실제로 내 경험상 20대도 마찬가지지만 - 욕이 마치 하나의 문화코드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오인용' 같은 인터넷 사이트는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욕의 뜻 보다는 어딘가 강하고 시원한 듯한 어감, 그리고 암묵적으로 금지된 것을 행한다는 일종의 쾌감 때문에 욕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식물에 씨가 있듯이 말에는 어원이 있다. 식물의 씨가 앞으로 자랄 열매를 결정짓듯이 각 말의 어원도 그 말이 어떻게 작용할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그 뜻을 모르고 욕을 쓴다 하더라도 그 욕은 어원부터 욕인 만큼 강한 독을 지니고 있으리라 믿는다. 독은 내 입에 품지도 말고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게 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내가 욕을 자주 뱉는 편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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