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4일 월요일

크리스마스 카드와 초콜릿의 추억

(2007년 겨울, 스물네살 어느 날)


겨울 방학을 앞두고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은 한창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방학이 성탄절 보다 일찍 시작되기에 그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 괜히 우리는 들뜨곤 했던 모양이다. 비록 동성 친구 간에도 얼마든지 카드를 주고 받았으며 그 때는 누구도 그것을 어색해하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순진했었다. 하지만 14살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주요 관심사는 이성친구간에 오가는 카드에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확실히 당시에도 남자친구 보다는 여자친구가, 카드를 보낼 또 보다는 받을 때가 더 기분이 좋았다. 나 역시도 몇몇 호감을 가졌던 몇몇 여학생들에게 짧지만, 결코 쉽지는 않은 메세지를 정성스레 담아서 카드를 보냈다. 대부분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었기에 모두가 웃으며 자연스럽게 받았다. 인간 마음이 참으로 묘한 것이 결국 카드나 선물, 메세지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으론 내 마음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애초에 얼마 넓지도 않은 메세지 적는 부분이 자꾸만 크게만 느껴졌었다. 그리고 그나마 적는 짧은 메세지 마저도 두리뭉실 애매모호한 크리스마스 인사가 되곤 했었다. Merry Christmas만 적어도 1/3은 채워졌던 것 같다.

혹여나 호감이 가던 한 사람에게만 카드를 쓰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일까봐 두려워 앞, 뒤, 좌, 우에 앉은 친구들, 아파트 같은 동네 사는 친구들에게까지 다 보내버리고 말았다. 초등학생 용돈이야 안 봐도 뻔한데 당시로서는 나름 심각한 고민이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연막은 결코 싼 대가로 살 수 없는 것이었으며 어쩌면 이것은 용기를 갖지 못한 자가 지불해야 할 비용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꽤 많은 카드를 받았다. 역시나 대부분 친한 남자, 여자 친구들이 보내온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이 이미 카드를 줄 것이라고 예상된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한 여학생이 보내온 카드가 끼어있었다. 평소 나와는 거의 대화도 없었을 뿐 아니라 공부도, 얼굴도, 성격도 그리 튀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나는 조금 놀랐고 동시에 은근히 더 기뻤다. 하지만 아직 순진했기 때문이었을까? 부끄럽기도 해서 나는 주위 친구들의 온갖 부추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써 그 카드의 의미를 축소해석하려했다. 이것도 일종의 자기 암시가 됐는지 나중에는 정말로 그녀의 카드는 "그저 친구에게 보내는 안부 메세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믿게 돼버렸다.

내가 조금만 더 신사답고 적극적이었다면 당장 전화라도 해서 고맙다는 말, 그리고 답장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단 말을 할 수 있었을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평소 말도 없고 얌전하기만 했던 그녀. 그리고 당시만 해도 언제나 많은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리며 운동도, 공부도 다수 속에서 했던 나. 우리 둘은 애초부터 친할 동기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만큼 그녀의 카드에 대해 다른 친구들에게 보다도 더 감사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의 거리 때문에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색할 것 같아서 망설이기만 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시간은 참으로 매정했다. 어느새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두 달 남짓한 그 기간은 나의 죄책감도 레테의 강 너머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고 2월이 되어 개학을 맞았다. 방학 전에도 늘 그랬던 대로 그녀와 나는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맨 뒷자리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따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어색해서 그만 둬버렸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내가 그녀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버릴 기회가 조만간 오리라는 사실을.

중학교 배정 발표가 났다. 그리고 졸업식이 다가왔다. 교실에는 이벤엔 초콜릿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을 건네주었고 나는 또 쭈뼛쭈뼛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 달엔 나도 예쁜 사탕 줄게"라고 말하며 그것을 받았다. 나는 평소에 친하던 친구들 무리로 돌아갔고 그들과 함께 그 초콜릿을 뜯어서 먹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그 때 내 생각에 발렌타인데이는 원래 여자가 남자한테 주는 날로만 생각했기에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또 며칠이 지나 배치고사를 쳤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때만 해도 우리 동네에는 남녀공학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그녀와 나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필요 없지만 당시에는 배치고사를 잘 쳐서 학교에 좋은 첫인상을 주는 것이 엄청 중요하다고 다들 믿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들 열심히 공부했다. 다행이도 나는 운이 좋았던 모양인지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 마음에는 아직도 내가 진지한 마음으로 공부하지 않는 모습이 걱정스러우셨나보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맘 잡고 공부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결국 부모님과 상의하여 처음으로 학원 종합반에 등록해서 다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종합반은 남여학교가 갈라지고 난 후에 나름 여학생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감각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입학 후에도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여학생들을 가끔씩 길에서 만나긴 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시절엔 느끼지 못했던 어색함이 그들과 나 사이에 감도는 것을 우리는 모두가 눈치채고있었다. 다른 학교라는 소속,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보이는 교복. 이제 그들과 나는 몇 달 전까지 함께 장난치던 개구쟁이들이 아닌, 남학생과 여학생이 돼버린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변한 그들의 인상에 나는 다가오는 3월 14일이 걱정스러워졌다. 어떻게 그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나? 같은 반에서 지내던 시절에도 수화기를 든 채 결코 누르지 못했던 그녀의 전화번호, 이젠 수화기조차도 들기 힘들 것 같았다.

결국 그 날은 찾아왔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는 3층 복도 창문을 통해 정문 쪽을 내다보았다. 역시 이틀 전에 약속한 대로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짧아진 머리에 평소처럼 단정한 이웃 여학교 교복, 변하지 않은 듯 변한 그녀 모습이 참 어색한 듯 하면서도 신선했다. 그 때 먼저 집으로 간다고 계단을 내려갔던 학원 친구가 다시 계단을 뛰어올라오더니 묘한 웃음을 띠며 한 여학생이 나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게 된 같은 반 여학생들 서너명이 꺄르르 웃으며, 부럽다는 말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그 때 나는 왜 그렇게 바보같았을까? 내 가방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끝내 계단을 내려가지 않았다. 창가를 통해 그녀를 바라보지도 못했다. 아직 쌀쌀한 초봄의 찬바람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녀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창가 너머로 바라보니 이제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핸드폰이라도 있으니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라도 냈을텐데. 어쨌든 학원 차는 놓쳤으니 뚜벅뚜벅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화이트데이를 맞아 여기저기 펜시점에서 화려한 사탕들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시끄럽게 귓가를 스치는 자동차소리, 빌딩 아래 음지에 아직 채 녹지 않은 더러운 눈덩어리, 그리고 아마도 남자친구에게 받은 듯한 사탕 바구니를 자랑스러운 듯 손에 들고 하교하는 여러 교복의 여중생, 여고생들. 나는 그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집으로 걸어와버렸다.

그날 나는 예습, 복습도 할 수가 없었다. TV도, 그렇게 좋아하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나를 기다리던 그녀 모습과, 귀갓길의 야경夜景이 눈앞에 아른거렸을 뿐. 거의 똑같은 기회가 두 번 세 번씩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녀를 외면한 나는 정말 나쁜 녀석이었다. 호손N. Hawthorne의 《주홍 글씨 The Scarlet Letter》에는 "가장 악한 사람은 타인의 성역을 침범하는 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사람의 감정에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인 그녀의 자존심까지도 다치게했다. 그녀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녀가 싫어서가 아니라, 감정의 표현이 서툴러서 끝내 도망쳐버린 나의 이 바보같은 모습이 너무도 싫었다. 그녀의 심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자학하는 나의 고통도 그녀의 심적 고통 못지않게 아팠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렇게 내 추억 속에서 12월의 크리스마스, 2월의 발렌타인즈 데이, 3월의 화이트 데이에까지 이르는 연말年末-연시年始는 씁쓸한 기간이다. 이렇게 긴 후회의 달을 마치고 마치고 맞이한 '대구, 1997년 4월 봄'은 《켄터베리 테일즈 The Canterbury Tales》에서의 꽃피는 4월이 아닌, 엘리엇이 말하는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April is the cruelest month.  T.S. Eliot의 《황무지 The Waste Land》中 ) 인간의 악행은 악한 마음을 품었을 때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용기가 없어서든, 표현이 서툴러서든 간에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악행이다.

크리스마스가 딱 한 달 남았다. 6학년때 내가 2주일만에 그녀의 카드를 잊었듯, 10년이란 세월은 그녀가 나에 대한 가졌던 원망을 씻을 수 있는 시간일까? 만약 언젠가 내게 그녀를 만날 기회가 온다면 나는 어떻게 사과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상대에게서 나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미안해."라는 말이 있고 또 '선물'이 있는 법이지만, 그 잘못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버리면 이 모두가 무의미해지고 만다. 누군가 나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그녀에 대한 나의 죄책감을 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녀가 나에 대한 섭섭함을 잊게 할 수 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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