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숫자로 씌어진 일기장

(2011년 여름, 스물여덟살의 어느 날)


작년 7월에 입사하여 연수 등등을 마친 후, 근 1년간 엑셀로 가계부를 꼬박꼬박 써오고 있다. 매번 돈을 쓸 때 마다 장부에 쓰는 계속기록법은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얼마 안 돼 포기했다. 그 대신에 나는 매달 말일에 일종의 변형된 실지잔액조사법을 이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먼저 전월 이월 잔액에다 이번 달 통장에 찍힌 급여, 상여 등등을 합친다. 물론 그 기준은 세금을 비롯한 각종 공제금액을 제외한 순수령액이다. 여기서 월말에 각종 계좌 잔액의 합계를 뺀다. 이제 이 차액들 가운데 쉽게 추적 가능한 내역은 소비/투자로 구분하여 기록한다.

* 카드값 ∙ 관리비 ∙ 통신비 ∙ 이자비용 등등은 소비처리한다.

 *주식-펀드매매 ∙ 보험료-연금납입 ∙ 저축 등등은 투자처리한다

  (다만, 보험/연금은 당장 환매할 수 없으니 그냥 소비처리함)

* 전체 차액과 소비/투자액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이 차이는 모두 현금소비로 처리한다.

 이번 달의 가계부를 정리해보았다. 아직 말일은 아니지만 마지막 영업일로서 종가는 나왔으니 주식, 펀드 평가액은 확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입사 1년을 맞이하여 새삼 지금까지 기록한 내용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가계부란 마치 숫자로 기록된 일기장과 같다고 생각한다. 1년간 써온 가계부를 보며 느낀 점 몇 가지.

상여금 없이 기본급만 받는 홀수달은 그 달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살기 힘들다. 평균 카드값을 포함하면 기본으로 나가는 금액만 해도 벅찬 수준. 이 때 마다 나는 한달간 열심히 일해서 우리 회사 돈을 꺼내와 카드회사로 토스해주는 역할만 하는 것 같다.

나는 경제학 책에 나오는 “샤워실의 바보”와 같다. 지금 소비하는 카드값은 다음 달에 현금으로 지출된다. 그런데 무의식중에 나는 짝수달에 풍족함을 느껴 더 많이 긁고 홀수달엔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카드 청구서는 정확히 그 반대로 날아왔다.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가계부를 쓰는 것에 회의를 느끼진 않는다. 하지만 이 가계부가 내 소비/투자 성향을 파악하는 리뷰 역할은 훌륭하게 해내지만,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피드백 역할은 거의 못하는 것 같다. 소비가 많은 달에도, 수익률이 좋지 않았던 달에도 “음, 그랬군” 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새로운 한 달을 또 비슷하게 반복한다.

부모님, 동생한테 용돈을 거의 안 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1년치를 모아놓으니 꽤나 큰 돈었이다. 약 5초 동안 “우와…저 정도 돈이면 이것도, 이것도, 또 이것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5초간 반성했다. 이렇게 10초 후 나는 평온을 되찾았다.

별 생각 없이 소비하고 투자하지만, 몇 달을 놓고 보면 개인의 소비성향은 어느정도 와꾸(?)가 잡히는 것 같다. 관리비, 통신비, 이자비용, 보험료, 연금 등등이야 당연히 거의 고정되어 있지만 그 밖에 소비도 평균에서 그닥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 “평균” 자체가 높다는 게 문제…. 하지만 확실히 가계부를 쓰다 보면 미래에도 내가 어떻게 자금을 운용할지를 꽤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매달 이만큼 버는데 내가 이만큼 쓰고 저축하니 몇 년 뒤면 얼마가 모여 무엇을 살 수 있겠다” 라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데 가계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 때 주식에 살짝 발담그고, 지금은 기관투자자로서 주식 관련 업무를 맡고 있지만 이것이 개인투자 차원에서 “의미있는 수준으로” 시장을 이기는 충분조건은 못 되는 것 같다. 다행이 벤치마크에 비해 부끄러울 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디가서 자랑할 수익률은 못 된다. 블루칼라의 직접노동에 비해 금융자산에서 나오는 자본이익(capital gain)은 돈을 더 쉽게 버는 듯한 어감을 주지만 역시 세상은 공평하다. 주가의 상승으로 얻는 이득도 본질적으로는 그 주식을 발행한 회사 직원들이 피땀흘려 창출한 가치를 나눠갖는 것에 불과하다. 수많은 기업의 일선에서 노동자들이 흘린 땀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려 공부할 때 비로소 내 잔고도 불어날 것이라 믿는다. 적어도 장기적으로 세상은 정의롭고 공평하다고 믿(고싶)기 때문에.

연봉 총액이 비슷한 회사라 할지라도 그것을 지급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우리회사처럼 단위를 잘게 나누어 홀수달에 월급 한 번, 짝수달엔 두 번 주는 방식은 그닥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연간 총 지급액을 열두번 나눠서 분할지급 하는 게 최고다. 어차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매달 비슷하다. 짝수 달이라고 하루 여섯끼를 먹지는 않으며, 홀수달이라고 연금/보험료를 반만 내는 건 아니다. 문제는 많이 받는 달에 두 배로 쓰는 건 내 몸과 기분이 알아서 잘 되던데, 홀수달이라고 아끼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절대 안 된다. 사람은 컴퓨터도, 로보트도, 계산기도 아니니까.

아둥바둥 살고, 불평불만 가득하고, 투덜대기도 하지만… 막상 1년간 받은 순수령액만 더해봐도 꽤 많다. 우리회사에 직원만 4천 명이고 FP는 2만명 정도라고 한다. 매년 들어오는 보험료 총액에서 사고/사망을 당한 고객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을 빼고도 이 만큼의 잉여가 발생하다니, 회사 직원으로서도 새삼 놀랍다. 물론 내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 가치가 나에게 주어지는 급여보다 크기 때문에 회사는 나를 채용한 것이다.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노력에 대해 이만큼의 수고비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개인이 얼마나 될까?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나 역시도 회사 급여에 대해 내 노력을 지불할 용의가 있으므로 딜이 성사된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이 없다면 이런 기회조차 없다.

마지막으로 좀 슬픈 현실 이야기. 어차피 티끌모아 티끌덩어리 같다. 현실에서는 자회사의 손익계산서보다 모회사의 빵빵한 대차대조표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그 손익계산서도 안 좋은 것 보단 좋은 게 더 나으니 매일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해야지.

불쌍한 자들의 생존법

(2011년 여름, 스물여덟살의 어느 날)


원하는 방향과 그것에 맞지 않는 현실 사이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내 스스로가 현실에 맞추어 변하는 것, 다른 하나는 현실이 어떻든 그것을 원하는대로 해석하여 둘 사이의 갭을 좁혀서 일치시키는 것.

인지부조화 상태로 평생을 살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주위에서 아무리 이 방향이 옳은 것 같다고 해도 스스로가 변할 수 없다면, 혹은 그럴 의지조차 없다면 후자의 방법을 택해야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가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못마땅한 것도 있게 마련. 하지만 후자를 택한 사람은 마음에 드는 것만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의식적으로 외면하려 한다. 그리고 그 훈련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실제로 보기 싫은 것, 듣기 싫은 것은 알아서 걸러내어 마음 속에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의식적인 자아도, 무의식적인 자아도 스스로를 속이는 데 익숙하다 보니 판단력을 잃고 만다. 자기가 만든 시뮬레이션과 바깥 현실을 혼동하는 셈이다. 자기만의 매트릭스에 갇힌 채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는구나." (과연...)
"거봐 내 말이 맞지?" (당신 생각과 일치하는 극히 일부분만....)

애초에 세상과 어긋날 수 밖에 없이 태어난 사람이 정상적으로 자기 수명만큼 살아가려면 생존을 위한  필사의 방법을 써야한다. 내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후자를 택한 사람은 어찌 보면 참 불쌍한 사람이다. 60억 명 중 한명인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나머지 5,999,999,999 명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하니까. 부적응자들의 필연적인 자기방어기제라고나 할까?

타조는 사냥꾼에 쫓길 때 자기의 머리를 구덩이에 파묻는다고 한다. 자기가 사냥꾼을 보지 않으면 사냥꾼도 자기를 못 본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세상이 자기 눈 하나 감음으로서 바뀐다고 생각한다. 기억력이 짧은 사람을 붕어, 뻘짓하는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하듯이, 세상을 왜곡하여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은 타조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영웅과 멍청이, 그리고 모범시민

(2010년 가을, 스물일곱살의 어느 날)



요즘 매일 5시 45분에 일어나 6시 25분에 집을 나선다. 늦어도 6시 45분 정도에는 버스에 올라타고 직장 근처에는 7시 10분에서 15분 사이에 내린다. 출근 초기에 잔뜩 긴장해서 7시 10분 쯤 회사에 도착할 때 보단 군기가 빠졌지만, 그래도 대부분 제일 먼저 사무실에 도착하여 열쇠로 문을 열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한 번은 출근 길에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분명 평소대로 현관을 나섰는데 20분이 넘도록 내가 기다리는 400-1번 버스는 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 동안 449번은 3대나 지나갔다. 이 버스가 두 번 지나갈 때 까지만 해도 평소보다 조금 늦었다 싶을 뿐이었지만 세 번째 버스가 지나가고 나서는 더이상 가만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그날 따라 왜 이렇게 길이 막히던지. 지산동에서 2.28 공원까지 6,800원이 나왔고 평소와 같이 나는 7,000원을 내고 내렸다. 회사 옆 편의점에서 산 커피까지 합치면 업무 시작도 하기 전에 10,000원 가까이 써버린 셈이다. 그나마 지방에 내려와 돈 쓸 곳 없이 차곡차곡 잘 모으는 요즘인지라 새삼스런 지출이 더 크게 와닿았다.

며칠 후 부모님께 그날 아침의 소동을 말씀드렸다. 이런 경우 시청에 신고를 하면 관련기사를 처벌하거나 심지어 증명할 수 있는 경우 택시비까지 보상 가능하다고 한다. 요즘은 시간대별로 버스기사가 실명제로 운행을 하고 있으며 GPS를 비롯하여 전산 장치가 워낙 잘 돼 있다. 내가 기다린 정류장, 시간, 버스 번호 등을 알려주면 당시에 운행중인 버스기사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며칠이 지났다 해도 내가 몇시 무슨 요일에 그 정류장에 있었는지 똑똑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신고는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시일이 너무 지났으니 실질적으로 택시비 보상을 받긴 힘들 것이다. 워낙 경황이 없었고 이런 경험도 없었으니 신고는 꿈도 못꿨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아쉬웠다.

실제로 오늘 낮, 나는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청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핸드폰을 손에 쥐기까지 했다. 아깝게 버린 7,000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음 졸이며 기약없이 기다렸던 30분 때문에 버스회사가 괘씸했다. 그 기사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만약 그 사정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는 정당한 해명을 하고 회사나 시청으로부터 용서를 받겠지. 근무 태만으로 늦었다면 이 신고로 인해 그가 처벌 받는다 해도 결코 그는 억울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머지 않아 나는 핸드폰을 놓아버렸다. 내가 신고를 해서 불만이 접수된다 해도 지금 와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차피 내 택시비를 보상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시간과 정신적 노력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달라질 것은 그 기사가 처벌을 받느냐 무사히 넘어가느냐 여부일 뿐이다.

경제학자 제임스 뷰케넌이 창시한 공공선택학파는 특수이익집단의 생리를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라는 말로 요약한다. 5,000만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인구의 1%에 해당하는 50만 명으로 이루어진 이익집단이 있다. 이들이 5억 원을 들여 어느 국회의원에게 로비를 하여 어떤 재화의 물가 하한선을 두는 데 성공하였고, 이로 인해 이들은 100억 원의 이익이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50만 명의 이익집단은 5억원을 지출하여 100억 원의 이득을 얻었으니 1인당 19,000원의 이득 본 셈이다. 반면 나머지 국민 4,950만 명은 1인당 202원의 손실을 보았다. 일반 시민은 자신이 입은 손실을 빤히 알고 있지만 이익집단을 견제하는 데 드는 비용이 202원 이상이라면 차라리 가만이 있는 편이 이득이다. 전화비, 교통비 등등 아무리 생각해도 202원을 맞추기는 무리다.

하다 못해 나는 버스기사를 신고해도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다. 그저 근무 태만으로 수많은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혔음에도 아무 일 없는 듯 살고 있을 기사를 떠올리면 분통이 터질 뿐. 흔히 "귀찮아서 신고 안 한다."는 말도 결국엔 이 같은 계산을 직관적으로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작은 일에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분통 터뜨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가끔씩 인간이 합리적 존재인지 의심한다. 저렇게 열 내서 얻는 게 대체 뭘까. "보상금이고 뭐고 필요없다. 너 한 번 혼 나봐라" 하며 갈 데 까지 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싸워서 이기면 속 시원할까? 지극히 이론적으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역시도 개인의 입장에선 비합리적 행동이다. 내 표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수천만 분의 일 밖에 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소중한(?) 한 표를 위해 기꺼이 소중한 연휴 아침을 반납하고 교통비를 소비한다.

사람들은 내가 참을성 있고 순하다고 말한다. 뭐 특별히 남한테 피해 안 주고, 가끔씩 입는 이런 피해도 그저 씨익 웃으며 넘어가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해 참을지 그렇지 않을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어느 쪽이 더 나은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괜시리 온 동네 시끄럽게 해서 이긴들 상처뿐인 영광이라면 무슨 소용이람.

그래도 스스로에 대해 약간의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자면, 주위 사람들에게 202원 이하의 합리적 피해를 입히며 편익을 취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정도이다. 진정으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라면 최적의 선택은 상대방이 분개하지는 않을 만큼 편익을 가져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떳떳할 수 없는 이유는 이런 합리적 무시가 쌓이고 쌓여 집단 이기주의를 방조하기 때문이다.

평일 아침 7시 30분에 400-1 버스를 타는 사람은 최소한 수십-수백 명은 될 테니 그 중에 한 명은 신고를 했으리라 믿는다. 내 경험상 이 사회에는 굳이 자신의 노력을 들이면서도 사회 정의를 위해 아낌없이 불의를 신고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가 잘 되는 문제 보다는 남이 못 되는 문제에 더 민감한 사람들이 넘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수많은 시민들의 202원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영웅일까, 앞뒤 안 가리고 일차원적 감정에 휩싸여 너 죽고 나 죽자 달려드는 멍청이들일까. 난 그냥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영웅이 되기 보단 남에게 피해 안 주는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살고자 한다.

모르페우스를 갈망하며

(2009년 봄, 스물여섯살의 어느 날)


내가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놀라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린 시절 딸꾹질을 멈추려면 깜짝 놀라게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서, 혼자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 내 가슴을 쾅 내리친 적은 있었다. 물론 이런 수작으로 스스로를 놀래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놀라게 만들려는 객체가 주체 그 자체이니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데 조금 더 철이 들어서 나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의문을 가졌다. 내가 꾸는 꿈은 어떻게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일까? 내 꿈 속에서 어떻게 나도 결말을 모르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비록 자주 꿈을 꾸는 편은 아니지만, 몇 안 되는 꿈들을 되짚어보면 나는 꿈속에서 많이도 웃고, 울고, 놀라기도 했다. 내가 쓴 소설을 내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어떻게 꿈속에서는 내 머리 속에서 나온 무의식이 나를 놀라게 하는 걸까?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이후 학기 중에 나는 늘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시험이 끝난 직후가 아니라면 웬만해서 하루 수면시간은 4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꿈을 꿀 겨를도 없이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지고 만다. 꿈을 잃은(?) 요즘에는 꿈이 그립다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생각까지도 하곤 한다.

수업시간에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돌이켜보면, 수면이라는 본능이 고등교육이라는 문명을 여지없이 꺾고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실제로 깨어있음이 이성을 상징한다면, 잠은 본능이다. 이들의 관계는 다른 이분법들로도 정리할 수 있다. 밝음과 어두움, 삶과 죽음 등등. 인간이 문명의 옷을 두껍게 걸침에 따라 자꾸만 외면하려는 본능의 모습. 그 때문에 잠이라는 것 또한 그 존재와 가치를 주목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부쩍 잠이 그립고 소중해진 요즘이기에, 나는 꿈꿀 수 있는 여유로운 휴식을 갈망하나보다.

인간에게 생生에 대한 의지가 있듯, 그 못지않게 죽음死에 대한 의지도 강한 것 같다. 깨어있는 사람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거나, 숙면을 취하던 사람이 괴로워하며 알람시계를 내던지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깊은 잠을 자던 사람이 의지와 상관없이 정신이 맑아지는 경우는 드물다. 고통을 잊게 하고 최면에 빠지도록 도와주는 모르핀morphine이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를 어원으로 한 데에는 이 같은 이유가 있다. 꿈은 결코 이성이 생각하는 내가 만들지 않는다. 신화에서처럼 모르페우스가 현실과 똑같은 모습을 한 채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삶을 아름답게 해주는 소소한 일상을 꼽으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른 아침 잠에 취해 눈을 떠 시계를 보았는데, 너무 일찍 깨어나서 아직 한두 시간 더 잘 수 있을 때, 비록 기운이 없어서 펄쩍 뛰지는 못하지만 난 이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生이 아닌 死를 염원하는 내 모습에 조금 놀라곤 한다. 한편으로는 자궁의 어둠 속에서 마음껏 누리던 쾌락과 본능을 벗어나, 이성이 지배하는 빛으로 괴롭게 쫓겨나는 태아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태아에게 生이라는 이름으로 축하를 보낸다.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의 <시스터 캐리 Sister Carrie>에서는 인간을 동물에 비하면 본능에서 많이 탈피했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이성의 영역으로 진입하지는 못한 불완전한 존재로 묘사한다. 나는 이 말 자체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완전하게 이성의 영역에 도달한 존재만을 인간이라 칭하는 듯하지만, 사실 이처럼 불완전한 존재 자체를 지금 우리는 인간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또한 드라이저는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이성을 향해 달려간다고 착각한 것 같다. 그리스 시대의 찬란한 이성이, 도킨스Dawkins의 말을 빌리자면‘종교라는 집단적 망상’에 천 년 동안 억눌렸던 암흑시대를 그는 까맣게 잊었나 보다.

우리는 어느 철저한 성격의 소유자가 잠깐 방심한 나머지 작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인간적인 실수를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가리켜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 부른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른 것과 구분짓는 경계선은 이처럼 이성도 아니고, 본능도 아니다. 인간은 이러한 이중적인 기준을 인식조차 못한 채 그때그때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자신을 차별화한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스푼을 든 채 접시를 땅에 두고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잠에 들 때 스푼을 놓쳐 “쨍그랑” 소리에 깨는 순간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이성이 지배할 때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자유로운 영감을 그는 꿈 내지는 잠을 빌려 얻었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꿈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이처럼 내가 반인반수半人半獸 켄타우로스Kentauros가 되어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그야말로 불완전한 존재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꿈은 잠과 깨어있음이, 이성과 본능이 다투는 전쟁터이다. 아니, 전쟁터라기 보다는 밤과 아침 사이의 새벽처럼, 나르치스와 골트문트Narziss und Goldmund가 사이좋게 악수를 나누는 평화로운 중립지대다. 완벽한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의 인간에게, 꿈은 안식처와 같다.

이런 사람

(2008년 겨울,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내가 학창시절에 꿈꿨던 대학생활을 제시한 것은 바로 드라마 <카이스트>였다. 여느 드라마와는 달리 <카이스트>는 대학 학부과정이 아닌, 대학원 학생들을 소재로 했다. 그만큼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언젠가 연구실에서 교수님, 선후배와 함께 밤새 선학들이 이루어놓은 학문을 배우고, 또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내고 싶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를 상아탑에 걸맞는 아카데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내가 그나마 제일 잘 했던 건 공부밖에 없었고, 미래에도 내가 학문의 길 위에서 성공을 거두리라 믿었다. 남들이 이해한다면 나도 할 수 있으리라 장담했고, 나아가 대학원에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낼 능력도 지녔다고 생각했다. 2003년, 2004년 두 차례 대학에 들어와서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먼 미래에는 비즈니스계에 종사하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경영학과로 왔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강의실과 연구실이 내 삶의 무대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며 조금씩 내 생각은 바뀌었다. 스무살 중반의 젊은이가 가장 열심히 찾아야 하는 세 가지는 ‘하고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 마지막으로 ‘이 둘의 교집합’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조금씩 이 세가지를 찾아야 하는 나에게 있어서 학문의 길은 첫 번째 조건은 충족했지만 두 번째 조건에서 탈락했고, 자연히 세 번째 조건에서는 고려조차 되지 못했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인 셈이다.

“하면 된다.” 라는 믿음은 아직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않은 게으름뱅이를 자극시키는 데는 좋은 말이다. 반면에 이미 최선을 다해서 과부하가 걸린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최선을 다 했지만 넘을 수 없는 벽에 좌절한 사람에게 이 말은, 실패의 원인을 끝내 자신의 게으름으로 돌리게 만들어 스스로를 죄인으로 몰아세울 뿐이다. 내 마음 속 재판관은 수 천 번도 넘게 나라는 인간에게 유죄선고를 내려왔다.

한편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차라리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에겐 후회의 여지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에게는 적어도 언젠가 다시 한 번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면 이루어내리라는 희망이라도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람에겐 후회도 미련도 없다. 스스로의 두뇌와 유전자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있을 뿐. 이제 운명을 탓하는 것도 면역이 되어 별 감흥이 없을 만큼 나는 이미 무디어졌다.

물론 학문의 길을 걷지 않는다 해서 삶 자체가 막막한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상아탑을 내 평생의 무대로 고려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믿어왔던, 그것도 내 삶을 통틀어 유일하게 나의 자존심을 지켜줬던 하나의 능력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된 젊은이의 마음을 누가 이해해줄까. 그나마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다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다는 판단력 정도인 것 같다. 마치 3인칭 관찰자 시점이나 전지적 시점과 같이 스스로를 성찰하며 산다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조차 사반세기나 걸렸던 것이다.

이처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새롭게 깨닫는 나의 모습이 꽤나 많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껏 내 자신을 너무도 완벽하게 속여왔던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가 변한 것일까?

나는 내 자신이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유형의 사람인 줄로 믿어왔다. 그래서 누군가 채찍질을 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주어진 괴로운 일들을 해나가는 원동력이 분명 누군가의 강요 때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동기는 경쟁자에 대한 승부욕이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막상 나는 결코 승리에 초연하거나 패배에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시인 서정주를 키운 8할이 바람이라면, 나에게 그 8할은 '이기고 싶은 욕망'이었다. 순진해보이는 인상과 온건한 행동 뒷면에는 남모르는 질투가 감춰져있었다. 물론 내가 승부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예컨데 게임, 스포츠 등- 실제로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 가치를 두는 일에 대해서는 내 마음 속에 언제나 상대평가 계산기가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결코 지혜로운 아테나도, 용맹한 헤라클레스도, 여유롭고 쿨한 디오니소스도 아니었다. 그저 질투에 불타는 헤라였을 뿐.

절대적인 기준에서 만족스런 성과를 거뒀다 해도 상대적으로 뒤쳐졌다면 나는 괴로웠다. 어쩌면 이것은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모두의 성과가 좋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내 위치가 올라갔을 때 내 기분은 어땠었나? 부끄럽게도, 비겁하게도 나는 기뻤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주위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나이지만, 성과의 측정에 있어서 나의 존재는 타인에 의해서만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세상을 바라볼 때도 나는 모든 것을 자본주의의 경쟁원리와 적자생존의 틀에 맞춰서 보는 사람이었다. 경쟁을 통해 선택받음으로써 살아남는 비즈니스의 세계, 그것을 공부하는 경영학에 매료되었다.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변화시키는 물건들도 옛날처럼 장영실이 세종의 명을 받아 만들어낸 발명품들이 아닌,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그리고 이윤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기업인의 머리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래서 내 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 밑줄과 주석까지 달아가며 몇 차례 읽은 책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눈 먼 시계공>인지도 모른다.

비슷한 측면에서 나는 겉보다 속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믿었다. 물론 남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그 사람의 본질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속된 말로 그 사람의 겉모습이 밥먹여주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을 내실을 다지는 일이다. 그러나 비슷한 수준으로 속이 꽉 찬 사람이 스스로를 어필하기 위해 겉을 치장하는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사실 나는 인성이든 지성이든 내실을 다지는 것이 능력이라면, 그것을 남들에게 전달하는 것 역시 별도의 평가항목을 지닌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이런 모습을 깨달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만큼 나의 믿음은 강하다.

사람들은 내실을 100% 채우지 않은 사람이 겉치장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쓸 때 그를 허세부리는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속이 50%인 사람이라도 스스로를 50%이상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자기 관리이다. 반대로 속이 100%인 사람이 겉치장에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아 50%으로 평가받는다면, 그는 자기 게으름 때문에 스스로에게 50%의 죄를 짓는 셈이다. 극단적으로 코카콜라의 설립자 존 팸버튼은 “나에게 25,000달러가 있다면 24,000달러를 광고에, 나머지 1,000달러를 콜라 생산에 쓰겠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사람에게 적용할 때 광고란 단순히 사람의 외모와 옷차림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형식과 의미, 디자인과 컨텐츠, 말투와 내용 등 겉과 속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서처럼, ‘바라보는 나’ 뿐만이 아닌 ‘보여지는 나’가 함께 있다는 것을 늘 잊지 않고 있다. 나를 포함해 열 사람이 한 방에 있다면, ‘바라보는 나’는 하나지만 ‘보여지는 나’는 아홉 명이다.

외부 세계에 민감한 자아를 가진 나답게 타인의 사소한 칭찬과 비난에도 크게 반응한다. HP의 前CEO 칼리 피오리나의 자서전 <힘든 선택들>에는 그녀가 로스쿨을 자퇴한 직후에 부동산 업체에서 말단 비서로 일하던 시절이 나온다. 당시 그녀가 최선을 다해 일한 원동력이 바로 “상사에게 사람을 제대로 뽑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라는 구절이 있는데, 대수롭지 않은 부분일 수 있지만 나로서는 너무도 공감하는 글귀였다.

분명 나는 남들에게 잘보이고 싶은 욕심이 많은 것 같다. 군대에서도, 까짓거 못한다고 하면 될 것을 잘한다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열심히 하다가 남들보다 1.5배는 더한 것 같다. 대학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팀 프로젝트에서 조용히 묻어갈 수 있지만 손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경제학에서는 개인별 보상 시스템 보다 1/n로 보상이 돌아가는 프로젝트에서 모두가 열심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누군가가 지켜볼 때 더 의욕에 불타오르는 것 같다.

새롭게 발견한, 어쩌면 바뀌어가는 지금의 내 모습 중 일부는 예전의 내가 손가락질하고 비웃었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젠 진심으로 지금의 내가 옳은 것만 같다. 인간의 자기주장은 99%가 자기합리화다.

고백하건데 정말로 나도 몰랐었다. 실제로 내가 이런 사람이란 것을.

자유를 향한 날개짓

(2008년 가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어릴 때부터 나의 최고 가치는 바로 자유였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자유를 사랑한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피곤한 세상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군대나 감옥을 우리가 싫어하는 그곳에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듯이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라는 조건이 따른다. 그렇다면 병病주고 약주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유를 헌납할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자유란 남의 구속을 받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다. 당연히 우리는 언제나 더 많은 자유를 갈망한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픈 것들 중에서 실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거의 없다.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만드는 일은 밤을 새워도 끝이 없겠지만 할 수 있는 항목들에 동그라미를 치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자유는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이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분모에, 욕망의 충족을 분자에 둔다. 그리고 분모가 무한대로 발산하기 때문에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분모를 싹뚝 자르기 위해 머리 깎고 깊은 산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 하나? 무언가를 깨달으신 분들은 무소유無所有 속에서 행복을 얻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범인凡人인 나는 티끌 같은 자유라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고있다.

물론 채울 수 없는 욕망에 노예가 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술이나 담배에 빠져 살며 알콜 중독자, 헤비 스모커가 되기는 싫다. 하지만 나의 경우처럼 주량이 너무 약해서 술을 못 마시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다. 또한 이놈의 담배를 끊기는 힘들지만, 그것을 필 줄 모르던 때로 돌아가기는 싫다.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다가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여유까지 빼앗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돈의 노예가 되기는 싫지만 그것이 없는 것 보다는 충분히 많은 것이 좋다.

우리가 원하는 많은 것들의 상당부분은 돈을 통해서 충족될 수 있다. 물론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도 빼놓을 수는 없다. 가족, 친구, 사랑을 비롯해서 시간, 생명, 존경, 소속감 등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듣던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은 결코 “성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와 같은 뜻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돈은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아주 큰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린시절부터 『탈무드』를 통해 돈의 중요성을 배운다.

사람을 해치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번민, 불화 ,그리고 빈 지갑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위험한 것은 빈 지갑이다.

한편 누군가가 말하기를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다.” 라고 했다. 분명 가난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반면에 가난에서 느껴야하는 불편은 주어진 자유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가난하지 않다면 가질 수 있었을 많은 것들을 가난한 사람들은 포기해야 한다. 가난이 주는 불편은 자칫하면 불행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이렇게 제한되는 자유가 안타깝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자유를 향해 뛰어야한다. 돈의 부족이 나의 희망과 이상에 한계선을 긋는다면 기꺼이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욕망의 무한하다는 이유로 그것의 충족을 지레 포기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미덕美德이 아니다. 무거운 바위를 짊어지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짓눌려 살기 보다는 영원히 바위를 떠미는 시지프스가 되고 싶다. 태양에 다다를 수 없지만 자유를 위해 용감히 날아오르다가 에게해에 빠지는 이카로스를 나는 동경한다. 인간이 많은 돈을 벌고자 노력하는 것은 마치 시지프스나 이카로스처럼 굴레를 벗어나 자유롭고픈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중 돈 싫어하는 자 이들에게 돌을 던지라.

모두가 돈을 원하지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손가락질 받는다.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는 환영받지만 “부자 되세요.”가 익숙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어느정도 부富를 쌓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할 때는 주위의 시선이 한층 더 싸늘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땀흘려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부자가 더 많은 부를 추구하는 것은 추하다는 뜻일까?

매슬로우Maslow 피라미드의 제일 아래층 벽돌을 채우는 것이 아름답다면, 오히려 이 험한 세상 안전하게 살기 위해, 높은 지위에 소속되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벽돌을 만드는 것은 더욱 고매한 일이 아닌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천박한 몸부림인가? 나는 배가 고파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도 공부를 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돈에 연결되는 순간 거대한 피라미드는 순식간에 뒤집히는 듯 하다.

신체의 자유를 위해 교통, 통신수단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헤겔을 비롯한 철학자들은 진선미眞善美라는 높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학문, 종교, 예술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기술, 학문, 종교, 예술조차도 빈 지갑을 가진 이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왜 잊어버리는 걸까. 나 역시도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편리하고 싶다. 더 많은 음악회를 가고 싶고 멋진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 그래서 경영학과에 왔고 돈을 버는 공부를 한다.

수전노는 돈을 모으기만 할 뿐 쓸 줄은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은 마치 영화표만 모으고 영화는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돈 자체는 숫자와 그림이 그려진 종이에 불과하다. 그에게 돈이란 자유를 위한 티켓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작은 종이조각들의 노예가 돼버린 수전노는 불쌍한 바보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는 충분히 비웃음을 살 만하다.

한편 어리석은 수전노 때문에 다른 이들에겐 소중한 자유의 조각들이 쓸모없이 창고에서 썩기도 한다. 바보처럼 주걱으로 얻어맏고 뺨에 붙은 밥풀을 떼먹는 짓은 한심한 일이다. 그렇다고 멀쩡한 새의 다리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부를 쌓는 행위 자체는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단,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의 행동은 비판받아야 한다. 돈이 자유와 같다면, 부의 축적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자유의 범위를 벗어난 방종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자유와 욕망을 내던진 성직자는 물론 아주 존경할만하다. 그러나 돈을 추구하는 이들을 백안시白眼視하는 그 모두가 진정으로 무소유의 덕을 깨달은 성인聖人들일까? 물론 자유를 추구하느라 애쓰든 말든 그것은 남이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혹시 그들은 유유자적悠悠自適이니 안빈낙도安貧樂道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자신의 게으름을 포장하는 것은 아닐지. 만약 거짓된 무욕無慾의 가면을 쓰고서 자유를 위해 땀흘리는 이들을 손가락질한다면 그는 스스로를 속이는 비겁한 사람이다.

어느 집단에서는 현세의 자유를 매달 십분의 일씩 아껴두었다가 천국에서 엄청난 이자와 함께 돌려받는 연금을 운영한다. 파스칼은 비용cost과 위험risk의 원리를 이용해 이렇게 말한다.

신神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교회에 다닌다. 왜냐하면 교회에 가는 것은 큰 수고를 요구하지 않는데 만약 신이 있다면 교회를 다녔으니 안심이고, 설령 신이 없다 해도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 반대로 교회를 안 다녔는데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진정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주어진 이 삶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오지 않으리라 믿는다.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자유롭게 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언제나 노력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많은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상 많은 몽상가들이 꿈꿔온 유토피아, 코케인, 아르카디아는 이제껏 없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각자의 행복은 스스로가 추구하고 개척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을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이기주의자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소중한 약속

(2008년 여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영어 강사를 그만두기 며칠 전, 학원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지난 7월 말경에 다음 학기 대학 등록을 하여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혔다. 그래서 학원에서는 내가 그만두기 며칠 전 나를 대신할 새 강사를 뽑았다. 약 3, 4일에 걸쳐서 수업 참관 및 인수인계를 마치고 이제 나는 몸만 떠나면 될 판이었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고 나서 그 강사는 우리 몰래 지원해두었던 다른 곳에 뽑혔고 그 쪽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며칠간 내가 바쁜 시간 쪼개서 신규 강사 안내를 해준 건 그야말로 헛수고가 된 것이다.

물론 입사 지원서나 이력서를 여러 곳에 동시에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가 이곳에서 일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힌 이상은 자기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는 단순히 일하고 싶다고 일 하고, 하기 싫다고 그만두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고용인은 계약을 맺은 후 그에 따라 적절하게 인력 관리를 하게 마련이다. 만약 피고용자가 계약을 어기고 갑작스레 다른 곳으로 빠져버린다면 당장 생기는 공백은 쉽게 메울 수 없다.

나의 대체 강사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사건이 터졌다. 학원에는 케나다 출신의 외국인 강사가 한 명 있다. 이 학원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강사 수가 많지 않았고 더구나 임금 부담이 큰 외국인은 단 한 명 밖에 채용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당연히 모든 학급에서 외국인 회화 수업은 그 강사가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 외국인은 월말에 일괄적으로 급여를 받는 우리와는 달리, 처음 이 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날에 매달 월급을 받는다. 지지난 금요일은 바로 그 강사의 월급날이었다.

그 날, 우리는 그녀가 퇴근한 후 책상 위에 있던 모든 개인 물품들을 말끔히 정리해서 가져간 것을 발견했다. 최근 유난히 학원에 불만이 많았던 그녀. 우리는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일단 전화 통화를 수십차례 시도했지만 끝끝내 그녀는 받지 않았다. 결국 원장님과 나는 주소 하나 달랑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 주소는 큰 아파트도 아닌, 작은 빌라여서 주소만 보고 찾기란 쉽지 않았다. 차를 타고 약 한 시간 반 정도를 헤맨 끝에 우리는 그녀의 집을 찾아냈다.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문으로 다가가기 전부터 그 방에서는 외국인들이 즐겁게 떠들어대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스레 벨을 눌렀고 카메라를 통해 나를 확인한 그녀는 문을 열고 나를 맞이했다. 무슨 일로 찾아왔냐는 듯,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뜬 그녀는 웬일로 찾아왔는지 물었다.

나는 그녀가 왜 책상 위에 짐들을 모두 정리했는지, 혹시 갑작스레 도망친 것은 아닌지 다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냐며 웃어댔다. "Don't worry Fred, nothing's wrong." 나는 그녀에게 확실히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는지 재차 물었지만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내가 돌아서서 원장님 차에 탈 땐 "See you Monday" 라며 손을 흔들었다.

월요일에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당장 30분 뒤 부터 연달아 그녀의 수업이 있었지만 우리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원장님은 내가 다시 그녀의 집을 찾아가 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택시를 잡아 탔다. 비록 그녀의 집을 한 번 찾아가본 적은 있지만 당시는 해가 진 야밤에 가장 빠른 길이 아닌, 헤매고 헤맨 끝에 찾았기 때문에 낮에 본 길은 또 낯설 뿐.  눈에 익은 도로가 나올 때 마다 나는 기사에게 이쪽 저쪽 방향을 지시해서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다시금 눈에 익은 빌라를 발견했다. 가까운 길을 꽤나 돌아간 덕에 택시비는 반절 정도 더 비싸게 물었다. 나는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라가서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관리실에 찾아갔지만 역시 잠겨있었다. 다행이 관리자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그 곳에 전화를 걸었다. 관리자의 대답에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그녀는 주말 동안 해외로 출국해버렸던 것이다.

그녀의 계약은 오는 10월까지. 만약 그녀가 출국하기 전에 계약을 어겼다면 우리는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연락해서 그녀에게 출국 금지조치를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는 떠났고 우리는 그 책임을 물을 사람을 보내고 말았다. 그 동안 학생들은 의아했을 것이며 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학부모들의 항의도 적지않았을 것이다.

피고용인 내지는 종업원들은 자기가 일하기 싫다면 얼마든지 팽개치고 돌아설 수 있다. 일을 그만둔다 하더라도 벌 돈을 못 벌 뿐,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인 역시도 줄 돈을 안 주기 때문에 본전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갑작스레 떠난 종업원의 자리를 채워줄 적임자를 물색하는 데 드는 비용, 그를 교육시키는 데 드는 시간적 비용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고용인은 그 자리에서 사업을 그만둘 수도 없다. 사업 중단에서 오는 막대한 손해는 고용인을 본전이라는 바닥에 그치지 않고 끝없이 추락시킬 수도 있는 법이다.

이상적인 경우라면 고용인이 제시한 임금 내지 근무조건과 피고용인이 요구하는 그것이 수요 공급 원리에 따라 균형을 이루게 된다. 즉, 고용인에게 칼자루가 쥐여져 있다면 급여는 내려갈 것이고 피고용인이 주도권을 가진다면 급여는 올라간다. 그러나 현실에서 문제는 도무지 구직 희망자들의 눈높이가 균형가격에 맞게 내려가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학원의 경우만 보더라도 '일할 능력'으로 따진다면 그 정도의 스팩을 갖춘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다만 그 사람들이 학원이 제시하는 수준에 맞춰지지 않으니 문제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라고 떠들어대니 너도나도 웬만한 조건에도 "날 써줍슈" 외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기 분수와 주제를 모르고 전부 눈은 머리 꼭대기에 달렸으니 실업자 통계는 드디어 한 자리 수를 더 넘어서버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서로가 다른 시각을 가지다 보니 양자가 모두 힘들어지는 것이다.

계약서란 흔히들 피고용인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앞의 두 경우와 같이 계약을 어기고서 제멋대로 회사를 떠날 때 오히려 막대한 손해를 입는 쪽은 피고용인이 아닌 고용인이다. 계약서는 고용인으로 하여금 안정적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인력, 급여, 채용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보호막과 같다. 계약은 법과 제도를 넘어서, 도의적으로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겠다는 소중한 약속이다.

힘들게 학원 생활을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고 그렇게도 기다려왔던 복학이 눈앞에 다가왔다.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던 오늘. 하지만 영 떠나는 마음이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지금도 학원은 잘 돌아가고 있으려나? 오래 전 부터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미리 이맘때쯤 그만두리란 사실을 통보하긴 했지만 왠지 미안해지는 요즘이다.

다시 의자에 앉으며

(2008년 여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내무실을 뒹굴며 그렇게도 손꼽아 기다리던 4월 9일 제대일. 그러나 제대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얼떨결에 영어학원 선생님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렇게 여러 명의 학생을 앞에 둔 채 칠판에 글씨를 써가며 수업을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물론 예전에 개인 과외를 몇 차례 해본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과외 시장에서 영어는 과목의 특성상 해외파나 여女선생에 대한 수요가 워낙 크기 때문에 나같은 학생이 가르치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그래서 내가 가르쳐본 과목도 수학과 국어가 전부이다. 사실상 영어학원에서는 완전 초보나 다름없는 나였기에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만이 뿐이던 지난 4월. 그러나 별 사고 없이 무사히 학생들을 가르쳤고 다음 화요일을 끝으로 나의 교사 생활도 막을 내리게 된다.

흔히들 자기가 잘 배우는 능력과 남을 잘 가르치는 능력은 별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서울대, 고대, 연대를 나왔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그 강사 역시 잘 못가르치는 무능한 선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안다는 것이 무언가를 잘 가르치기 위한 충분조건은 될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무언가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언변言辯이 좋고 퍼포먼스performance가 화려하다 해도 무능을 감출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는 좋은 선생이 될 수 없다.

이탈리아 출생의 프랑스 수학자 조셉 루이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는 이렇게 말했다. "길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을 쉽게 이해시킬 수 없다면, 자신도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비록 4개월의 짧은 교사 생활이었지만 나는 그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종종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모르는 내용이 나왔을 때,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모면했는지 돌이켜보면 학생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나 한사람이 조금만 더 수업을 꼼꼼히 준비했다면 교실에 있던 예닐곱의 학생들은 금쪽같은 시간을 훨씬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을텐데.' 나름 다른 선생님들 보다 더 열심히 가르쳤다고 자부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편으론 나 역시도 이제 더이상 젊은 형,오빠가 아니라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나의 학창시절은 눈에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그래서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학생들의 마음을 100% 이해하고 그들과 교감할 줄 아는 멋진 선생님이 되리라 자신했다. 그들의 사고방식, 그들의 은어, 그들의 선호가 나와 큰 차이가 없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학생시절 이해할 수 없었던 고리타분한 선생님과 점점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돌이켜보면 내가 예전에 듣기 싫어했던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는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결국 지나고 보면 공부가 가장 쉬운 것이니라.", "고등학교 영어에 비하면 이것은 새발의 피 수준이니 위기감을 갖고 정신차려야 한다." 나 역시도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렸던 말들을 그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리라는 허황된 기대를 가지고 열을 올렸다.

한편으론 시간이 없어서도,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공부를 전혀 안 해와서 시험을 망치는 학생을 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었다. 왜 그것을 이해 못했나? 이렇게 지금 가슴을 쾅쾅 치는 나는 과연 사춘기 시절에 주어진 시간과 능력을 오직 공부에만 투자했었나?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다. 군입대 전, 대학교 1학년 때 나의 처참한 학점은  어떻게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사람은 이렇게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 따라 다른 것을 보게 마련인가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것을 경험하라고 한다. 여기까지야 상투적인 교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리가 바뀜으로써 예전에 보았던 것을 다시 볼 수 없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교실에 앉은 학생은 강단의 선생님이 보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학생이 강단에 올라가 새로운 것을 보게 될 땐 학생만이 볼 수 있던 것을 머지 않아 잊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해서 그 양서류를 향해 함부로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소위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우리 포유류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강사는 교실에서의 선생이고 교사는 학교에서의 선생이지만, 스승은 인생의 선생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짧게나마 맡았던 자리는 맨 첫번째에 나온 강사다. 그 뒤에 것들을 맡기엔 아직 경험도, 실력도, 마인드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조금씩 선생과 교사를 흉내내고 싶어졌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처음 강사를 맡은 직후 나는 초보 티 안 내기 위해, 말 뻔지르르하게 하기 위해, 많이 아는 척, 유능한 척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를 했다. 이렇게 시작은 불손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픈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영어를 벗어나 '공부'라는 것을 잘 하게 만들고 싶었다. 마침내 나는 공부를 벗어나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마치 내가 키워온 아이들인 것처럼...... 비록 자격도, 능력도 부족하지만 나의 마음만은 어느 '교사'나 '스승'못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처음 강단에 서면서 나는 학생 때의 마음을 잊어버린 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많은 후회와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강단을 내려온다. 이제 조만간 다시 그립던 의자에 앉는 지금 나는 굳게 다짐한다. 비록 딱 한 번 선생이 되어서는 학생의 마음을 잊었지만 다시 학생이 되어서는 선생님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겠다고. 모두가 편히 앉은 교실에서 혼자 일어서 있는, 모두가 침묵하는 교실에서 혼자 목청이 터져라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교수님)이 얼마나 고생스럽고 힘든 자리인지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실로 3년만에 학생이 되어 의자에 앉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Queerer Than We Can Suppose)

(2008년 가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며칠 전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교수가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라는 컨퍼런스에서 2005년에 강연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제목은 "Queerer Than We Can Suppose" 굳이 번역을 하자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보다 더욱 기묘한" 정도가 된다. 이 말은 도킨스가 처음 만든 것은 아니고 할데인J.B.S. Haldane이라는 사람이 했던 말이라고 한다.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연을 꽤나 여러개 찾아가며 보았지만 이렇게 짧으면서도 감동적인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이 강연 내용은 거의 그대로 최근에 출간된 《만들어진 신》 후반부에 고스란히 실려있었다.

나는 짧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제목에 주목했다. 왜 "Queerer than we suppose(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욱 기묘한)" 가 아니라 "Queerer than we CAN suppose"일까? '추측한다', '가정한다(suppose)'는 것은 우리 뇌의 활동이다. 뇌는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개연성을 갖는 일, 심지어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까지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았던 한 송의 꽃도, 일년 후의 내 모습을 미리 그려보는 일도, 하늘을 나는 양탄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뇌가 있기에 머리 속에나마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상상력이 실제 세계보다 더 큰 범위를 생각할 수 있다고 쉽게 믿어버린다. 상상력을 펼치는 주체인 인간의 뇌는 아직 그 신비가 모두 밝혀지지도 않은 곳이다. 어쩌면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뇌의 전지전능함과 완벽함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구의 영화는 현실보다 더욱 아름답고 박진감있으며 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기묘한 세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모습보다 더욱 웅장하고 기상천외하리라 자신한다. 과연 우리의 상상력은 이 우주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만큼 무한한 범위를 다룰 수 있을까?

도킨스는 인간의 뇌란 단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세상'을 보여주는 데 최적화됐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세계는 단 하나지만 그 속에 살고있는 수많은 동물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도만을 인식하도록 뇌를 진화시켜왔다. 결국 뇌가 인식하는 세계의 모습은 진짜 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에게 맞게 디자인한 시뮬레이션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뤄져있다. 원자와 원자핵의 크기는 스포츠 경기장 내의 파리 한마리 정도의 비율과 같다. 우리가 빈틈없이 딱딱하다고 인식하는 바위조차도 실제로는 속이 텅텅 빈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위를 비롯한 고체들을 "딱딱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우리 몸이 원자 사이를 돌아다니도록 설계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란 종이 마치 감마 레이(γ-ray)처럼 모든 원자 사이를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바위를 '딱딱하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는 지구가 자전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인간에게 맞춰진 시뮬레이션 때문이다. 만약 지구가 도는 것을 평생 느끼며 살아야 한다면 진실을 이해하는 데 지나친 육체적, 정신적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는 동시에 바닥에 닿지만 공기의 저항에 익숙한 채로 사는 우리에게는 그 사실이 거짓처럼 들린다. 우리는 모든 빛을 볼 수 있는 것 처럼 느끼지만 실제 전체 빛에서 가시광선이 차지하는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다. 만약 인간이 일상적으로 빛에 속도에 가깝게 움직인다면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 시뮬레이션은 다른 동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우리가 빛의 반사를 통해서 눈으로 감지하는 이 세계의 모습은 그것을 소리로 감지하는 박쥐, 코로 감지하는 개의 세계와 아주 다를 것이다. 이들에게 청각이나 후각은 인간이 어떠한 이유로 시각을 잃었을 때 그것을 대체하는 감각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들은 우리가 보는 수준으로 듣거나 냄새를 맡는다. 아마도 그들의 청각 후각은 어떤 대상의 모양 뿐만 아니라 촉감, 색감까지도 짐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이 강연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다. 인간은 무생물 조차도 마치 감정을 가진 인간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도킨스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를 마구 두들기며 화풀이를 하는 어느 코미디언을 예로 들었지만 일상적인 삶에서도 우리는 종종 사물을 의인화시키곤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오랜 세월동안 단체생활을 해온 데 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짐작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지구상엔 수많은 종들의 생물이 공존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인간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종차별주의적 주장은 그의 이론 앞에 설 자리를 잃는다. 우리도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알고 살아가는 평범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식하고 상상하는 세계는 진정한 세계의, 그야말로 일부에 지나지 않는 작은 단편일 뿐이다. 우리가 무한하다고 느끼는 상상력의 한계 조차도 실제 그 이상의 기묘한queer 세계에서는 백사장의 모래 한 알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ps.
참고로 이와 관련된 더 많은 내용을 알고싶다면 그의 저서 《눈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을 추천한다. 물론 다른 책이 이 책보다 못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이 강연에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라면 이 책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검變瞼과 카멜레온

(2008년 가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장영희의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에는 「장영희가 둘?」이라는 재미난 글이 있다. 이 글에서는 학생들이 '작가로서 느끼는 장영희'와 '교수로서 느끼는 장영희' 의 차이 때문에 의아해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필을 통해서 본 장영희는 '온화하고 낭만적이고 감상적'인데 반해 교실에서는 '엄격하고, 철저하고, 점수도 짜게 주는' 교수님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쓴 채 두 개의 자아 때문에 괴로워하는 어느 작가의 글을 소개했다.

  '나한테 속지 마세요,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이 나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나는 몇 천개의 가면을 쓰고 그것을 벗기를 두려워한답니다. (중략) 나의 겉모습은 자신만만하고 무서울 게 없지만, 그 뒤에 진짜 내가 있습니다. 방황하고, 놀라고, 그리고 외로운. 그러나 나는 이것을 숨깁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나는 나의 단점이 드러날까 겁이납니다. (후략)'

며칠 전 나도 어느 학생으로 부터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모습이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든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는 누구를 대하느냐에 따라 언행言行을 달리하게 마련이다. 부모님 앞에서 하는 이야기와 친구들 앞에서 하는 이야기가 똑같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의 단골 손님 중에는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식당에 자주 오시다 보니 부모님과도 친분이 생겼고 자연히 나도 다른 손님과는 다르게 가게에 오실 때 마다 꼬박꼬박 인사를 드리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을 우리 동네 술집에서 우연히 뵌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를 만나느라 한창 취해서 신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저 멀리 테이블에 나를 마주보고 앉아계시는 분이 그 선생님인지 몰랐었다. 그런데 웬걸 조금 낯이 익다 싶어서 자세히 보니 그 분인 것이었다.

나는 항상 퇴근 후 10시 쯤에 저녁을 먹으러 우리 가게로 간다. 그래서 지금껏 그 선생님을 뵐 때는 언제나 말쑥한 옷차림에 넥타이까지 메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술집에서는 달랐다. 야구 유니폼을 입고 귀에는 반짝이는 귀고리를 달았다. 얼굴은 취기가 올라 빨개진 상태에 담배를 뻐끔거렸으며 조금은 떠들썩하게 친구들과 점잖치 못한 말을 지껄였다. 그 상황에서 그 분께 인사를 드렸으니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내 속에는 친구들 앞에서의 자아와 어른들 앞에서의 자아가 공존하고 있다. 상황이 변할 때 마다 내 모습 역시도 재빨리 처럼 변해왔는데 그 두 개의 상황이 같은 시공간을 차지할 때는 그 접점에 선 내가 큰 혼란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우습게도 당시에 나는 문득 예전에 읽은 어느 과학책을 떠올렸다.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이 쓴 『엘러건트 유니버스 Elegant Universe』라는 책인데 엉뚱하게도 당시의 내 상황이 마치 책에서 읽은 평행우주 이론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초끈 이론Super String Theory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평행 우주론Parallel World Theory이라는 가설을 주장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차원은 4차원(공간의 3차원 + 시간의 1차원)이다. 하지만 우주는 11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고차원에서는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깃줄 속에서 1차원 전후前後 운동만 하는 전자electron는 바로 옆 전깃줄에 또 다른 비슷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전자는 좌/우라는 새로운 차원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면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2차원 활동만 하는 소금쟁이는 마주오는 동료를 피하는 방법이 좌/우 운동 뿐만 아니라 공중으로 점프하거나 잠시 수면 속으로 잠수하는 방법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모든 생물의 뇌는 자신이 사용할 만큼의 차원만을 인식하게끔 진화해왔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차원의 또 다른 우주는 심지어 지금 자신의 바로 옆 1mm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그 차원이 일종의 얇은 막membrane으로 가려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끈 이론 학자들은 우리가 흔히 우주의 창조라고 말하는 빅 뱅Big Bang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우주가 어떤 이유로 충돌하여 마치 두 개의 비누 거품이 합쳐지듯 순간적으로 얇은 막이 열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시작은 전무후무한 사건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인 셈이다.

한 사람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른 모습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세계들 끼리 충돌할 경우에 겪는 난처함은 빅 뱅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과장이지만 가능하면 피하고 싶게 마련이다. 어른들의 세계와 또래들의 세계는 물론, 동문회에서의 나, 대학교에서의 나,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써의 나는 각자의 '우주 막' 속에서 평화롭게 분리되기를 바란다. 나는 서울의 대학 친구와 대구의 고향 친구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싫다. 대학교 1, 2학년 시절 소개팅을 할 때도 눈치없이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는 주선자를 원망했다. 물론 지금도 친구와 함께 놀고있는 내 있는 모습을 학원 제자들이 본다면 기겁을 할 것이다. 특히 그 학생이 학부모와 함께 있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마치 자전거의 바퀴살처럼 여러 세계를 향해 뻗어가는 자아들도 그 중심엔 언제나 내가 있다. 나는 때때로 자신의 성격을 간단하게 묘사하라는 질문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이쪽 세계의 나와 저쪽 세계의 내가 다르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세계를 아우르는, 바퀴살의 중심에 선 진정한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를 잘 아는 주위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언제나 대답은 내가 그 세계에 보여준 모습을 반사해주는 데 그치고 만다. 아니면 그 어떤 세계와도 접촉하지 않은 나, 혼자 있을 때의 나를 떠올려 보면 해답이 나올까? 하지만 혼자서 명랑한 사람이 어디있으며 반대로 혼자서 우울하고 비관적인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조울증에 지나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는 우리가 물체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를 주장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어떤 물체에 도달한 빛의 광자photon가 반사되어 우리 눈까지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스케일에서 전자는 작은 에너지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날쌘돌이다. 빛도 일종의 에너지이다. 전자에 빛을 쏘는 순간 전자는 빛이 품고 있는 광자의 수에 비례한 만큼의 에너지를 받아 어느새 저 멀리 튕겨나가고 만다. 즉, 우리 눈에 다시 들어온 전자의 위치는 이미 과거에 전자가 '존재했던' 부분을 가리키는 데 그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히 전자의 현재 위치를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과 생각을 하는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상황 역시도 다른 누군가와의 기뻤던 기억이나 갈등과 관련된, 여러 우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내 성격을 알아낼 수 없다면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여 내가 했음직한 행동을 떠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한 심리 테스트 종이를 눈앞에 두고서도 보이지 않는 나의 의식은 결코 정직하지 않다. 나의 자의식은 주어진 상황에 적절한 가면을 찾아서 재빨리 나의 얼굴을 덮는다. 차라리 다른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기 위해서라면 이중맹검법double blind test 같은 방식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약placebo을 주는 나의 손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뇌는 영원히 분리될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의 자아란 순수한 얼굴 위에서 재빨리 가면만을 바꿔쓰는 중국의 변검變瞼 놀이 보다는 자신의 피부색 자체가 변하는 카멜레온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가령 "원래 내 성격은 이러한데 다른 사람을 만날 때는 저러하다. 그러므로 나의 진짜 성격은 이러한 쪽에 가깝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세계와도 분리된 자신만의 성격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오히려 "내 성격은 이 상황에서는 이러하고, 저 상황에선 저러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저러한 모든 것을 통틀어서 내 성격이다." 라고 하는 쪽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에드워드 노튼도, 브레드 피트도 모두 주인공의 자아이다. 로버트 스티븐슨Robert Stevenson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아멜리 노통브Amelie Notomb의 『적의 화장법』에서도 인간이 실제로는 다중적 인격의 복합체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사춘기가 되면 오랜 시간 부족을 떠나 식음食飮을 전폐한 채 들판이나 산에서 홀로 명상을 하며 자아를 찾는 비전 퀘스트Vision Quest라는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그 소년이 비전 퀘스트를 하는 동안 부족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자아 탐구가 성공하길 빌어준다. 석가모니가 고행을 위해 출가를 할 때 신들은 석가모니의 애마愛馬인 칸타카의 발굽을 손으로 받쳐주었다고 한다. 말발굽 소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 그를 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때로는 나도 화려한 가면을 걷어내어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같은 범인凡人에겐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과연 그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요즘 들어서는 점점 '아니오'로 기울어진다.

교실청소를 빠진 두 아이

(2008년 가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요즘은 중학교 청소도 용역 업체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우리 시절엔 어림도 없었다. 매주 분단별로 돌아가며 교실과 복도를 청소하는 일은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담임 선생님에 따라서는 그날 지각한 학생, 말썽 부린 학생을 청소 담당으로 정하는 분도 계셨다. 집도 가까웠고 별다른 사고도 안 치던 나로서는 매년 새학년을 눈앞에 둘 때 마다 이런 담임 선생님이 걸리기를 기대하곤 했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 돌아보면 별 것 아닌 일이지만 당시로선 교실 청소란 은근히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분단이 청소 당번이었던 어느 날, 같은 분단의 한 학생이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 때 청소를 하던 다른 어느 학생이 그를 불러서 왜 도망가냐며 따져 물었다. 그 때 녀석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나 부진아 수업 가야 된다!"

당시 우리 학교는 학업 성취도가 뒤쳐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특별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유야 정당하다만 어떻게 그 학생은 저렇게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을까. 청소를 하던 우리 친구들은 그저 웃음 밖에 안 나온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행실과 당시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보건데 그는 그다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기는 아무렇지 않았고 우리 친구들에겐 작은 웃음을 선사했으니 결과적으로 재미난 에피소드로 웃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이유'로 몇 차례 청소를 빠져야 했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실직失職으로 가정의 수입원이 끊기고 나서 얼마 후, 나는 3학년을 맞게 되었다. IMF 한파寒波로 우리 학교에도 갑작스레 많은 학생들이 어려운 가정 환경에 처했다. 정부에서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한다고 나온 것이 '실직자 자녀 특별 무료 수업' 비스므레한 이름의 방과후 수업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수업 명칭을 저렇게 정하지는 않았다. 명목상으로는 방과후 보충 수업을 희망자에 한해 실시하되, 실직자 자녀는 무료로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만약 자발적으로 저 수업을 듣겠다고 신청한 '일반 학생(비실직자 자녀)'이 많았다면 나같은 실직자 자녀는 자연스레 끼어서 공부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그 정책을 제안한 높은 분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고등학생들도 대부분은 수업 시간 내내 하교 종 치는 시간만을 기다리는데, 하물며 아직 철도 안든 중학생들은 오죽할까? 어느 정도 공부의 열의가 있는 학생들도 학원을 다니면 다녔지, 아침부터 오후까지 지겹게 얼굴을 보던 학교 선생님한테 또 비슷한 수업을 듣기는 싫었을 것이다. 결국 자발적 신청자는 전교 학생 2백여명을 통틀어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었다.

아마도 학교측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특별 수업을 백지화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교육청의 지시였던 만큼 학교에서는 구색맞추기로 실직자 자녀들이 사실상 반半강제적으로 이 수업을 듣게 했다. 결국 나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은 방과 후 학교에 남아 한 시간 가량 보충 수업을 듣고 가야 했다.

당연히 수업은 정상적인 분위기로 진행될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 역시도 눈가리고 아웅식의 이 수업을 맡기 꺼려했고 성의있게 가르치지도 않았다. 학생들의 불만은 그 이상이었다. 학구열에 불타서 자발적으로 신청을 한 것도 아닌데다 곤란한 가정 환경이 전 학교에 알려져야 하는 부끄러움까지 더해졌으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분위기가 산만하거나 학생들이 떠들어서 수업이 차질은 빚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모두의 눈은 흐리멍텅했고 마음은 무기력했으며 가슴 속엔 수치심과 좌절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우리 학교 방과후 수업의 양대 산맥이던 '부진아不振兒 수업'과 '실직자 자녀 특별수업'. 가르치는 내용도, 수업이 마련된 취지도 달랐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와닿는 차이점은 엉뚱한 데 있었다. 부진아 수업은 방과 후 수업을 듣지 않고 도망간 학생을 다음 날 아침에 불러내어 그야말로 흠씬 엉덩이를 두들겨 팼다. 반면에 내가 듣던 특별 수업은 그렇지 않았다. 애초부터 탁상행정의 결과 말도 안되게 구성된 학급이었다. 선생님들도 우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 마당에 차마 도망간 아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공부는 자기 하기 나름이다.' 라고 스스로 되뇌이며 나 혼자서라도 열심히 수업을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역시 학생은 학급의 분위기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나 보다. 나중에는 나도 뻔한 내용의 수업에 질렸고 무기력한 분위기에 동화돼 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수업이란 말인가?

자기 스스로 공부를 안 해서 '부진아'가 되어 청소를 빠져야 했던 그 학생. 그는 스스로 무덤덤했고 친구들은 그를 마음껏 비웃으며 놀릴 수 있었다. 반면에 열심히 공부했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실직자 자녀'가 되어서 청소를 빠지고 보충수업을 들어야 했던 나. 나는 무덤덤하지 못했고 친구들 역시도 웃을 수 없었다. 도대체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논리적으로야 정답은 뻔하다. 그런데도 그는 "나 부진아 수업 가야된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청소를 빠졌지만 차마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절대 말처럼 쉽지 않다. '도움'이란 것 또한 모든 소통疏通이 그러하듯 수신자와 송신자,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채널이 모두 원활하게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지껏 누군가의 순수한 호의가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자존심 내지는 자격지심 때문에 엉뚱하게 오해받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또한 도움의 손길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횡령橫領, 부패 때문에 쌍방이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 나의 경우처럼 -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서투른 도움의 손길 때문에 도움을 받는 사람은 이중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어느 노승老僧이 말하기를, 칼에는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과 사람을 죽이는 살인도殺人刀가 있다고 한다. 곤란한 환경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든 칼은  이 사회의 병든 부분을 치료하는 메스가 될 수도, 병든 자들의 심장을 찔러 거듭 상처를 입히는 망나니의 칼이 될 수도 있다. 도움의 칼을 손에 쥔 사람들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펩시콜라 뚜껑 이야기

(2008년 여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우리 집 화장실 세면대에서는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틀면 따뜻한 물이, 오른쪽으로 틀면 차가운 물이 나온다. 물론 수도꼭지 가운데에는 왼쪽 반은 빨갛게, 오른쪽 반은 파랗게 칠해져있던 동그란 플라스틱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 전 주인이 수도꼭지를 험하게 써서인지 그 동그란 스티커가 떨어져버렸다. 그래서 이사 온 초기에는 어느 쪽으로 틀어야 따뜻한 물이 나오는지 헷갈리는 때가 많았다. 그 바람에 꼭지를 오른쪽으로 틀어놓고서는 한참 동안 따뜻한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뒤늦게 그 쪽이 아님을 알아차려 아까운 물을 낭비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수를 하려고 세면대 물을 틀었다. 그런데 꼭지 왼쪽에 있는 손잡이에 음료수 페트병 뚜껑이 씌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손잡이는 세면대에 물을 채울 때 바닥 부분에 있는 배수구를 열고 막는 데 쓰는 손잡이었다. 나는 그저 그 손잡이를 밀고 당길 때 잡는 부분을 크게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뚜껑을 씌우셨다고 생각했다. 마침 지난 번에 펩시 콜라 1.5리터짜리를 다 마신 적이 있었다. 기왕 버릴 거 이렇게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쓰려는 아이디어가 참으로 기발하다고 생각하며 여느 날처럼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그런데 며칠 후 아버지가 나에게 그 뚜껑을 봤냐고 물으셨다.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사실 그 펩시 뚜껑은 아버지가 수도꼭지의 따뜻한 물, 찬 물이 나오는 방향을 표시하기 위해 씌워놓은 것이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적잖이 놀랐다. 만약 내가 펩시의 빨간, 파란 로고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아버지의 의도를 한눈에 알아챘을 것이다. 사실 펩시 로고는 예전에 수도꼭지에 붙어있었던 동그란 플라스틱 스티커와 거의 다른 점이 없다. 파란 색과 빨간 색을 가르는 경계부분이 물결 모양이냐 직선이냐만 제외하면 그 둘은 사실상 똑같은 모양이기 때문이다.

빨간 색이 따뜻함, 파란색이 차가움을 뜻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라면 특별한 교육 없이도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펩시라는 지식이 빨강과 파랑의 기초적인 늬앙스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도 장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배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끊임없이 또 다른 색깔의 색안경을 겹쳐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 조직 안에도 다양한 출신, 성별이 공존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를 나는 수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 집 화장실의 펩시 뚜껑은 그저 피상적으로 인정했던 그 주장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마케팅의 힘은 무섭다. 코카콜라가 매년 말 어린이들을 설레게 하는 산타클로스의 복장을 빨갛게 만든 것, 제록스가 전 세계의 다양한 기업에서 만든 복사기들을 자기 이름으로 불리게 만든 것 정도는 마케팅 성공신화로 치부해도 좋다. 하지만 나처럼 펩시 때문에 빨강 파랑의 기초적 정보 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은 그저 웃고 넘어갈 일일까? 혹여나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태극기를 보고 펩시를 먼저 떠올린다면?

무언가를 판단할 때 모든 선입견을 벗어던지고 객관적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은 아주 쉽고 진부하게 들린다. 하지만 한갖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틀지를 결정하는 단순한 문제에도 선입견은 내 머리 속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었다.

왜 모두가 영어를 잘 해야 할까

(2008년 여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초-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알바를 시작한지도 이제 한 달이 다 돼간다. 이 귀여운 학생들은 수업시간때 나름대로 열심히 문장을 따라하고, 서툴게나마 나의 질문에 영어로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분명 이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어 있을 미래에는, 영어 실력에서 만큼은 나를 훌쩍 뛰어넘으리라 확신할 수 있다. 물론 청출어람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초등학교 시절 영어를 전혀 접하지 못하였고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처음 ABC를 배우던 세대다. 반면에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적어도 출발점에 있어서는 내가 가르치는 이 어린이들이 훨씬 앞서있는 복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역시 영어를 처음 배운 것은 사교육의 힘을 빈 탓이다. 나는 정규 교육 과정보다 1년 남짓 먼저,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알파벳을 배웠다. 하지만 실상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선행학습을 했음을 감안할 때 나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평균 출발점에서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문장도 하나 만들지 못하던 중학생 시절, 이미 우리들은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어버렸다. "너희들은 영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도 '모국어 수준'과 현재 '내 영어 수준' 사이의 간극을 떠올린다면 아직도 이 말은 아찔하게 들린다. 그런데도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왜 이리 한가한 걸까? 일단 나의 나태함과 무신경함에 채찍을 가하는 것이 먼저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다. 조금은 근거 있는 변명을...... 정말 우리는 모두가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할 필요가 있을까?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한국의 영어 교육'을 어느 때 보다도 많이 생각하는 요즈음, 오히려 대답은 '아닌 것 같은데?' 쪽으로 자꾸만 나아간다.

  얼마 전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영어 교육에 관련하여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여기저기서 많은 비판을 받은 그 정책은 대폭 수정되어 조금은 용두사미가 된 듯도 하지만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영어 교육이 강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모든 국민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영어 교육에 투입되는 사교육비가 천문학적 액수라는 통계자료는 영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국가가 '공급'을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충분히 일리있게 들린다. 과연 그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것일까?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영어에 대한 초과수요는 '절대적인 필요'  보다는 '상대적인 우위'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보자. 첫 번째는 마치 지금처럼  모든 국민의 영어 수준이 바닥을 기고 있으며 몇몇 사람들만 중간 내지 상위권에 서 있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마치 대통령이 꿈꾸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위 수준에 도달해있으며 아주 뛰어난 몇 사람은 거의 원어민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우수한 경우이다. 새로운 정책이 겨냥하는 목표로 접근한다면 대한민국 영어 유토피아는 두 번째 경우여야 한다. 하지만 아니올시다. 학부모들의 솔직한 욕구는 첫 번째의 모습 같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아들, 딸만이 - 비록 상위권은 아닌, 중간 정도의 실력일지라도 - 다른 아이들 보다 우수한 학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 시장이 커진 이유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겪어야 했던 울분이나 답답함 때문이 아니다. 우리 나라 오천만 국민 가운데 일 년에 외국인과 영어로 한 마디라도 대화를 해야 하는 사람은 몇 퍼센트나 될까? 영어로 된 문서를 반드시 읽을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높은 영어 점수를 요구하는 직장에서 마저도 실제 영어를 잘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리고 몇 달에 한 번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모든' 사원들이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다. 그저 통역 한 사람만 있으면 족하다.

 그런데 이렇게 일년에 몇 번 안 되는 상황에서 직장 상사가 "영어 잘 할 줄 아는 사람 손 들어봐!" 라고 할 때 손을 들 수 있는 사람은 확실히 남들보다 돋보이게 마련이다. 물론 승진에도 유리하다. 바로 이 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영어 사교육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국에서 영어를 잘 하려는 이유는 게임에서 좋은 아이템을 획득하려는 이유와 같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쉬운 영어를 이해하는 수준으로도 평생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 다만 소수의 좁은 문에 들기 위해서 불필요한 초과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영어는 '의사 소통' 이라는 수단적 의미가 아닌, 그 자체가 아이템이며 자격증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 까지 받아야 하는 소위 '의무 교육' 가운데 평생 쓰여지지 않고 버려지는 것이 어디 영어 뿐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교육의 본질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교양 교육은 한 국가가 국민들에게 기본적으로 갖추기를 요구하는 최소한의 앎이다. 한국어는 모국어이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수학, 과학, 미술, 음악, 체육 등등은 그 자체로 인간이 알아야 할 지식을 담은 것이다. 미분, 적분을 어디다 써먹냐고 하지만 이런 학문들은 결코 어딘가에 쓰여지기 위해서 배워야 할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진리이며 지혜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앎과 학문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인다면 세상 모든 학교는 상고, 공고, 농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소위 '중요 과목'으로 분류되는 영어만은 '진리'를 향한 것이 아닌,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나마 옛날처럼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 영어는 단어의 암기량, 논리적 문법 구사 능력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출발선 자체가 다른 해외파 학생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제 한 사람의 영어 실력은 그가 남들 보다 하나의 언어를 더 할 줄 아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해온 것은 아닐까. 기업도, 대학도 이제 무턱대고 영어 점수 자격 기준을 높이기 보다는 왜 영어 잘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진정 우수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다른 능력은 없는가?

 오늘도 나는 학생들이 비뚤비뚤한 글씨로 써낸 시험지들을 채점한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내준 숙제를 검사한다.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하를 받았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들은 집에 보내지 않고 다른 교실에서 나머지 공부를 시키고 보낸다.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만 집에 갈 수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학부모들로부터 무책임한 교사라고 항의가 들어올테니까. 하지만 퇴근길에서는 괜시리 내가 이렇게 이쁘고 귀여운 아이들을 생고생 시키는 것 같아 안쓰러워지고, 심지어 그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하다.

 조금 곁가지 얘기를 하자면, 초등부 학원 수업은 대개 8시가 조금 안 돼서 끝난다. 아마 집에 돌아가면 저녁식사를 할 테고 내가 내준 숙제를 할 것이다.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그들의 숙제는 때론 업데이트 시간이 11시를 넘기기도 한다. 꼭 영어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직 초등학생이라면 늘 밝고 즐겁기만 해도 될 나이가 아닐까? 어차피 반 세기 넘는 생을 살면서 8 할은 괴롭고 짜증나는 일들 뿐일텐데 말이다. 적어도 아이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마다 "오늘은 무슨 즐거운 일이 생길까?" 라는 기대로 부풀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끝없이 되묻는다. "왜 모두가 영어를 잘 해야할까?"

저의 취미는 독서입니다

(2008년 여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재수생 시절, 수능을 마치고 대학교 지원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모교의 어느 국어 선생님을 찾아가 약간의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절대로 취미를 쓰는 칸에다가 '독서'는 쓰지 말라고 하셨다. 워낙 그것을 쓰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중요한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준령아, 독서는 '취미'가 아닌 '생활'이어야 한다."

 실제로 종종 다른 사람의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어께 너머로 보게 될 때가 있다. 역시 독서는 가장 자주 써먹는 취미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 주위에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동지가 마땅히 없는 것일까?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였다는 이 학교 학생들도 정작 읽는 책들은 서점가에 비치된 베스트셀러 목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일본 소설 + 자기계발서 + 재테크 관련 도서가 70% 이상은 차지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문제는 저렇게 취미란을 부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독서'라는 글자들 때문에 진짜 독서를 취미로 하는 나의 설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나에겐 독서를 제외한다면 딱히 취미가 없다. 독서광狂이라기엔 내공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즐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독서이다. 학교 다닐 땐 비록 공부를 빼어나게 잘하진 못했다 할지라도 언제나 책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앞으로도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책이 내 손에서 영영 멀어지는 날은 없으리라 믿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책이라는 물리적 실체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모든 책을 구입하는 즉시 책꺼풀로 곱게 싼다. 그리고 내 이름 석자가 깔끔하게 새겨진 도장을 윗면과 아랫면에 꾹꾹 찍어 이름을 남긴다.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이 자칫 통풍이 안 되어 좀이 먹을까 염려되어 가끔씩 책을 꺼내 첫장 부터 마지막장까지 휘리릭 바람도 쐬어준다.

 같은 여인이라도 명품 옷가게에서 예쁜 옷을 고를 때 보다는 허름한 중앙도서관에서 책 읽을 때가 더 아름다워보인다. 두꺼운 전공서적을 펼치고 사전이나 계산기와 씨름하는 것도 보기 좋지만 소설책을 읽는 쪽이 더 사랑스럽다. 지하철에서도 MP3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다리를 꼬고 앉아 굽 높은 샌들을 까딱거리는 여인보다는 편한 스웨터와 면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책 읽는 여인이 더 멋있다.

 그림을 볼 때도 책과 관련된 그림에 더 정이 간다. 아르침볼도의 <사서>가 보여주는 익살적인 모습에 나는 웃음짓는다. 모리스 켕탱 드 라투르(더 유명한 조르즈 드 라투르가 아님)의 <페랑양의 초상>에서는 깍쟁이같긴 하지만 지적으로 보이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저 유명한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 마네의 <생 라자르 역>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프라고나르의 <책읽는 여인>은 마치 벽난로 앞에 선 듯한 따뜻함이 묻어나온다. 한편 쇠라의 점묘법을 대표하는 <일요일 라 그랑 자트 섬의 오후>를 볼 땐 그 많은 사람 중에 책 읽는 사람이 어찌 한 명도 없을까 생각하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을 대한민국 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만든 주요 원동력이라 평가하는 그의 베스트셀러에 나오는 말이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무한정 많은 책을 읽을 순 없었지만 독서를 사랑하다보니 나는 많은 책을 '알게'되었다. 특히 소설 문학을 좋아하여 웬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전은 대표작과 작가를 대부분 매치시킬 수 있다. 남은 평생을 바쳐도 그들의 모든 책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조각조각 만나게 되는 그들의 생애와 작품만으로도 나의 지성과 감성은 풍족하게 살찌리라 믿는다.

 취미로서의 독서는 언뜻 금전적인 부담이 적은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결코 그렇지 않다. 만원짜리 한 장 달랑 들고 가면 웬만큼 좋은 책 한 권도 못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우리 집 책장에 꽂힌 책들이 1,300 권에 달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돈을 그곳에 쏟아부었을까? 그리고 게임, 운동, 오락을 비롯한 잡기에 전혀 소질이 없는 내가 아무 기술이나 근력도, 뛰어난 머리도 필요없는 독서를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쯤 되면 내가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는 것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봐줄 순 없을까?

 마지막으로 독서를 취미삼는 국민이 많은 것은 언제든지 두 손 들고 환영하고픈 일이다. 하지만 '진짜 독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만이 자기소개서 취미란에 '독서' 두 글자를 당당하게 써주었으면 한다. 아무 취미도 없는 나에게 독서까지 빼앗가는 잔인함은 그만둘 수 없을까?  그리고 기왕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얄팍한 자기개발서, 아무 철학 없이 돈 자체에 눈이 먼 쓰레기 재테크서적에서 눈을 돌려 진정 아름다운 글을 함께 즐길 줄 아는 동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잘못된 만남

(2008년 이른 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며칠 전 나는 진심으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도 그 화가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아서 내가 무슨 소리를 쓰고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그저 내 체벽 속으로 뱉어내고 싶을 뿐이다.

 무한히 넓은 우주에서 그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 공간은 내 머리 속 뿐. 나는 그 작은 공간에서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끔찍한 생각을 하고 그것을 더 잔인하게 각색하고 또 반복했다. 영화 <킬 빌>을 떠올렸고 에미넴의 <킴>을 흥얼거렸다. 어쨌든 그 시나리오의 끝은 항상 나의 바람대로 이루어진다. 그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더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시나리오를 현실에서 실행할 수 없음에 분노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나는 스스로의 야만성에 놀라 경악했다. 그리고 끝내 우리 인간은 궁극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서 체념하고 말았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같은 땅에서 같은 교과서로 공부했다는 사실이 똑같은 사고방식을 낳는다는 생각은 완전한 오해다. 다른 부모님 슬하에서 다른 대화를 나누고, 다른 사제 아래에서 다른 신앙을 갖고, 다른 경제적 환경에서 다른 행동의 자유를 겪은 사람은 상대방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안나의 남편 카레닌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그는 여느 남편들처럼 스스로가 매우 자상하며 아내를 너그럽게 이해한다고 믿는다." 라는 부분이 있다. 나는 가끔씩 '누가 보아도 객관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 '과연 스스로는 자신을 정당하다고 생각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곤 했었다. 누가 곁에서 감시하지 않더라도 칸트가 강조하던 '선의지' 혹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심'이라는 녀석이 불쑥 고개를 들고 얼굴을 붉히는데 어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을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철학 속에서는' 최선의 행동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분노에 주위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로 위로해주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미친 개한테 물렸다고 해서 그 개를 옳은 말로 설득할 수는 없어. 그냥 재수 없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내가 화나는 이유는 저 똥 내지는 미친 개는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살고있는데 왜 멀쩡한 내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하냐는 것이다. 저 하늘 위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현명한 판사가 있다면 어찌 이렇게 상처받은 내 마음을 두 손 놓고 지켜보는 걸까?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은 저울에 올려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일까?

 조직의 문화가 있고 그 속에 개인의 의지가 함께 있다면 그 둘이 충돌할 때는 적절한 선을 찾아 합의를 해야한다. 만약 그것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운다면 그것은 다수의 횡포 내지는 조직의 와해를 낳는다. 그런데 그 조직이란게 모여도 되고 안 모여도 되는 친목 도모회가 아닌 이상 구성원이 자신의 의지를 어느 정도 양보하는 것은 미덕이 아닌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 의무를 져버린 채 조직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려는 것은 무임승차요 놀부심뽀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특히나 조직을 위해 각 구성원이 맡은 의무가 '누구든 하기 싫어하지만 해야 하는 일'일 땐 더더욱 자신을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겁 많은 강아지 이야기로 나의 마음을 돌리려 할지도 모른다. 애완견들도 그 중에는 순한 놈도 있고 사나운 놈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사납고 사람을 잘 문다고 하는 개는 실제로 가장 겁이 많은 녀석이라고 한다. 작은 외부 자극에도 지레 겁을 집어먹고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남발한 나머지 그 강아지는 성질 더러운 녀석으로 찍히고 마는 것이다.

 나는 상급자고 그는 하급자다. 나는 오히려 너그럽게 그의 행동을 불쌍히 여겨야 할까? 그러나 무능력이 누군가의 행동을 합리화한다는 식의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 무능력의 탈을 쓴 기만은 순진한 게으름보다 더 악랄하다. 그리고 진정 무능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면 나는 충분히 그를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갈등과 시련 때문에 나이값 못하는 짓을 저지른 그의 행동은 겁많은 강아지의 비유를 쓰기에도 아깝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사건 이전과 다르게 그를 대하고 있다. 그는 원래 자신이 살던 방식 그대로 살고 있다. 서로의 마음 속에서 겪게 되는 아픔은 별도로 한다면 객관적 세계에서는 그의 의지가 승리한 것이다. 물론 나는 똥이 더럽고 미친 개한테 물리지 않기 위해 평소 걷던 길을 걷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는 자신이 똥이고 미친 개임을 인정하고 있을까? 내 행동의 변화가 자신을 두려워해서가 아님을 알고 있을까? 만약 그가 자신의 행동이 옳았고 모든 사람이 그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조치가 취해졌다는 엄청난 착각 속에서 살고있다면 나의 이 답답함과 억울함은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영화 <러브 레터>에서 처럼 내 두뇌를 잠깐 꺼내서 그에게 보내주고 싶다. 아니. 녀석의 썩어빠진 불량 두뇌를 내던지고 그 자리에 잠깐 내 것을 놓아서 그가 마음 속으로 반성하게 만들고 싶다.

 지금껏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 좋은 인상은 못 남겼을 망정 적어도 나쁜 사람으로 각인되지는 않았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나였다. 그런데 이렇게 미친 녀석에게나마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프다. 그를 똥, 미친 개라고 욕하며 뇌까리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일단 그건 당연한 사실이고) 그에게 정상적인 사고로 나의 답답함을 이해시켜서 마음 속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받아내고 싶다. 물론 지금이라도 당장 그의 앞에서 으름장을 놓는다면 그 겁많은 바보는 죄송하다고 말하겠지만 - 물론 돌아서서 또 다시 어떤 비겁한 행동을 할지는 알 수 없다 -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도 똑같은 결론을 내리며 나의 분을 삭힐 수 밖에 없다. 그는 나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수많은 크로스로드가 있는 뉴욕에서 같은 에버뉴에 있는 사람이 모두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에버뉴에도 수많은 스트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4차원까지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칼라비-야우 도형을 통해 본 우리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살고있는지도 모른다. 그와 나는 너무도 다른 세계를 살다가 불행히도 4차원 아래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축을 공유해버린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선물, 신비한 영혼의 마법

(2008년 이른 봄, 스물다섯살의 어느 날)


지난 몇 년간 내가 받은 선물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소포로 책을 보내준 10명 넘는 친구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 책들은 모두 책꺼풀에 곱게 싸인 채 내 책장에 소중하게 꽂혀있다. 어느 형은 내 생일 때 책 한권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모은 CD 한 장을 주었다. 한 여자 동기는 내가 처음 귀를 뚫었을 때 양 쪽 귀에 하나씩 예쁜 귀걸이를 선물해주었다. 그녀는 마음도 춥던 이등병 겨울 때 로션도 주었으며 서울에서 혼자 자취생활 할 때 양말이 부족하단 내 말에 양말 몇 켤레를 사주기도 했다. 2년 정도 함께 지냈던 누나는 책 한 권, 그리고 크리스마스엔 다음 해年 다이어리를 선물해주었다. 한편 나같은 애연가愛煙家에게 담배는 싼 값에 얼마든지 환영받는 선물이다. 지금껏 선물 받은 담배는 몇 갑인지 셀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준 선물은 얼마나 될까? 몇 안 되다 보니 부끄러워서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분명 받은 것 보단 훨씬 적다. 곰같이 둔한 성격, 치밀하게 계산할 줄 모르는 머리 때문에 늘 손해보며 산다고 불평하지만 막상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 이렇게 눈에 띄게 받은 정성만 해도 보답하기 벅찬데 보이지 않게 받아온 마음들은 평생을 두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선물이란 밥 한끼 사주거나 영화 한 편 보여주는 것 보단 이렇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물건이 더 좋다. 선물받은 물건을 보면 어김없이 그것을 준 사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선물이란 매개체를 통해 선물을 준 사람과 잠시나마 함께 있는 것과 같다. 이 말은 한낱 메타포로 넘기기엔 아까울 만큼 의미가 크다. 선물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두 사람을 이어준다.

 "너와 함께 있다."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가리킬까? 영어에서 너you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2인칭 대명사지만 너의 몸your body, 너의 정신your soul은 이미 흔하디 흔한 3인칭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해서 '너', '나', '우리'라는 것은 육체, 생각, 정신을 비롯하여 더 많은 것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지닌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여인과 살을 맞대고 포옹을 해도 나는 결코 그녀와 함께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몸her body와 함께일 뿐.

 하지만 인간은 이렇게 상대방의 육체나 정신, 그 일부라도 곁에 두고 싶어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의 모두를 소유하려 한다. 비록 사랑하지만 만날 수는 없는 가족의 사진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아버지. 클럽에서 만난 여인과의 애정 없는 동침 후 밝은 아침 태양 아래서 허망함을 느끼는 철없는 청년. 이 두 사람은 상대방의 전부를 곁에 둘 수 없기에 슬퍼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누군가의 영혼은 나에게 있지만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을 때, 그리고 한 침대 위에 있지만 마음은 제각각의 세계를 떠돌 때 그들은 결코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선물을 받고픈 욕구도 이런 소유욕과 다르지 않다. 선물을 받는 것이 기쁜 이유는 준 사람의 마음과 함께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물건까지도 곁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머리 속에 살아있는 그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나는 그와 함께이다. 그를 만나지 않았을 땐 갖지 않았던 버릇들이 - 예컨데 걸음걸이, 말투, 사소한 습관 - 나에게 남아있다면 역시나 그는 아직 나를 떠나지 않은 셈이다. 선물은 그 자체로 주는 이의 분신分身인 동시에 내 머리와 가슴 속으로 그의 영혼을 소환召喚하는 강력한 마법이다.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선물은 애정에의 욕구을 충족시킨다. 끝없이 번식하려는 유전자처럼,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타인의 기억 속으로 침투하여 확장되기를 갈망한다. 내가 죽었을 때, 세상 누구의 가슴 속에도 공허함과 빈자리가 남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것은 나의 육체가 죽기 보다 훨씬 전부터 나의 영혼이 죽어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묻지만 아무런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존재함으로써 세상이 아주 조금이나마 달라진다고 믿기에 오늘도 힘겨운 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가 나의 선물을 보며 잠시 나를 떠올린다면 그 순간 나는 더 큰 존재가 된다.

 이렇게 선물은 주는 쪽, 받는 쪽 모두의 애정욕을 채우는 마법이다. 이무런 생각 없이 받기만 했던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왔을까? 선물의 손익계산서는 회계학에서와는 다른, 무한 이득으로 발산하는 신비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새해부터는 좀 더 많은 사람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주어야 겠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받을 것이다.

뛰어난 CEO의 모순된 조건들

(2008년 이른 봄, 스물다섯살 어느 날)


"자네는 왜 경영학과에 왔나?" "CEO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학년 전공 수업시간, 교수님이 맨 앞자리에 앉은 학생에게 물었고 학생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의 생활기록부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부터 3년 내내 장래희망란에 '전문 경영인'이라고 적혀있다.

 왜 경영자가 되고싶어하는지 묻는다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 월스트리트 마천루 사이에서 브리프 케이스를 든 채 재킷 단추를 채우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비즈니스맨이 그저 멋있어보였다. 소년들의 꿈을 결정짓는 동기는 반드시 이성적인 사유에 따른 결과에 있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렇게 감성적인, 강렬한 이미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좋은 CEO의 조건은 서점의 수많은 책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 학교 윤석철 교수님는 그의 저서에서 "경영자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풍부한 감수성과 더불어 인문, 사회, 자연과학, 예술에 이르는 폭넓은 교양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풍부한 감수성과 폭넓은 지식이 뛰어난 경영자가 되는 데 무조건 도움이 될까? 전공 공부를 해나갈수록,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며 삶의 경험이 쌓일수록 나의 확신은 조금씩 흔들린다.

 오히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감수성은 현실에서 뛰어난 경영자가 되는 데 방해가 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경영자, 즉 리더는 결국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사람이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 Rhetoric》에서 언급한 설득의 세 가지 조건인 로고스logos, 페이소스pathos, 에토스ethos에 맞춰서 이 모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로고스는 지식적, 논리적 측면에 해당한다. 경영자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쌓는 궁극적 목적은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다. 인생은 B-C-D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고born, 선택하고choose, 죽는다die.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살아가는 과정은 이렇게 선택의 연속이다. 누군가의 생애를 평가하는 것은 결국 그가 일생동안 내린 선택의 결과를 평가하는 것과 같다.

 경영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조직을 좌우하는 선택을 내린다. 그만큼 책임도 크다. 그는 여러 항목중에 최적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때로는 "뛰어난 경영자는 'OR'의 문제를 'AND'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말처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많은 지식을 쌓게 될수록 선택 가능 항목은 늘어만 간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 더 많이 아는 사람은 더 신중해지지만 또 한편으론 주저할 수 밖에 없다.

 페이소스는 감성적 측면이다. 인간은 컴퓨터와 달라서 똑같은 인풋input에 반드시 똑같은 아웃풋output이 나오지는 않는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폭넓은 지식뿐만 아니라 풍부한 감수성을 함께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과 교감하며 자신 뿐만 아닌,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인간을 다루는 학문인 경영학을 전공하는 우리가 어찌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을 경시할 수 있는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이 최초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의식을 가진 후 우리 조상들은 오랜 세월동안 인간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은 모더니스트들의 말대로 조상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거인의 어께 위에 선 난쟁이가 되어 끊임없이 연구를 계속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스키너와 파블로프의 연구를 배우고 호손 실험을 읽지만 도무지 일관되고 깔끔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인간이 창조한 수많은 문학, 예술 작품들은 오히려 너무 많은 인간의 측면을 보여주기에 감히 그들을 이해할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만든다.

 에토스는 성찰적 측면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그 말의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말하는 사람이 모범을 보이지 않을 땐 아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경영자는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에게 모범이 되도록 고결한 윤리성을 지녀야 한다.

 반면에 강준만 교수는 "스스로를 많이 성찰하는 사람은 뛰어난 리더가 될 수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느 집단이든 구성원을 이끄는 리더는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집약한 하여 가장 효율적인 곳에 발산해야 한다. 존 로크J. Locke는 《통치론》에서 "정부란 구성원들이 사회계약에 따라 각자의 권한을 일부씩 양도讓渡하여 그것을 집약시킨 권력체이다."라고 주장했다. 기업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가능하면 자신의 권한은 적게 양도하면서 조직에 편승하고자 하는 무임승차free ride의 강한 유혹을 받는다.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빠진 경영자는 아래로는 구성원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하다 보니 많은 권한을 집약시키지 못하고, 위로는 추진력 부족으로 인해 성과를 못 내다 보니 결국 무능한 경영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과연 뛰어난 CEO가 될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내가 나르시시스트처럼 스스로를 '높은 수준의 지식과 감수성, 윤리성을 지닌 사람'이라 자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과거를 돌아볼 때  지금껏 나는 얼마나 많이 선택항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던가? 새로운 지식 앞에서는 비판의식 보다는 수용의식이 앞서다 보니 모든 말이 옳은 것 같았고 좀처럼 거부할 줄을 모르는 예스맨yes-man으로 살아왔다. 좀 더 많은 것을 배우려 노력하지만 그것이 명쾌한 의사결정엔 그리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한편 얼굴에 철판 깔고 실리實利를 챙기면 될 것을, 싫은 소리 조금 못해서 몇 번이나 나는 힘든 일을 떠맡곤 했었던가? 나의 자의식은 타인의 비판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 붉히며 다투어 적절한 합의점을 찾기 보다는 그 논쟁이 싫어서 차라리 양보해버리는 성격 때문에 종종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지나치게 높은 도덕률 사이에서 헤매다 보니 더 많은 금기를 피하려 하고 결국 윤리적 결벽증에 결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기도 했다.

 어느 칼럼니스트가 경영자의 자질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윤석철 교수의 의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영자는 전공지식 보다는 인문, 사회, 예술과 같은 분야에 더 능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어느 회사가 새롭게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 한다고 가정하자. 두 명의 최고경영자 후보가 있는데 갑은 재무, 회계, 마케팅과 같은 전공 지식에 능통하고 을은 해당 국가의 언어, 역사, 문화에 밝다. 그 칼럼니스트는 진정 중요한 것은 해당 국가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을이 CEO가 되고 갑은 그의 자문諮問역할을 맡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칼럼을 쓴 사람은 바로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한 듯 하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아무나 갖춘 것이 아니다. 경영학을 연구하는 교수라면 모를까, 일선에서 뛰는 리더라면 수많은 기회비용과 막대한 책임을 각오하고서라도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구성원들의 반발과 그들과의 불화도 어느정도 정도 무시할 줄 알아야 한다. 도덕성의 비난을 받더라도 조직의 발전을 위해 악역惡役을 맡아 총대를 메는 배짱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는 CEO의 자리는 경영학적 실무능력, 즉 의사결정능력을 갖춘 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자문 역할은 관련 시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좋을 것이다. 둘 다 쉽지 않은 역할이지만 나에겐 강력한 리더쉽을 갖춘 동료 옆에서 아이디어뱅크가 되어 진심어린 조언을 하는 쪽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침묵은 금이다'의 새로운 해석

(2008년 이른 봄, 스물 다섯살의 어느 날)



"침묵은 금이다"의 새로운 해석

 부대 인트라넷 게시판에 장병 독후감 대회 공지가 올라왔다. 대상 도서는 정훈도서, 진중문고, 부대 내 도서관에 비치된 도서들이었다. 정훈도서는 이름에서도 짐작되듯이 장병들을 세뇌시키는(?) 책들이기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반면에 진중문고와 도서관 문고들은 공간적으로 부대 내에 있을 뿐 사회의 여느 책들과 똑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병들은 이 대회에 참가할 땐 후자의 책들을 읽고 독후감을 낸다고 한다.

 나름 문학 소년으로 인정받는 나도 당연히 몇몇 사람들로부터 이 대회에 참가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군 입대 이후엔 바쁜 대학 생활 동안에 읽지 못했던 책들을 많이 읽는 것이 목표였던 나는 지난 2년간 그야말로 죽도록 읽었다. 매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독서는 내 마음의 안식처요 현실에서의 돌파구였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내가 쓴 글들을 살펴봐도 80% 이상은 책에 관한 이야기 뿐이다. 현실에서는 나에게 새로운 소재를 던져줄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 생에서 2006년관 2007년은 몸은 군대에, 눈은 책 위에, 마음은 온 세계를 떠돈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가능하면 같은 시간에 좋은 책들을 많이 읽기 위해 오랜 세월을 통해 검증된 고전들을 중심으로 읽어왔다. 비교적 계획을 잘 실천하여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세어보니 권 수로 따지면 대략 150권이 조금 넘었다. 그만큼 당장이라도 독후감을 쓰고픈 욕구를 일으키는 책들도 적잖이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작년 독후감 대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때 역시도 나는 참가 권유를 받고 독후감 한 편을 써냈다. 무슨 책을 읽고 어떤 독후감을 써냈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명문名文이라고 까지는 못하더라도 나름 깨끗하게 문장을 다듬었고 짜임새도 탄탄하게 하여 꽤나 괜찮은 글을 냈다는 사실이다. 마치 플로베르Gustave Flaubert가 작품을 쓸 때 그러했다고 하듯 스스로 쓴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고 어색한 부분은 최적의 한 단어를 찾아내기 위해 고치고 또 고쳤다. 내 글을 제출하고서 다른 참가자가 올린 글도 몇 편 읽어보았다. 최우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상권 내에 드는 것은 문제가 없어보였다.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순위권은 커녕 예심에서 탈락했다. 사람들은 군대 행정이 똑바로 돌아가는 것 봤냐며 위로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를 진정 당황케 한 것은 호기심에 읽어본 최우수 수상자의 독후감이었다. 내용은 일단 둘째로 치고 그가 읽은 책 제목이 먼저 들어왔다.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간다〉. 책 내용이나 독후감 내용이나 따로 설명 안 해줘도 뻔했다. 다른 수상작들도 얄팍한 대중소설이나 자기계발서, 처세서를 읽고서 그것을 군인이라는 현재의 신분과 연결지어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천편일률적인 독후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군대에서 평가하는 훌륭한 독후감은 그 책의 문학성, 예술성과는, 그리고 독후감의 문장력, 표현력, 짜임새와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군대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행사에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책들은 대체로 내용이 쉽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기 때문에 똑 떨어지는 깔끔한 독후감을 만들기는 쉽다. 하지만 포상휴가 며칠 얻으려고 마음에도 없이 '보람찬 군생활'과 같은 글을 쓰기는 싫었다. 어느 군가에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는 부모형제에겐 죄송한 말씀이지만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그런지 제대를 눈앞에 둔 지금도 차마 웃으면서 군대는 못가겠다.

 군대에서 읽은 많은 책들 중에 괜찮은 책을 추천해달란 말을 자주 듣는다. 그 때는 독서광이 아니라도 쉽게 읽을 만한, 그러면서도 감동을 주는 책들을 몇 권 추천한다. 소설이라면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스타인백의《분노의 포도》. 하퍼 리의《앵무새 죽이기》,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등등을, 산문집으로는 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번》, 피천득의《인연》정도를 든다. 조금 어려운 소설도 좋다면 조이스의《젊은 예술가의 초상》, 보르헤스의《픽션들》,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도 추천한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바꿔서, "군인이기에 특히 공감했던 소설은 무엇인가?"라고 물으신다면 나의 대답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내 머리 속에 적당한 한 권의 책이 있다. 그것은 결코 전우애를 다룬 것도, 뜨거운 애국심을 다룬 것도 아니다. 전쟁의 긴박한 상황을 숨막히게 연출하겨 스릴을 안겨주는 것도 아니다. 그 소설은 다름 아닌 프랑스 최고의 단편작가 기 드 모파상의 소설 〈비계 덩어리 Boul de Suif〉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건 군대에서가 아니다. 옛날 대학생 시절 수업 교재로 쓰던《Norton Anthology of Short Fiction》에서〈Boul de Suif〉라는 영어 번역본으로 이 작품을 본 적이 있지만 내 영어 실력으로 읽기엔 너무 어려워서 중도에 포기해버렸던 것이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으로 한 마을 사람들이 피난길에 오른다. 피난 마차에는 귀족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타고있다. 그들 가운데는 볼 드 쉬프 -비계덩어리라는 뜻- 라는 이름의 창녀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며 같은 마차에 탄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도시락을 꺼내 먹는 그녀를 볼 땐 고픈 배를 안고서 그녀를 부러워하며 심지어 그녀가 권하는 음식을 넙죽넙죽 맛있게 받아먹는다.

 마차는 프로이센군의 검문을 받아 어느 마을에서 멈춘다. 피난민들은 인근의 한 시골집에 갇히게 된다. 프로이센군의 감시 하에 사람들은 언제 그곳을 떠날 수 있을지 몰라 초조해한다. 며칠 후 피난민들은 한 적군 장교가 볼 드 쉬프와 하룻밤 동침하기를 원하는데 그녀가 계속 거절하기에 자신들이 풀려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녀의 정절에 감탄한다. 하지만 곧 그녀 때문에 자신들이 풀려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설득한다. 결국 주위의 눈총과 압박을 이기지 못해 그녀는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적군 장교와 하룻밤을 보낸다.

 당연히 그들은 모두 풀려난다. 떠나는 마차엔 볼 드 쉬프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를 멀리하려 하고 심지어 따돌리기까지 한다. 이제 그녀는 천한 신분의 창녀인데다가 적군 장교에게 몸까지 허락한 더러운 여자로 여겨진다. 그녀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누구도 위로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만 이용하고, 그렇지 않을 땐 버리는 냉혹한 집단이 바로 내가 경험한 군대이다. 큰 일이 터졌을 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필사적으로 책임을 떠넘기려 눈에 불을 켜는 비열한 집단이 바로 군대이다. 그리고 희생양이 발견되면 모두가 그 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가는 곳이 바로 무시무시한 군대이다. 책임의 소재는 가장 많은 업무를 손에 대는 사람에게 있을 확률이 높게 마련이며 또한 그는 가장 약자일 가능성 또한 높다. 당연히 군대에서는 그 희생양이 주로 병사가 된다. 물론 공식적은 책임은 결제권을 가진 간부들이 진다. 하지만 보이지 않게 서류와 도장 뒤에 오가는 서슬 퍼런 비난의 화살은 병사를 향한 경우가 많다.

 문화평론가이자 미학자인 진중권은 일종의 마녀사냥인 '이지메'를 분석하면서 '마이너스 1의 평화'라는 재미있는 개념을 내놓았다. 집단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란 쉽지 않다. 언제나 인간은 허점이 있게 마련이고 그에 따른 실수는 집단의 불행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집단은 본능적으로 가능하면 적은 구성원들이 피해를 입되 많은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찾는다. 다대다多對多의 대립은 절반의 구성원을 죄인으로 만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집단은 모든 비난과 책임을 단 한 명에게 집중시킨다. 수많은 구성원 중에 한 명은 수학적 개념인 한계limit로 따진다면 제로에 수렴한다. 나머지 무결한 구성원들로만 이뤄진 집단은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계속 행복할 수 있다.

 설사 그 한 명이 사라지거나 집단을 이탈한다 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은 그 한 명이 되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한다. 가능하면 그들은 재빨리 다른 한 명을 지목해서 화살을 날린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은 약자는 곧 다른 구성원들로부터도 무자비하게 공격을 당해 결국 마이너스 1을 짊어지는 희생양이 된다. 이런 현상은 매번 반복된다.

 이 원칙이 철저히 현실화되는 군대에서 내가 어찌 '웃으며 군대가는...' 이야기를 쓸 수가 있겠는가? "내 뜻과 맞지 않다면 차라리 붓을 꺾겠다!" 라고 멋지게 외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솔직하지 못한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나의 작은 신념 때문이다. 나는 조금은 투박하더라도 진심이 담긴 글이 결국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므로 나의 신념에 따라 〈비계 덩어리를 읽고...〉라는 제목을 달고서 군대와 마이너스 1의 평화론과의 관계, 마녀사냥의 역사, 이지메 등등의 내용을 담은 독후감을 낸다면 난 어떻게 될까?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온다.

 군 생활을 마무리할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고전문학이 오랜 세월동안 빛을 발하듯 예비역 선배들의 오랜 격언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복지부동, 무사안일, 그리고 몸 건강하게 제대하는 것 만이 최고란 말은 아주 지당하신 명언이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 없이〈비계 덩어리〉, '마이너스 1의 평화'와 같은 헛소리 하다가 희생양이 되는 불상사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한편 어른들은 말한다. 남자는 역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고. 예비역 형님들의 말씀과 일견 상충돼 보이지만 이 역시도 지당하신 말씀이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한 집단의 막내 역할을 하기 전에 이렇게 20대의 문턱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 진리를 예습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혹시 멋도 모르고 정의감에 불타올라 본전도 못 건지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여기서 제대로 배우고 나가야 한다. 불행이도 우리가 사회생활 하면서 장차 모셔야 할 높으신 분들은 모두 내가 지금 머무르는 군대 때 부터 지금까지 '마이너스 1의 법칙'을 철저히 익히고 행해오신 베테랑들이다.

사탕발린 거짓말이나 눈꼴시린 아첨, 정치에 자신 없으면 차라리 정신 차리고 입이라도 다물자.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은 현대 사회에선 이렇게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되고 있다.

라캉을 손에 든 지하철의 어느 대학생

(2008년 이른 봄, 스물 다섯 살의 어느 날)


소설가 김영하씨는 "책의 일차적 기능은 전시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북 커버 디자이너도 아닌 책의 속살을 만드는 사람이 한 말이라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확실히 책이란 단순히 읽히기만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비록 읽히지는 않았지만 내 책장에 꽂힌 책은 개발되지 않은 지식의 금광처럼 느껴져서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실내 장식용으로도 책은 훌륭한 아이템이다. 깨끗하게, 심지어는 무질서하게 채워진 알록달록한 책장은 웬만한 미술작품 못지않게 아름답다. 우표나 동전을 모으는 사람이 있듯이 책을 수집하는 것도 썩 괜찮은 취미이다. 물론 돈이 적잖게 들기는 하지만 다른 수집 활동과 비교해볼 때 '읽을 수 있다',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실용적인 측면까지 있으니 더욱 추천할 만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대학생들이 지하철에서 읽는 책들'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초점을 둔 부분은 '어떤 책이 읽기 좋으냐?'가 아니라 '어떤 책이 들고 다니기에 더 폼나게 보이는가?'였다. 글쓴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폼나는 책의 조건을 몇 가지 들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억나는 대로 요약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았다.

1)반양장이나 페이퍼백 보다는 예쁘고 고급스런 양장본.
2)한국인 저자가 쓴 것 보다는 외국인 저자가 쓴 책. 번역서가 아닌 원서라면 더 좋음.
3)우직하게 큰 책 보다는 작은 책.
4)가능하면 현대 작가가 쓴 책. 철학서의 경우에는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것 보다는 라캉이나 들뢰즈를 비롯한 현대 철학책.

 이런 글이 많은 애서가들로부터 공감을 얻는다는 사실은 책에도 전시적 기능이 크다는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한다. 책에도 외면과 내면이 있다. 책의 전시적 기능은 얼굴에 해당하는 외면이요, 책의 본질적 기능, 즉 읽히는 것은 책의 내면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열거된 폼나는 책의 조건은 현대의 지성이라 불릴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사상思想의 외면적 조건을 반영한다. 싼 것 보다는 비싼 것, 우리 것 보다는 외국 것, 무거운 것 보다는 작고 부담없는 것, 고전 보다는 현대의 것을 좋아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대학생들의 성향이다.

 확실히 옛날과 비교할 때 오늘날 대학생들의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이것은 결코 고학번 운동권 선배들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후배들을 보며 한탄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머물렀던 3년 동안에도 매년 대학생들은 변하고 있었다. '고려대는 막걸리, 연세대는 맥주'와 같은 학교의 정체성은 말 그대로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나마 학교라는 집단은 이렇게 명목상으로나마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경우엔 그것 마저도 사라진지 오래. '어떤 학교'의 정체성은 있지만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나 똑같으니까. 자신이 속한 국가와 민족, 나아가 이 세계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심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제 이런 문제들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세상의 중심은 수많은 각각의 개인으로 흩어져버렸다.

 예전에는 함께 논의해보자며 학과 게시판에 올라오던 글이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에 그것들은 모두 개인의 블로그로 넘어갔다.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여 비판받는 것도 싫고 심지어 애초에 나의 생각을 남들에게 보여야 할 필요성 조차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대담론의 해체, 다원주의와 극히 파편화된 개인주의의 대두는 바로 오늘날의 대학생들을 표현할 키워드다. 플라톤 보다는 라캉이, 고대 그리스 철학 보다는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주목받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기에는 기본적인 자격 조차도 갖추지 못했다. 일단 무언가에 대해 토론을 하려면 그 주제를 정의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하지만 나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재의 내공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이 철학이 우리가 살고있는 우주를 관통하는 하나의 궁극적 진리와 정답을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 누구도 정답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니, 정답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알 수 없다. 이 때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든 없다고 생각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한 가지는, '정답이 있다고 증명하는 것'은 '정답이 없다고 단정짓는 것' 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있다는 자'의 정답을 향한 피나는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갈 때 마다 - 실제로 대부분은 실패한다 - '없다는 자'의 주장은, 적어도 귀납적 측면에서는 강화된다. '있다는 자'는 "정답이 존재하는가?" 대한 불확실성 뿐만 아니라 "그 정답이 무엇인가?"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모두 떠맡아야 한다. 반면에 '없다는 자'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벌써 논쟁을 회피할 수 있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두 번째 질문은 대답할 필요조차 없으며 때로는 불가지론으로, 혹은 진리무용론으로 흐를 수도 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은 젊은이들이 어설프게 이해할 경우 진리 탐구를 향한 괴롭고 먼 길을 회피하고자 하는 달콤한 유혹이 될 소지가 크다. 상아탑 아래 모여 앉아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대신에 "정답은 없다." 혹은 "모든 것이 다 정답이다."라고 말하며 새침하게 홱 돌아서는 것. 그리고 그것이 현대 철학의 정신인 양 당당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자세일까?  또한 이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남용될 땐 현대 젊은이들의 이기주의-개인주의와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를 합리화할 우려도 있다.  물론 개인이 어떤 시각을 지지하느냐는 각자의 자유이다. 하지만 하나의 철학을 선택하는 이유가 다른 한 쪽이 어렵고 불확실하다는 것이 이유라면 그것은 호오好惡가 진위眞僞를 결정하는 주객전도의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어느 고등학생이 수학이 싫어서 문과를 가는 것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내가 그들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렇게 함부로 입을 놀리는지도 모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어쩌면 나는 마치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따먹지 못하는 포도를 눈 앞에 두고서 그 포도는 신 포도라고 우기는 여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조금 진일보해서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근거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비판했다. 심지어 그들의 주장을 '헛소리'라고 못박기도 했다. 실제 그가 예로 든 라캉의 어느 증명 과정은 철학과 수학에 거의 까막눈인 내가 보아도 어이가 없었다.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었는데 고등학교 정도의 수학 지식만 갖춘 사람이면 그의 주장이 궤변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라캉, 들뢰즈, 가타리, 푸코를 비롯한,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신중하다. 적어도 그들의 주장은 근거없는 궤변은 아닐 것이라고. 무식한 선배이지만 조심스레 오늘날 저학년 대학생들에게 부탁을 하나 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은 그 이전 수많은 철학들이 연구해온 주장과 동일한 위상의 학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방법들 중 하나로 이해돼야 한다. 시기적으로 현대 철학이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져서는 곤란하다.

 언어는 언중의 선택에 따라 의미가 변화한다. 이렇게 극소수의 지식인들만이 이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칫 잘못된 방향로 남용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오염되어 의미 자체가 변질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이 단어는 '진리무용론', '불가지론'. '극단적 다원주의'를 뜻하는 철학으로 오해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폼나게 보이기 위해서 원서로 씌어진 라캉의 하드커버 책을 당당히 들고 있는 지하철의 대학생 머리 속엔 어떤 철학이 둥지를 트고 있을까? 그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진정한 의미의 그것일까 아니면 변질되어 새침하고 무책임한 철학일까? 과연 그는 라캉의 사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라보는 데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그가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고 보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눈이 선하지가 않기에 임금님의 옷을 보지 못한다고 믿는 것이다. 전자의 시선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갖춘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무지를 탓하며 후자의 시선으로 임금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임금님의 옷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엄청난 학문적 권위를 쥐고 있다면 십중팔구의 대중은 자신의 눈을 탓하지 벌거벗은 임금님을 비웃지 못한다. 과연 내 눈이 먼 것일까, 포스트모더니즘이 옷을 입지 않은 것일까?

 플라톤의 완벽한 세계idea에 대한 나의 이상과 믿음은 21세기를 사는 오늘날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다. 진정 이 우주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황금 열쇠는 존재하니 않는 것일까? 만약 그 정답이 존재한다면 내 머리와 가슴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외면받게 되리라. 하지만 설사 정답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한동안 쉽사리 라캉, 들뢰즈, 가타리의 책을 집지 못할 것 같다. 첫째로는 깨어져버린 믿음에 대한 미련 때문이요, 둘째로는 이런 무질서하고 유리조각같은 세상을 받아들이기가 선뜻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스무살 봄날의 추억 속에서

(2007년 겨울, 스물네살 어느 날)



어느 봄날의 추억 속에서

 스무살 때였다. 영어영문학 전공 수업을 같이 듣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다른 여학생들을 볼 때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다지 예쁜 편도 아니었고 발표를 할 때의 영어도 그리 유창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파 중에서도 조금은 뒤쳐지는 수준이었다. 수업은 그룹별 발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그룹은 한 학기 내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수업마다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녀와 내가 같은 조에 속했던 것도 딱 한번의 수업 때 뿐이었다. 당연히 그 이후로 그녀와 새삼 아는 척 하며 지내는 것은 지극히 어색한 일이었다.

 고려대학교에는 본과 뒤를 빙 두르며 서관(문과대학)과 동관(대학원 도서관)을 잇는 좁은 길이 있다. 우리는 그 길을 다람쥐길이라고 불렀다. 이 길에서 어느 날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였고 그녀는 혼자였다. 나는 그녀를 못본 척 친구들과의 대화를 계속했다. 그러다 무심코 그녀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는데 그 순간 우리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조금 당황한 나는 그녀를 따라 얼떨결에 고개를 까딱했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 행동과 밝은 미소로 나에게 먼저 마음의 손을 내밀어준 것이다. 그녀가 그것을 의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날 나는 충분히 기분이 좋았으니까.

 어쩌면 그녀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쉽게 친절을 베푸는, 원래 성격이 상냥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전형적인 '경상도 출신의 맏아들'이라서 수줍음을 잘 타는 나와는 달리 상대방에게 쉽게 다가서고 마음을 여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렇게 나에게만 특별히 베풀어준 친절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행동이었겠지만 그날이 자꾸만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물론 그날 이후로 그녀와 나는 언제나 만나면 인사를 하고 지내게 되었다.

 가끔씩 마주설 땐 그녀의 키가 작고, 얼굴에 젖살은 아직 덜 빠진 듯 했으며 평범한 작은 눈을 가졌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거나, 했다 하더라도 진한 화장은 피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머리는 수능을 마치고 처음 염색을 한 듯, 조금은 물이 빠진 희미한 갈색이었다. 마치 그녀는 사복을 입은 여고생과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자주 보았던 그녀의 모습은 수업 시간에 앉아있는 뒷모습이었다. 수줍은 남자가 여자를 바라볼 땐 대게 뒤에서 훔쳐보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녀의 머리에서 시작되어 어께와 가슴, 엉덩이를 거쳐 종아리에 이르는 곡선은 우리가 떠올리는 이상적 여인의 몸매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그녀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너무 짧지 않은 치마를 좋아했다. 두 다리를 따라 내려와서 만나게 되는 그녀의 신발은 대게 평범한 스니커즈였다. 그리고 아마도 귀걸이나 목걸이같은 악세사리에 그녀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남쪽 지방 사투리가 아직 남아있는 듯한 그녀 말투가 독특했다. 영어영문학 시간에는 강의와 발표를 비롯한 모든 대화가 영어로 이루어졌다. 선생님의 지적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발표를 할 때면 거의 단어의 연결에 불과한 콩글리시를 하며 얼굴을 붉히는 그녀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엽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반짝이는 전자사전을 두드렸지만 그녀는 두꺼운 책 사전을 들고 다녔다. 한마디로 그녀는 세련된 미인美人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난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셰익스피어를 배울 땐 줄리엣의 모습으로 그녀를 상상했다. 존 업다이크의 <A&P>에서는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서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리석게도 과감히 직장을 그만둬버렸다.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를 배울 땐 내가 어린 소년이, 그녀가 내 친구인 멩건의 누나가 되었다. 애이미 탠의 <조이 럭 클럽>을 읽을 때 내 머리 속에서 그녀는 신동 소녀라 불리우며 어린 나이에 전국 체스 대회를 휩쓰는 웨이벌린이었다. 돌이켜보면 유치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곤 했었다.

 세월이 추억을 미화美化시킨 탓일까? 스무살 당시에 그녀를 좋아할 때 내 머리 속에는 어떤 불손한 상상도, 계산도 없었다. 나름 그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감정은 매우 단순했다.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이렇게 귀여운 그녀와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향해 품는 감정은 "왜?"라는 질문은로는 설명할 수 없나보다. 남중남고를 졸업한 직후 여자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던 내가 이렇게 헛점 투성이인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날의 나는 어떨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원하는 이상적 여성상은 분명 그 때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워진 것 같다. 차라리 '예쁘고 잘 빠진 쭉쭉빵빵'과 같은 생각은 남자라는 동물로 태어난 이상 사춘기 소년도, 팔십세 노인도 어찌할 수 없는 순진한 바람이라고 쳐두자. 하지만 지금의 내 머릿속에는 '문학을 좋아하는 교양있는 여자', '예술을 사랑하는 감성적인 여자', '나보다 술을 잘 마시는 여자', '많은 책을 읽어서 지혜로운 여자'와 같은 전에 없던 희망사항들이 추가돼있다. 이것이 바로 어른이 돼간다는 증거일까? 나도 언젠가 '돈 많은 여자', '능력 있는 여자'를 바라는 속물을 손가락질할 자격 없는, 똑같은 속물이 되고 마는 것인가?

 나는 온라인에서 그녀에 대해 이런 저런 정보를 뒤져보았다. 그녀가 속한 학과의 클럽을 찾아냈고 그녀가 입학 직후 남겨놓은 자기소개글을 읽었다. 거기엔 그녀의 e-mail 주소와 메신저 주소, 핸드폰 번호까지도 씌어져있었다. 확실히 이렇게 개인 정보가 온라인에 쉽게 노출된 것은 문제이다. 하지만 나는 소위 작업을 계속해나갔고 사람에 따라서는 스토킹이라 비난해도 변명할 수 없는 짓을 해버렸다.

 나는 메신저에서 그녀를 대화상대로 추가하기로 했다. 그녀를 추가하는 순간에 그녀가 접속해있는 상태라면 그녀는 실시간으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접속해있지 않은 상태라면 나중에 접속할 때 알게 된다. 어떤 경우든 그녀는 자신을 추가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한 번 추가를 한다면 결코 취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녀의 주소를 복사하여 신규 등록 창에 붙여넣었다. 이제 클릭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한 번의 클릭이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아마도 한 시간 정도는 고민했을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클릭 한 번 하기가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대학교 합격자 조회 때 말고는 한 번도 없었다. 이 담에 그녀가 "누구세요?"라고 물어오면 어떡할지, 더 난감한 것은 그녀가 자기의 메신저 주소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오는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적당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 끝에 나는 결국 "에라 모르겠다!"하며 '확인'을 꾹 눌러버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가 지금 접속해있을까 두려워서 곧바로 메신저를 꺼버리고 말았다. 나는 얼마나 바보였던가.

 며칠 후 메신저에 접속했다. 마침 그녀도 접속해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물었고 나의 대답에 "어멋! 안녕하세요!"라며 반가워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 반응도 나에겐 큰 위안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편하게 마음을 먹고 그녀와 대화를 해나갈 수 있었다. 어떻게 자신의 주소를 알았냐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해왔다. 조금은 간肝이 커진 나는 솔직하게 그녀의 주소를 찾아낸 과정을 털어놓았다. 그 때 나는 이미 '작업'이라는 것이 100퍼센트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나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진행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눈치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렴풋하게나마 나의 의도는 짐작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처음으로 그녀와 오랜 시간 대화를 했다. 그녀가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고 지내자며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가르쳐주었다. 역시 그녀는 붙임성 좋은 명랑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나도 약간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호감을 주기까지는 못할 망정, 적어도 달갑잖거나 귀찮은 존재는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 나는 가끔씩 심심할 때 별 것 아닌 일로 그녀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만약 그녀가 생각날 때 마다 메시지를 보내라면 '가끔씩'으로는 부족했으리라. 어쨌든 참 착한 그녀였다. 꼬박꼬박 성의있게 채워서 보내주는 답장이 고마웠고, 비록 내가 먼저 보내는 횟수 보다는 적었지만 때때로 먼저 날아오는 그녀의 메시지가 더욱 고마웠다.

 이제 수업 시간에도 그녀의 옆에 앉고 싶었다. 마침 그녀는 혼자 수업을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를 차마 나의 작업 진행을 핑계로 배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험 기간에는 방과 후 몇 차례 도서관에서 그녀와 함께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 수업을 혼자 듣는 만큼 깜빡 졸거나 딴 생각할 때 놓쳐버린 노트 필기를 빌릴 곳이 마땅찮았다. 당연히 내가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원래 이 과목을 좋아했기에 나는 대부분의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두었다. 노트 필기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과 도서관을 오가며 나는 나름 이 과목에 많은 공을 들였다. 어쩌면 이렇게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필기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일부러 내가 필기를 못한 척, 그녀에게 연락하여 노트를 베낀 적도 있었다. 그 전까지는 몰랐는데 그녀의 영어 글씨는 그리 예쁘지 않았다. 한 번은 핸드아웃을 잃어버린 척 하며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그녀를 불러내어 인쇄소에도 갔다. 함께 공부할 때는 아는 단어도 물어보았다. 그것도 전자사전을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둔 채로. 이 모든 연극은 단순히 그녀를 한 번 더 보고, 그녀와 한 번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나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의 이런 깊은 배려까지 그녀는 과연 눈치채고 있었을까? 이렇게 설렘과 긴장이 더해가던 '03년 1학기가 막을 내렸다. 그녀와 나는 둘 다 소설 문학을 좋아했기에 다음 학기엔 또 다른 문학 관련 수업을 같이 듣기로 했다. 우리는 방학을 맞아도, 다음 학기가 와도 계속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 첫 학기 내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재수再修 문제는 끝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와의 어정쩡한 관계를 뒤로 한 채 휴학계를 제출했다. 함께 수업을 듣던 3개월 동안에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그녀와 어느 수준 이상의 관계를 확정지어 놓았다면 어땠을까? 시간의 먼지는 분명 나의 후회를 하얗게 덮어줄 것이라 믿었다. 인간이 시험 기간이면 언제나 원망하곤 하는 '기억의 망각忘却'은 실상 신神이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과거의 모든 기억을 마치 디스켓이나 씨디처럼 정확하게 저장한다면 결코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좋았던 기억, 아팠던 기억이 모두 선명하게 남겠지만 아픈 기억의 고통은 좋은 기억의 기쁨보다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기억의 총량이 증가할수록 고통과 기쁨의 격차는 점점 커질 뿐이다. 다음 수능 날짜가 조금씩 다가오면서 그녀에 대한 생각도 차츰 희미해져갔다. 때론 이렇게 쉽게 그녀를 잊는 내 자신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그녀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그녀와 함께 길을 걷고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며 무심코 지나쳤을 수많은 기회들. 눈치와 용기의 부재로 그 많은 기회를 날려버린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 아쉬움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햇수로 따지면 5 년 전 이야기니까 휴학을 안 하고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이제 그녀는 직장인, 혹은 대학원생이 돼있을 것이다. 만약 내게 우연히 그녀와 다시 마주칠 기회가 온다면, 그리고 내가 다시 한 번 예전처럼 '눈에 빤히 보이는 어설픈 수작'을 부린다면 그 때도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줄까? 강산이 반쯤은 바뀔 만한 시간이 지났으니 나도 그만큼 더 멋있게 변해있어야 하지만 늘 제자리 걸음만 한 것 같아 부끄럽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에서 잭 니콜슨의 대사 중에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들어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라는 말이 나온다. 사랑을 하면 여자는 예뻐진다고 했던가? 왜 여자만인가? 남자인 나도 비록 지금 이렇게 보잘것 없지만 만약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분명 더 멋진 사람이 되고자 안간힘을 쓸 것 같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상대방이 나의 요구에 맞춰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상대방에게 걸맞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두 애송이었던 5년 전, 봄날의 추억 속에서 그녀는 나에게 이 작은 깨달음을 선물해주었다.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다이어리를 선물한다는 것

(2007년 겨울, 스물네살의 어느 날)


 고마운 분께서 크리스마스 겸 연말연시를 맞아 2008도 다이어리를 선물해주셨다. 새해나 새달을 맞이할 때 마다 나름 계획을 세워가며 살아왔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다이어리를 이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예쁜 다이어리를 한 손에 꼭 쥐고 있으니 막연하게 느껴지던 1년이란 시간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을 것만 같다.

 화가가 작품을 그리기 전에 새하얀 도화지를 이젤에 얹듯, 작곡가가 음표를 채우기 전에 팽팽하게 줄이 당겨진 오선지를 바라보듯, 우리는 매년 새해의 문턱에서 마음 속에 보이지 않는 다이어리를 써내려간다.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것은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선물을 받는 사람이 결코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는, 반대로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있다.

 다이어리 초반에는 달력과 같이 월별 계획을, 그 뒤 부터는 하루에 한 쪽씩을 할당하여 일일계획을 짤 수 있도록 돼있다. 하루에 한 쪽씩 모여 만들어진 400여 페이지가 꽤나 두껍고 묵직하다. 새삼 1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도, 가볍지도 않음을 깨닫는다. 하루에 명언名言 하나씩, 좋은 책 50페이지씩만 읽어도 1년은 충분히 나를 성장시킬 만한 시간이다. 물론 태어나서 이제껏 스무 번 넘게 무심코 지나쳐왔던 각각의 1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일까? 그렇다는 이도, 그렇지 않다는 이도 있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작가인 마크 트웨인은 "담배를 끊는 것 만큼 쉬운 일은 없다. 나는 그것을 수백번도 더 해봤다."라고 말했다. 계획을 세우기가 쉽다고 말하는 이는 혹시 이제껏 지키지 못할 계획을 남발하고 그것을 수백번 새로 짠 것은 아닌지, 때문에 계획 세우기를 쉽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일이다. 계획은 소원이 아니기에 무작정 달님에게 빌듯이 세우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계획은 꿈이나 장래희망과도 달라서 현실을 벗어나 허황되게 세우는 것도 아니다.

 앞날은 늘 불확실하다. 눈앞에 펼쳐진 시간의 도화지는 어느 순간 찢어질 수도 있고, 나의 물감과 붓이 불량품일 수도 있다. 의도치 않게 그림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상화理想化된 자신의 계획에 취해버린 나머지 그것을 실천하기 보다는 달콤한 꿈 속을 헤매다가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화가가 자신의 능력과 현실을 외면한 채 거창한 작품을 그리려다 좌절하는 것과 같다. 의지가 계획을 따라가지 못하는 때도 있다. 적절하게 작품 구상을 하고서도 정작 화가가 붓을 든 후에는 귀찮음,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깨끗하던 도화지는 더럽혀지고 버려진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같은 회사에서 만들어진 같은 모델의 다이어리는 크기와 두께가 똑같다. 하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 써내려가는 다이어리를 다시 종이로 인쇄한다면 그 두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우리 영혼의 다이어리는 마치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 그것은 똑같은 1년 동안에도 누군가에겐 두툼한 백과사전처럼 빼곡히 채워지지만 다른 이에겐 구겨지고 더럽혀진 미농지가 되기도 한다. 먼 훗날 튼튼한 아름드리나무가 되느냐, 마르고 비틀어진 죽은 나무가 되느냐는 이렇게 각자가 마음 속에 써내려가는 다이어리의 두께에 달려있다.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것은 받는 이의 마음 속에 두꺼운 나이테를 얹어주는 것이다. 그 속에는 상대방이 어떤 비바람과 추위도 이겨내어 슬기로운 노송老松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져있다.

 계획을 짠다는 것은 시간을 관리한다는 말이다. 황진이의 시조 가운데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 순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 임 오시는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라는 작품이 있다. 시간을 시각화示覺化한 황진이의 기발한 비유가 무릎을 치게한다. 하지만 우리가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도 실상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점은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떼어내어 유용한 곳게 배분하는 것이다. 사랑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Love is All Around'), 우리가 유용하게 바꿀 수 있는 시간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Time is All Around. 그것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벤치 위에도, 무심코 걸어가는 보도블럭 위에도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금이다"라고 말했다. 하루 24시간은 마치 신神이 모든 이에게 매일 똑같이 내려주는 24만원과 같다. 우리는 얼마든지 그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로 누구도 24만원을 초과해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둘째로는 다 쓰지 않고 남은 돈은 다시 회수해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능하면 이 돈을 욕심껏 유용한 곳에 사용하려 한다. 다이어리를 이용하는 것은 한정된 돈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기 위한 재테크와 같다. 펀드매니저가 최적화된 비율로 주식, 채권, 정기예금, CMA 등등에 돈을 배분하듯이 우리는 적절한 곳에 적절한 만큼의 시간을 배분해야한다.

 한편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도 있다. 시간이 금이고 침묵도 금이니 결국 시간은 침묵이라고 해도 될까?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결론이겠지만 나는 이것 또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다이어리에 씌어진 계획들을 요란하게 떠벌리기 보다는 묵묵히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다이어리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다이어리를 벗어나야한다. 페이지마다 빼곡하게 채워진 활자화된 계획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진정 중요한 것은 종이 위에 씌어진 계획을 나의 영혼을 살찌우는 나이테로 바꿔나가는 일이다. 그것은 끝없는 땀과 눈물을 필요로 한다. 이 땀과 눈물은 우리 마음 속의 아름드리나무를 살찌우는 비료가 되어줄 것이다.

 공자는 "생生의 계획은 어릴 때, 일 년의 계획은 봄에,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연말이면 다음 해의 다이어리를 선물한다. 인간이 연속적인 시간을 마치 대나무 줄기처럼 연월일年月日로 분절시킨 것은 확실히 의미가 있다. 한 마디의 끝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을 반성할 수 있으며 동시에 다가올 시간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것은 365일이라는 시간의 한 마디를 이어주는 것과 같다.

 하지만 어느 가수의 노래 가사와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대사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 번째 날이다.("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my life.") 우리는 인위적으로 나눠진 연월일에 상관없이 늘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는 시간의 기로에 서있다. 당연히 한 해를 시작하는 날과 한 해의 가운데에 위치한 날의 중요도는 똑같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관습적으로 분절된 시간의 마디에 얽매여 매년 초마다 작심삼일에 그치는 계획들을 남발하곤 한다.

 다이어리의 어느 페이지를 펴더라도 우리는 남은 생의 첫날을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살고있다. 계획과 실천은 적분積分처럼 구간을 두고 분리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분微分과 같아서 어떤 시점에서든 남은 생애를 계획하고 동시에 그것을 피땀흘려 실천해야한다.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것은 오늘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매년 초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행운이 많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말이다. 반면에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것은 "새해 복 많이 만드세요."라는 인사와 같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만들 수 있는 복을 되도록 많이 챙길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인삿말이다.

크리스마스 카드와 초콜릿의 추억

(2007년 겨울, 스물네살 어느 날)


겨울 방학을 앞두고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은 한창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방학이 성탄절 보다 일찍 시작되기에 그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 괜히 우리는 들뜨곤 했던 모양이다. 비록 동성 친구 간에도 얼마든지 카드를 주고 받았으며 그 때는 누구도 그것을 어색해하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순진했었다. 하지만 14살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주요 관심사는 이성친구간에 오가는 카드에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확실히 당시에도 남자친구 보다는 여자친구가, 카드를 보낼 또 보다는 받을 때가 더 기분이 좋았다. 나 역시도 몇몇 호감을 가졌던 몇몇 여학생들에게 짧지만, 결코 쉽지는 않은 메세지를 정성스레 담아서 카드를 보냈다. 대부분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었기에 모두가 웃으며 자연스럽게 받았다. 인간 마음이 참으로 묘한 것이 결국 카드나 선물, 메세지는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으론 내 마음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애초에 얼마 넓지도 않은 메세지 적는 부분이 자꾸만 크게만 느껴졌었다. 그리고 그나마 적는 짧은 메세지 마저도 두리뭉실 애매모호한 크리스마스 인사가 되곤 했었다. Merry Christmas만 적어도 1/3은 채워졌던 것 같다.

혹여나 호감이 가던 한 사람에게만 카드를 쓰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일까봐 두려워 앞, 뒤, 좌, 우에 앉은 친구들, 아파트 같은 동네 사는 친구들에게까지 다 보내버리고 말았다. 초등학생 용돈이야 안 봐도 뻔한데 당시로서는 나름 심각한 고민이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연막은 결코 싼 대가로 살 수 없는 것이었으며 어쩌면 이것은 용기를 갖지 못한 자가 지불해야 할 비용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꽤 많은 카드를 받았다. 역시나 대부분 친한 남자, 여자 친구들이 보내온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이 이미 카드를 줄 것이라고 예상된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한 여학생이 보내온 카드가 끼어있었다. 평소 나와는 거의 대화도 없었을 뿐 아니라 공부도, 얼굴도, 성격도 그리 튀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나는 조금 놀랐고 동시에 은근히 더 기뻤다. 하지만 아직 순진했기 때문이었을까? 부끄럽기도 해서 나는 주위 친구들의 온갖 부추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써 그 카드의 의미를 축소해석하려했다. 이것도 일종의 자기 암시가 됐는지 나중에는 정말로 그녀의 카드는 "그저 친구에게 보내는 안부 메세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믿게 돼버렸다.

내가 조금만 더 신사답고 적극적이었다면 당장 전화라도 해서 고맙다는 말, 그리고 답장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단 말을 할 수 있었을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평소 말도 없고 얌전하기만 했던 그녀. 그리고 당시만 해도 언제나 많은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리며 운동도, 공부도 다수 속에서 했던 나. 우리 둘은 애초부터 친할 동기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만큼 그녀의 카드에 대해 다른 친구들에게 보다도 더 감사했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의 거리 때문에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색할 것 같아서 망설이기만 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시간은 참으로 매정했다. 어느새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두 달 남짓한 그 기간은 나의 죄책감도 레테의 강 너머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고 2월이 되어 개학을 맞았다. 방학 전에도 늘 그랬던 대로 그녀와 나는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맨 뒷자리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따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어색해서 그만 둬버렸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내가 그녀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버릴 기회가 조만간 오리라는 사실을.

중학교 배정 발표가 났다. 그리고 졸업식이 다가왔다. 교실에는 이벤엔 초콜릿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을 건네주었고 나는 또 쭈뼛쭈뼛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 달엔 나도 예쁜 사탕 줄게"라고 말하며 그것을 받았다. 나는 평소에 친하던 친구들 무리로 돌아갔고 그들과 함께 그 초콜릿을 뜯어서 먹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그 때 내 생각에 발렌타인데이는 원래 여자가 남자한테 주는 날로만 생각했기에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또 며칠이 지나 배치고사를 쳤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때만 해도 우리 동네에는 남녀공학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그녀와 나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필요 없지만 당시에는 배치고사를 잘 쳐서 학교에 좋은 첫인상을 주는 것이 엄청 중요하다고 다들 믿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들 열심히 공부했다. 다행이도 나는 운이 좋았던 모양인지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 마음에는 아직도 내가 진지한 마음으로 공부하지 않는 모습이 걱정스러우셨나보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맘 잡고 공부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결국 부모님과 상의하여 처음으로 학원 종합반에 등록해서 다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종합반은 남여학교가 갈라지고 난 후에 나름 여학생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감각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입학 후에도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여학생들을 가끔씩 길에서 만나긴 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시절엔 느끼지 못했던 어색함이 그들과 나 사이에 감도는 것을 우리는 모두가 눈치채고있었다. 다른 학교라는 소속,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보이는 교복. 이제 그들과 나는 몇 달 전까지 함께 장난치던 개구쟁이들이 아닌, 남학생과 여학생이 돼버린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변한 그들의 인상에 나는 다가오는 3월 14일이 걱정스러워졌다. 어떻게 그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나? 같은 반에서 지내던 시절에도 수화기를 든 채 결코 누르지 못했던 그녀의 전화번호, 이젠 수화기조차도 들기 힘들 것 같았다.

결국 그 날은 찾아왔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는 3층 복도 창문을 통해 정문 쪽을 내다보았다. 역시 이틀 전에 약속한 대로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짧아진 머리에 평소처럼 단정한 이웃 여학교 교복, 변하지 않은 듯 변한 그녀 모습이 참 어색한 듯 하면서도 신선했다. 그 때 먼저 집으로 간다고 계단을 내려갔던 학원 친구가 다시 계단을 뛰어올라오더니 묘한 웃음을 띠며 한 여학생이 나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게 된 같은 반 여학생들 서너명이 꺄르르 웃으며, 부럽다는 말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그 때 나는 왜 그렇게 바보같았을까? 내 가방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끝내 계단을 내려가지 않았다. 창가를 통해 그녀를 바라보지도 못했다. 아직 쌀쌀한 초봄의 찬바람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녀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창가 너머로 바라보니 이제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핸드폰이라도 있으니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라도 냈을텐데. 어쨌든 학원 차는 놓쳤으니 뚜벅뚜벅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화이트데이를 맞아 여기저기 펜시점에서 화려한 사탕들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시끄럽게 귓가를 스치는 자동차소리, 빌딩 아래 음지에 아직 채 녹지 않은 더러운 눈덩어리, 그리고 아마도 남자친구에게 받은 듯한 사탕 바구니를 자랑스러운 듯 손에 들고 하교하는 여러 교복의 여중생, 여고생들. 나는 그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집으로 걸어와버렸다.

그날 나는 예습, 복습도 할 수가 없었다. TV도, 그렇게 좋아하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나를 기다리던 그녀 모습과, 귀갓길의 야경夜景이 눈앞에 아른거렸을 뿐. 거의 똑같은 기회가 두 번 세 번씩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녀를 외면한 나는 정말 나쁜 녀석이었다. 호손N. Hawthorne의 《주홍 글씨 The Scarlet Letter》에는 "가장 악한 사람은 타인의 성역을 침범하는 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사람의 감정에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인 그녀의 자존심까지도 다치게했다. 그녀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녀가 싫어서가 아니라, 감정의 표현이 서툴러서 끝내 도망쳐버린 나의 이 바보같은 모습이 너무도 싫었다. 그녀의 심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자학하는 나의 고통도 그녀의 심적 고통 못지않게 아팠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렇게 내 추억 속에서 12월의 크리스마스, 2월의 발렌타인즈 데이, 3월의 화이트 데이에까지 이르는 연말年末-연시年始는 씁쓸한 기간이다. 이렇게 긴 후회의 달을 마치고 마치고 맞이한 '대구, 1997년 4월 봄'은 《켄터베리 테일즈 The Canterbury Tales》에서의 꽃피는 4월이 아닌, 엘리엇이 말하는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April is the cruelest month.  T.S. Eliot의 《황무지 The Waste Land》中 ) 인간의 악행은 악한 마음을 품었을 때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용기가 없어서든, 표현이 서툴러서든 간에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악행이다.

크리스마스가 딱 한 달 남았다. 6학년때 내가 2주일만에 그녀의 카드를 잊었듯, 10년이란 세월은 그녀가 나에 대한 가졌던 원망을 씻을 수 있는 시간일까? 만약 언젠가 내게 그녀를 만날 기회가 온다면 나는 어떻게 사과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상대에게서 나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미안해."라는 말이 있고 또 '선물'이 있는 법이지만, 그 잘못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버리면 이 모두가 무의미해지고 만다. 누군가 나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그녀에 대한 나의 죄책감을 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녀가 나에 대한 섭섭함을 잊게 할 수 있을지를.

어설픈 코스모폴리탄

(2007년 겨울, 스물네살의 어느 날)



글쓰기 책 두 권을 읽었다. 그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나름의 기준을 잡고 이제껏 내사 써온 글들을 몇 개 읽어보았다. 중학생 시절부터 교내 백일장, 독후감, 논술 대회 등등에서 대부분 상을 받아왔던 만큼 나름 글쓰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된, 그것도 매우 잘못된 착각이었다.

대체로 주제, 구성, 맞춤법 부분은 후하게 쳐주면 합격점을 받을 만 했다. 문제는 역시 '문장' 단위였다. 대체로 내 문장은 지나치게 길었으며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삭제하거나, 좀 더 짧은 다른 표현으로 대체해도 무리가 없는 군더더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하게 교정의 필요성을 느낀 부분은 부적절한 외국어 번역투의 문장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하지 않을 수 없었다(can not help~).", "~하고있는 중이었다(was ~ing).", "~했었다(had ~ed)." 와 같은 표현을 써왔다. 문장 구성 면에서도 화법, 비교법에서 심심찮게 영어식으로 구성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가 이러한 표현을 쓰면서도 그것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물론 글쓰기 책에서 주어진 예문例文을 보고 틀린 부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주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쓴 후에 퇴고 과정에서는 이런 비슷한 오류들이 계속 발견되곤 한다.

언어는 사고思考를 담는 그릇이다. 예로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도 있듯, 말 내지 글은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때문에 많은 기업이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 자기소개서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이 전제 하에서 내 글 속에는 막상 멍석 깔리면 잘 할 줄도 모를 외국어에 어설프게 오염된 부끄러운 내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영어 조기교육 열풍은 어제 오늘 뉴스가 아니다. 동시에 그 대척점對蹠點에서는 그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아직 모국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섣불리 영어를 가르치면 두 언어 사이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껏 나는 이 주장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언어(작문)습관을 돌이켜보면 그것이 결코 기우杞憂만은 아닌 것 같다. 두 언어를 혼동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어휘의 혼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사고방식 자체가 변화되어 '한글로 쓰여진 영어 문장'을 남발하는 것도 일종의 언어 혼동이다.

신영복 교수는 영국이 지금도 여전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다. 물론 전 세계에 걸친 식민지와 그에 따르는 부富로 누려왔던 영국의 화려한 영광은 과거 이야기다. 하지만 오늘날의 영국은 그리니치Greenwich 천문대에서 세계인의 시간을 거머쥐고있다.  런던 금융시장은 세계 제1의 금융시장으로서 지구의 경제 흐름을 주도하고있다. 영국의 언어인 영어는 미국, 호주, 필리핀을 비롯하여 동-서양, 남-북반구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태양 아래 울려퍼진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영국은 여전히 전 세계에 걸쳐 건재하는 나라이며 심지어 이렇게 내 머리 속에까지 둥지를 트고 있다.

문화적 제국주의는 멀리 있지 않다. 영국 뿐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언어'라는 문화적 자산을 이용해 전 세계의 유학생들을 끌어모으며 외화外貨를 번다. 심지어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영어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정통 영어Queen's English'를 배우기 위해 대서양을, 도버 해협을 건넌다. 우리나라같은 비非영어권 국가는 말할 것도 없다. 매년 영어를 배우기 위해 소요되는 수업료, 유학 비용, 교재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1997년 외환위기때 많은 국민들은 나라를 위해 애지중지하던 금반지, 금목걸이를 내놓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영화 <타이타닉 Titanic>이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지불해야했던 외화外貨가 그 금값과 비슷한 액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이슬람 교리에서처럼 서양의 문화에 적극적, 배타적으로 저항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나의 정신,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늘날 나의 정신세계를 형성해온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는 지금껏 읽어온 책을 빼놓을 수 없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따라서 풍부하게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편식하지 않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런 생각에 나는 지금까지 문학, 예술, 역사, 과학 등등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하기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잊고있었던 사실은 '다양성'이란 말이 오직 이렇게 여러 분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여러 문화권과 여러 지역의 사상, 감정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문학 작품들을 한국 문학과 외국 문학으로 나누어 정리해보면, 그리고 그 외국 문학도 국가별, 언어권별로 정리해본다면 나의 편중된 독서 성향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최근 유행하던 '된장녀' 이야기가 떠올랐다. 원래 된장녀란 말은 서양 남자, 서양 물건, 서양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여자를 비하할 때 쓰는 말이었다. 그 말이 한 연예인 때문에 의미가 변질되어 고가高價의 외국 명품을 밝히는 말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나의 편중된 독서 경향도 '문학적 된장남'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껏 나는 쪼달리는 돈으로 책을 사다 보니 가능하면 좋은 문학책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대체로 노벨문학상, 퓰리쳐상, 공쿠르상 등등의 이름으로 검증된, 이름바 '명품 문학'만을 탐닉해왔다. 하지만 대체로 이 작품들은 외국 작가가 쓴 작품에(알다시피 노벨문학상 수상 목록에 한국 작가는 없다.), 그것도 영미문학(퓰리처상 픽션 부문은 미국 국적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짐.) 내지는 프랑스문학(공쿠르상은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다.)에 편중돼있다. 내가 과연 외국 명품 밝히는 된장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내가 갖춰야 할 사상적 다양성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나의 모국어로 이루어진 우리 사상, 우리 말일 것이다. 이것은 결코 "한 손엔 칼을, 한 손엔 국어책을!" 이라고 외치는 민족주의적, 나아가 국수주의적 결론이 아니다. 그렇다고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정체성을 찾고자 함이며 동시에 내가 가장 잘 할 줄 아는(아니,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하고자 함일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잘못된 문장 습관을, 나아가 외국어 번역투로 오염된 언어 인식 체계 자체를 뜯어고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여기저기서 추천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서점에 가서 우리나라 작가의 단편집이나 수필집을 여러 개 읽어본다. 그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을 선택하여 반복적으로 읽는다.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것은 그 작가의 문체와 나의 호흡이 일치한다는, 다시 말해서 궁합이 맞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작가의 문체에 익숙해져서 나도 그 문체에 따라 글을 쓰게 된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손으로 베껴 적는 방법도 있었다. 비교적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확실히 내가 글을 쓰는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서 그 작가의 글을 쓰기 때문에 더 효과적일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작가 신경숙은 소설을 배우던 시절 김승옥의 작품을 손으로 베껴적어가며 문체를 익혔다고 한다. 두 방법 모두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모범적 문체 위에 나만의 개성적인 문체를 얹을 수만 있다면 말 그대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슬픈 거북이

(2007년 겨울, 스물네살의 어느 날)


새 학교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던 신입생 시절, 교양수업으로 러시아 문학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운운하려는 사람이 적었던 탓인지 늘 교실은 한산했다. 그래서 나는 이 수업을 좋아했다. 많아야 10명 내외가 앉은 작은 교실에서 우리는 비교적 많은 발언 기회를 가졌고, 그래서 나중에는 학생들 사이에 일종의 '암묵적 친근함'까지도 가질 수 있었다. 출석 체크때도 선생님이 호명할 때 우리는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님은 출석 용지에 적힌 우리 이름을 보고서는 고개를 들고 그 학생을 찾는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업을 맡으신 선생님은 정교수가 아닌, 30살을 갓 넘긴 젊은 여자 강사였다. 작은 키에 차분한 말투, 늘 밝은 웃음을 띤 얼굴이셔서 나는 그 분을 좋아했다. 친근한 선생님이었기에 문학 작품에 대해 부담없이 내 견해를 말할 수 있었고 선생님은 항상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그리고 나의 어설픈 비평 위에 차분한 존댓말로 깔끔한 코멘트를 얹어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지어주셨다. 그럴 때 마다 나는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 사이를 다니시며 내 보잘 것 없는 그림 위에 한두번 쓱쓱 색칠을 해주자 어딘가 모르게 작품이 확 살아난다고 느꼈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약 3년 반이 지난 후 신문의 북 섹션 신간 소식에서 나는 그 선생님의 이름을 발견했다.  도스토예프스키F.M. Dostoevskii의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 The Brothers Karamazov》를 새롭게 선보였는데 바로 그 선생님이 번역자였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터넷에서 번역자 정보를 찾아보았다. 동명이인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한 후 그분의 이력을 보고서 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학부생 3학년 때 첫 소설을 출간하며 문단에 등단. 이후 몇 차례 소설을 내놓으며 매번 신선한 문체와 형식으로 주목받음. 28세였던 2002년에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와 《악령 The Devils》을 번역. 현재에도 활발한 문학 연구 및 강의 중.

어처구니 없는 감정인 줄 알지만 나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을 하시면서도 어떻게 선생님은 그렇게 겸손하기만 했을까? 속된 말로 '편안하고', 더 막말로 하자면 '만만한 누나같던' 소박한 모습 뒤에 이런 이력을 숨기고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나 혼자서 사람을 지레 짐작하여 과소평가하고서는 뒤늦게 또 혼자서 당황해하는 말 그대로 쇼를 한 셈이다. 선생님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이제 내 마음 속에서 그분은 더 멀게 느껴졌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그나마 잘 할 줄도 모르는 영어도 아닌 러시아어로 쓰여진 소설을 28살에 번역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전에 23살의 나이로 비교적 잘 된 소설을 쓴다는 것.  나로선 꿈만 같은 일이다.

미셸 투르니에, 파트리크 모디아노,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등등과 함께 프랑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J.M.G. 르 클레지오Jean-Marie-Gustave Le Clezio가 있다. 그는 24살때 장편 소설 《조서 Le Proces-verbal》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한국에는 1960년대 한국 문학에 '감수성의 혁명'을 가져온 작가로 평가받는 김승옥이 있다. 그는 20세 초반의 나이 때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과 같은 수작秀作들을 내놓았다. 굳이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는 거장들만을 들 것도 없이 요즘 TV나 잡지를 장식하는 유명인사들은 더이상 나에게 무조건 형, 누나들이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TV속 인물들은 내 또래뻘의 친구들이 되고 또 잠깐 사이에 내 동생뻘 녀석들이 장악하며 나는 원치않는 추월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나 요즘은 더 가관이다. 나보다 어려도 한참은 어린 여고생들이 떼지어 9명씩이나 몰려나와 화면을 꽉 채운다. 내가 멍청하게 누워서 그들의 미니스커트 아래로 쭉 빠진 매끈한 다리에 넋이 나간 동안 그들은 한심하게 나이만 먹고 있는 이 오빠를 향해 힘차게 하이킥을 날리고 있다. 그리고 며칠 전 부터는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란다. "그래, 미안하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해 놓은게 하나도 없다."

초등학생 시절에 '모차르트는 3살 때 부터 피아노를 능숙하게 쳤다'라고 쓰인 위인전을 보아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이렇게 나는 10살도 안 되어 비상한 능력을 발휘하는 신동들에게는 애초부터 부러움이나 질투심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원래 나와는 다른 유형의 인간이며 신의 사랑을 받았겠거니 하고 말 뿐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내 또래뻘 내지는 동생뻘 되는 친구들의 화려한 성공을 지켜볼 땐 자꾸만 이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정된 범위를 공부해서 치르는 시험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세우는 학창시절엔 그나마 나았다. 그 땐 심지어 남용된 의미로서의 수재秀才라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처럼 공부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을 생각조차 못하고, 기성 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는 상태라면 누구나 자신의 에너지를 공부에 집중하지 않을까?  내가 마치 책 제목 처럼 '천재처럼 꿈꾸'진 못했더라도 '바보처럼 공부했'던 데에는 일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큰 원동력이었다.

이렇게 24년 동안 나는 끝내 철들지 않은 착한 소년으로 자라온 것 같다. 변덕도 부리고 모험도 즐기며 새로운 것을 찾기 보다는 기성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천재도 수재도 아닌, 오히려 모든 면에서 조금씩 부족했던 나로서는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같은 시간에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내기가 두려웠던 것 같다.  자연히 오랜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 고전古典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화를 주도하는 진보주의자 보다는 안전한 보수주의자를 옹호했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고전예찬론자, 온건한 보수주의자라는 명칭은 나의 소극적이고 느릿느릿한 성격에 그럴듯한 피난처를 제공해주었다. 어쩌면 무의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내 취향와 정치적 성향을 어린 시절 부터 지녀왔던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불신 혹은 열등감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르 클레지오는 현재 이화여대 불어불문과 초빙교수로서 프랑스문학 강의를 맡고 있다. 한국에 머무르는 만큼 부쩍 최근에 신문에서 그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금발의 영화배우같은 외모에다,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지적인 중년 남자 르 클레지오. 남자인 나도 참 멋있다고 느끼건만 그의 수업을 직접 듣는 여대생들은 어떤 심정일까?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거론되는 그가 프랑스 문단에 깜짝 데뷔하여 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앞서 말했듯 그가 겨우 24살 때였다. 바로 지금의 내 나이다. 내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로 돌아간다면 동갑내기 친구가 "읽어봐!" 하면서 내민 소설을 보고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너무 심오해서 잘 이해가 안 돼" 라고 해야할 것이다. 실제로 나는 아직도 우리 집 책장의 프랑스 문학 파트에 꽂힌 《조서》를 읽으며 - 세계 문학이 종종 그렇듯- 의무감과 인내심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뇌했었다.

24살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는 지금 하사, 중사 및 장교들에게 커피를 타주고 라면을 끓여준다. 설거지는 기본이다. 그러고는 홀로 밖으로 나와 면세 담배를 꺼내고 털어내는 재 속에 울적한 마음을 담아 바람에 날리며 연기를 뱉는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밤이 뒤면 무릎이 툭 튀어나온 추리닝을 입은 채 차가운 모포를 덮고 자유를 그리워하며 잠에 든다. 자꾸만 내 청춘이 마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화자話者 모습 같아서 우울해진다. 시를 직접 인용하고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고 '내 가슴이 꽉 메여 울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고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운' 것이다.

현실을 잊으려 시간이 날 때 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는다. 소설은 말 그대로 픽션fiction인지라 나는 그 속에서 잠시나마 현실을 벗어나 자유롭다. 하지만 연극이 끝난 후 막이 내린 후에 느끼는 이유 모를 눈물처럼, 책의 본문이 끝나고 작가의 프로필로 넘어갈 땐 씁쓸한 웃음이 난다. 연극과는 달리 이것은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다. 이렇게 환상적이고 놀랍게 창조된 픽션의 세계마저도 나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천재들에 의해서나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청년 르 클레지오와 김승옥에 패배한 나의 20대는 이제 곧 반환점을 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를 쓴 시절의 청년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가 떠오를 나의 30대는, 그리고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역대 최연소로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40세는 또 어찌할까? 아마도 남은 평생 나는 약 2,500년 전 공자가 만들어놓은 인생의 레벨 업 스테이지인 불혹(不惑,40세) 지천명(知天命,50세) 이순(耳順,60세) 종심(從心,70세)에 이를 때 마다 괴로워할 것 같다. 세상은 자꾸만 "구하구하龜何龜何 머리를 내놓아라" 하는데 어찌 두각頭角을 나타내야 하나? 다들 알다시피 거북이는 느림보인데 말이다.

헤파이스토스의 작은 망치


(2007년 가을, 스물네살의 어느 날)

오랜만에 실용서 두 권을 주문했다. 특별히 시험을 준비할 때가 아니면 이런 책들을 경멸하는 나로서는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의외의 결정이었다. 제목은 《일반인을 위한 글쓰기 정석》,《글쓰기의 전략》. 물론 내가 작가가 되리라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왕이면 더 좋은 글을 쓰고픈 욕심 때문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한 편의 글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라는 말은 식상할 만큼 남발된 경향이 있지만 확실히 나는 수많은 좋은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나의 사고와 행동까지도 무의식중에 변해왔다.

항상 자유노트를 갖고 다니며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 마다 글을 쓰는 나이지만 예외 없이 문장력의 부족을 실감하곤 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 머릿속 생각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간단 명료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 책이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문장력을 다듬는 첫걸음인 만큼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참 매력적인 일이다. 첫째로는 나의 막연하던 생각이나 주장을 하나의 완결된 글로 표현하고 나면 '서론-본론-결론' 혹은 '주장-근거'가 어느 정도 뒷받침 된 작품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작품이란 위대한 걸작msterpiece가 아닌, 작은 완성품 정도로 축소해석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머릿속 주장이 노트 위에 정리되어 옮겨지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주장을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구조를 갖추고 근거를 찾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추가되기도 하고 조금 막연했던 주장이 더욱 윤곽이 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와 그 주제에 관련된 대화를 하는 상황이 와도 훨씬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둘째로 글은 내 느낌과 감상의 배출구가 되어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 욕구가 음향을 통해서 전달된다면 음악이, 빛을 통해서라면 미술이, 육체의 움직임을 통해서라면 무용을 비롯한 공연예술이 탄생한다. 글이란 시, 소설, 수필, 희곡과 같은 문학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논설문까지 모두 작가의 자기 표현이므로 '언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똑같은 객관적 세계라 하더라도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글들이 탄생한다. 그러므로 설명문, 기사문, 광고문까지도 넓은 의미에서는 글쓴이의 표현 방식이 드러나는 언어예술이다. 음악가, 미술가, 무용가들이 각자의 방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듯, 나는 활자를 통해 나의 표현욕구를 충족시킨다.

셋째로 글은 말과 달리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말은 화자의 입에서 청자의 귀로 전달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그 말은 녹음이 되거나 활자로 기록되지 않는다면 인간 기억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순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나의 기억, 상대방의 기억, 그리고 제 3자의 객관적 세계에서 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애초 없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더 사랑한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남긴 그들은 나의 사상과 사고思考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는 막연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나의 과거 세계가 일부나마 내 눈앞에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다. 물론 사진이나 영상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지만 이런 시청각적 자료들은 나의 외면적 모습밖에 보여줄 수 없다. 내 머리 속 세계는 글을 통해서만 시간의 벽을 넘어 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늘 수많은 생각들이 부유浮游하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이 생각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의식 속에서 그 생각들을 적절히 재구성해야 하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의미있는 문장을 통해 풀어내야 한다. 비유를 하자면 공중에 날아다니는 곤충들, 그것을 잡을 잠자리채, 그리고 잡은 곤충을 분류할 기준이 될 곤충도감, 마지막으로 분류된 곤충들을 예쁘고 깔끔하게 전시할 미美적 표현력이 필요하다.

곤충과 잠자리채에 비유된 '소재'와 '소재를 잡아내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요구한다. 확실히 많이 경험하고 많이 공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지식이 무조건 많은 소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인간 머릿속에는 누구나 거의 무한에 가깝다고 할 만큼 많은 생각들이 마치 돌고래처럼 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아일랜드의 천재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소설 《율리시즈 Ulysses》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작품 대부분은 이들의 의식 속에서 18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들로 이루어져있다. 이렇게 탄생된 작품의 분량은 가장 최근의 한국어 번역본을 기준으로 약 1,400페이지에 달한다. 조이스는 인간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물론 조이스가 '의식의 흐름flow of consciousness'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인간은 누구나 머리 속에 무한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 중요한 것은 소재 자체 보다는, 자신이 보거나 생각한 것을 글의 소재라고 인식하는 데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막연한 생각을 글쓰기의 소재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늘 깨어있는 감수성과 문제의식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곤충도감에 속하는 것은 '논리력' 내지는 '구성 능력' 정도가 될 것이다. 일단 소재가 되어 도마 위에 오른 주제는 적절하게 '서론-본론-결론'과 '주장-근거 및 예시'를 갖춘 완결된 글이 되어야 한다. 영국의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따로 구성이나 초고草稿를 작성하지 않은 채 바로 글쓰기를 시작한다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글도 음악처럼 일종의 흐름을 지닌다. 그것이 어떤 구성이든 간에 특별한 파격을 노리지 않는 이상 하나의 글은 마치 모자이크나 콜라주처럼 의미있는 각 문단이 유기적으로 모여 더 큰 의미를 지니도록 구성되야 한다. 이렇게 매끄러운 구성을 짜는 방식은 어느 정도 자신이 편리한 방법을 따르면 된다. 중요한 것은 글을 읽는 사람이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내려갈 수 있도록 매끈하게 구조를 짜는 것이다. 예술가는 감상자의 미적 쾌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작품을 구상한다. 독자가 매끄럽게 읽는 글 뒤에는 글쓴이의  땀이 숨겨져있다.

미적 표현력은 글쓰기의 차원에서는 문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은 대게 하나의 마침표를 가진 글의 단위이다. 의미를 가진 언어 단위로서는 형태소, 단어 다음 쯤에 속하는, 비교적 낮은 차원의 글의 단위이다. 그만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이 문장이다. 머릿속에서 언어화化되지 않은 생각들은 당연히 주어, 동사, 목적어 등등을 갖추지 않은 추상적 형태이다. 앞서 언급한 《율리시즈》에서 조이스는 인간의 언어화되기 전 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문장의 일부 요소를 누락시켰으며 한 문장 속에도 (마치 우리의 의식처럼)여러가지 생각을 동시에 담았다. 하지만 그의 문체는 의도적인 기법의 하나이다. 만약 우리가 주술 호응도 안 되고 부적절한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쓰고서 조이스를 들먹인다면 그것은 초등학생이 밑그림만 그리고 채색하기가 귀찮아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가리키며 '여백의 미美'를 논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언어를 사용하여 글을 쓰는 것은 소위 말하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가능하지 않으며 음악, 미술 못지 않게 고뇌를 요구하는 예술활동이다. 세월을 거슬러 언어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참 재미있다. 언어 예술은 일반적으로 문학을 가리킨다. 문학 중에서도 소설은 가장 최근까지 - 특히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 - 천대받았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셰익스피어, 그리고 더 멀게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장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언어 예술 중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시詩문학이다.

오늘날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는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됐는데 이 아르스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를 번역한 말이다(테크네는 오늘 날에도 기술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아르스와 테크네는 오늘날의 아트와는 달리 숙련된 제작, 정해진 법칙과 원리에 따라 행해지는 물질적 제작 활동을 일컫는 말이었다. 당연히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를 예술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시는 기술이나 연습에 의해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神의 영감을 받은 사람만이 - 정확히 말하면 뮤즈나 아폴론 - 지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로 부터 시작된 언어예술의 원류原流는 희곡, 소설을 포함하여 - 개인적으로는 다른 종류의 글도 포함 -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만약 내가 글쓰기를 통해 언어 예술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예술'이란 말의 어감 때문에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조금은 멋대로 확장시킨 예술의 개념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무조건 헛소리만은 아니다. 이렇게 모든 글쓰기를 언어예술의 범주에 넣음으로써 그것은 '누구나 노력하면 가능한 것'이 된다. 나로서는 행운이다. 타고난 문재文才도, 우수한 두뇌나 남다른 감수성도 지니지 못한 나 역시도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예술이란 이름 하에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20세기 미국 문학에서 윌리엄 포크너와 더불어 수위를 차지할 작가를 들자면 피츠제럴F. Scott Fitzgerald드와 그보다 3살이 어린 헤밍웨이Ernest M. Hemingway 정도가 유력한 후보에 오를 것이다. 이 둘의 인연은  절친한 동료로 시작되었으나 끝내는 앙숙관계가 되고 만다. 그만큼 두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작품도 대조된 모습을 보인다.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로 잘 알려진 피츠제럴드가 연약하고 섬세하며 여성적이라면 《무기여 잘있거라 A Farewell to Arms》,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를 쓴 헤밍웨이는 강하고 남성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인상적인 그들의 차이점은 글을 쓰는 태도에 있다. 피츠제럴드는 "훌륭한 작품은 저절로 쓰이고 좋지 않은 작품은 억지로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에 헤밍웨이는 보석처럼 언어를 다듬고 고치는 작가였다. 피츠제럴드가 천재형이라면 헤밍웨이는 노력파였다.

주목할 점은 피츠제럴드는 30대 초반에 《위대한 개츠비》를 쓴 이후로는 몇몇 단편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대작을 내놓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처음 명성을 가져다 준 《무기여 잘있거라》 이후에도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태양은 다시 뜬다 The Sun Also Rises》와 같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수작을 계속해서 내놓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피츠제럴드에겐 조금 억울한 비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천재에게 신의 영감靈感이 바닥나는 순간은 끝장이라는 사실이다.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피츠제럴드에 비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나는 영감에 대한 피나는 노력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나마 헤밍웨이가 신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 신은 뮤즈가 아닌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Hephaestos일 것이다. 그가 얻은 노벨상과 명성은 헤파이스토스가 올림푸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를 차지한 것에 빗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번에 글쓰기 책을 두 권 구입했다고 해서 한두달 만에 실력이 느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으며 공평하지도 않다. 다만 이제껏 두서없이 난잡하게 쓰여진 문장의 나열에 불구하던 나의 글을 조금이나마 다듬으려는 첫걸음이라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이제 나는 헤파이스토스의 작은 망치를 두 개나 갖춘 셈이다.

마음의 회계와 감정의 회계

(2007년 여름, 스물네살의 어느 날)


경제학에는 최근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로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있다. 전통경제학에서는 인간의 경제 활동이 합리적인 계산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하지만 오늘날 행동 경제학에서는 그 주장을 부정하며 인간의 경제 활동은 수많은 심리적, 사회적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여기에 관련된 여러 가지 연구 활동 중에 '마음의 회계mental accounting'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 마음의 회계란 물리적으로 똑같은 가치를 가진 돈이라도 그 돈의 출처와 보관 장소, 용도에 따라 제각각 구분하여 사용하는 행태를 말한다. 똑같은 100만원이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길에서 주웠을 때와 힘들게 일해서 멀었을 때 소비하는 경향이 달라진다.

연말에 환급받은 세금(이것은 예전에 추가로 납부했던 것을 되돌려 받은 것이며 당연히 원래 자기의 돈이다.)을 공돈으로 여겨 쉽게 쓰는 것. 부모님이 유산으로 남겨주신 돈은 가능하면 잘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어느 돈을 쓰든 재산의 총액은 똑같이 줄어든다)도 모두 마음의 회계가 작용한 탓이다. 이렇게 마음의 회계는 대체로 합리적인 소비 성향을 왜곡시켜서 비합리적인 소비 행태를 조장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특정 돈뭉치를 묶어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금기화禁期化함으로써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주는 순기능도 있다.

나는 마음의 회계를 나의 감정에 적용해보곤 한다. 그 때 마다 나는 감정에 있어서는 결코 마음의 회계가 적용되지 않으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소 부적절할지 모르나 나는 이것을 '감정의 회계emotional accounting'라고 이름 붙였다. 감정의 회계는 마음의 회계와는 달리 총액 중심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기 기분이 나쁜 이유가 종로 때문인지 한강 때문인지 출처를 묻지 않은 채 아무 곳에서나 화풀이를 한다. 물론 감정의 회계는 오직 화anger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은 모두 마음의 회계가 아닌, 감정의 회계를 따른다.

감정의 회계는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의 마음 속 대차대조표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제 퇴근 후 기분좋게 술자리를 가진 후 헤어진 직장 동료가 오늘 아침엔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게 저기압이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집에 들어가서 부인과 심하게 다투었다는 것이다. 그의 감정 속에서 나의 계정은 분명 차변이 대변보다 많은 플러스였다. 간밤에 회계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이 있었다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의 부인과의 다툼 뿐이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도 괜히 퉁명스럽게 대하고 있다.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타인을 대할 때 신중해야 한다. 나와 직접적인 트러블이 없었던 사람일지라도 내가 그의 감정 상태를 100%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나 아직 서로 상대방의 ' 감정의 회계적 성향'을 파악할 만큼 친하지 못한 관계일 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감정의 회계 역시 마음의 회계처럼 규범적이기 보다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보다는 현상 자체를 분석하는 도구로써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감정의 회계도 개인에 따라 철저히 적용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감정의 회계가 극단적으로 적용되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보자. 다시 말해서 그는 무슨 이유에서 화가 났건 간에 그것과 상관없는 곳에다가 화풀이를 마구 해댄다. 확실히 감정의 회계는 별로 긍적적이지는 않다.

시중에 넘치고 넘치는 처세서들은 '매 순간 상대방 감정의 총액을 높이는 요령'을 논하는 책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해라'라는 식의 명령어로 된 제목을 가진 이런 책들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잘 팔리기는 하는가 보다. 그리고 잘 팔린다는 것은 꽤나 효과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에 올수록 이런 책들이 증가하는 것은 점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요령에 따라 화를 내거나 기뻐하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정녕 인간은 이렇게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일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표정이 옷과 같다면 인간 마음은 몸 내지는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옷은 쉽게 입고 벗을 수 있지만 몸은 결코 (쉽게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땐 궁극적으로 그를 치장하는 옷 보다는 꾸밈없는 실체로써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서로간의 마음을 트는 진리 보다는 상대방의 행동과 감정에 즉각 영향을 끼칠 방법들만 궁리하는 것 같다. 인정하기 싫지만 어쩌면 인간이라는 본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물론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자신의 현재 감정이 기쁘거나 슬픈 이유의 출처를 모두 따져가며 누군가를 대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이 누군가를 대할 땐 어느 정도는 상대의 감정을 예측할 수 있는게 좋지 않은가? 가끔 우리는 상대의 감정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적절하지 못한 처신을 할 때 그를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한다. 확실히 우리가 감정에다가 '감정의 회계'가 아닌, '마음의 회계'를 적용한다면 난데없는 싸움이나 오해를 현저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나와 함께하지 않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든, 최소한 나를 대할 땐 극단적으로 황당한 반응을 보이진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기 때문이다.

마음의 회계는 같은 초기 값에 같은 결과를 도출하는 함수와 같이 공정성을 지킬 수 있다. 내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에게만은 선별적으로 냉정하게 대한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내 감정에 상처를 준 사람은 언젠가 그 일만 풀린다면 다시 나와 정상적인 관계가 된다는 믿음 지닐 수 있다. 나는 가능하면 의식적으로라도 내 감정에 마음의 회계를 적용하려 노력한다.

특히 이런 덕목은 한 조직의 하급자 보다는 상급자에게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을 꾸짖을 때는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히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해당 사항에 대한 지적이 끝나면 더 이상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인지시키며 과감히 멈출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가 끝난 후 다시 만날 때는 평소와 같은 태도로 대하는 것이 좋다. 언뜻 보기에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괴짜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감정을 컨트롤할 줄 알며 원칙에 충실한 상사로 대접받을 것이다.

만약 상사가 무턱대고 '감정의 회계'에 이끌려다닌다면 작은 원인에 의해 화를 낸다 해도 그는 결국 화에 지배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누군가를 꾸짖는 목적은 상대방의 특정 행동을 교정하는 데 있지, 결코 자신의 감정을 뒤틀린 방향으로 표출하거나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일 뿐이며 나아가 변태적인 가학 심리나 다를 바 없다.

화를 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물론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이 《화 Anger》에서 주장하듯,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나는 책에서 이 표현을 스무번은 넘게 본 것 같다.)을 통해 화를 가라앉히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나 같은 범인凡人에게는 불가능하다. 대신에 늘 '마음의 회계' 원칙을 떠올리며 내가 왜 화를 내는지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그것과 관계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인 것 같다.

다만 희로애락 가운데서 기쁜 감정喜과 즐거운 감정樂에는 얼마든지 '감정의 회계' 원칙이 적용돼도 괜찮은 것 같다. 작고 사소한 일에서라도 기쁘고 즐거워한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확산돼도 좋다. 언제나 스마일!